금강산 화암사 트레킹 기행문

[백두대간 가는 길]

by 구자룡

[백두대간 17차 트레킹] 금강산 화암사 원점회귀 트레킹 후기


글/사진. 구자룡


2019년 2월 23(토)-25(월)

코스 : 금강산 화암사 →신선대(성인대) → 헬기장(1박) → 백두대간길 바로 밑(1005m) → 화암사 숲길 → 화암사 -(택시)- 용대자연휴양림(2박)

산행 구간 : 9.4Km

참가 대원 : 구자룡, 박용상, 이근수







<최고의 백패킹, 포기의 트레킹>


이번 동계 트레킹은 지리산 종주로 계획을 세웠었다. 그런데 올해는 눈이 내리 질 않았다. 1월 하순인 데도 불구하고 지리산에 눈이 없었다. 겨울산은 최소한 눈이 있어야 트레킹 하는 재미가 있는데 그렇지 못했다. 지리산의 웅장함을 느끼는데 부족함이 있는 것 같아 아예 2월 하순으로 일정을 바꾸고 짧은 코스로 미시령-진부령 구간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백두대간인 미시령-진부령 구간의 미시령은 비탐 구간이라서 화암사 쪽으로 들머리를 잡았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우등버스를 타고 속초에 내려 속초 택시로 화암사에 도착했다. 택시 기사의 말로는 미시령 옛길이 폐쇄되었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민자도로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라고 하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미심쩍었지만 현지 사정에 밝은 기사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다른 기사분을 통해 나중에 확인했는데 이유는 모두가 짐작하듯이 겨울철 결빙 때문이었다. 미시령을 포기하고 화암사로 들머리를 정한 것은 참으로 잘한 선택이었음이 증명되었다. 만약 미시령을 생각하고 용대리에 내렸다면 첫발부터 곤혹스러웠을 것 같았다. 택시기사가 화암사 주차장 게이트 앞에서 세웠다. 주차요금을 우리가 낼 테니 갈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갈 것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고 우리를 내려놓았다. 일주문을 지나 수바위로 올라가는 갈림길의 매점이 있는 곳까지 대략 1.5km 거리의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걸었다. 그 길을 승용차들이 쌩쌩 달렸다. 하산할 때 바로 여기 매점이 있는 곳으로 고성 택시를 불러서 탔다. 속초 택시기사의 불친절을 고성 택시기사님을 통해 절감했다.



산행 장비를 점검하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1차 목적지는 신선대를 지나 상봉 밑 헬기장이었다. 다만 신선대 부근에 좋은 영지가 있다면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오늘은 여유롭게 휴식하는 것으로 의견 일치를 봤다. "바위 구멍에 막대기를 넣고 세 번 흔들면 두 명이 먹을 수 있는 쌀이 나온다"는 전설의 수바위를 지나 신선대로 향했다. 성인대 혹은 신선대, 신선바위로 알려진 너럭바위의 규모가 엄청났다. 울산바위를 코 앞에서 볼 수 있는 멋진 곳이다.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하프돔 방향으로 계곡을 보는 것 같은 웅장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날씨가 좋으면 속초 앞바다 조망도 된다. 그동안 국내 산을 다니며 봤던 풍경 중에서 최고라 할 수 있는 곳이다. 기대했던 이곳 주변에 헬기장이 있었다. 바로 여기다 싶었다. 더 이상 고민거리가 없었다. 느긋하게 텐트를 설치하려고 할 때 남녀 한 쌍이 올라와서 영지를 찾았고, 이어서 남자 세 명이 합류해서 외롭지 않은 캠핑장이 되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우리가 가장 좋은 중간 자리에 여유 있게 준비를 끝내고 일찍 저녁을 먹었다. 내가 가지고 간 오징어를 데치고 연태고량주로 가볍게 한 잔 걸치고, 용상이가 가지고 온 삼겹살을 구워 안주삼아 소주로 또 한 잔 했다. 오징어 국물과 삼겹살 기름에 김치를 넣은 용상표 볶음밥으로 저녁까지 잘 먹었다. 근수가 가져온 수육은 내일 저녁에 먹기로 했다. 570미터 산정에서 속초 시내 야경을 구경하고, 캄캄한 하늘의 별을 보며 별자리를 맞춰보는 여유로운 밤이었다. 내일 상봉, 신선봉, 마산봉을 지나 진부령까지 먼 길을 생각하며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다행히 영상의 기온이라 춥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런 행복은 여기까지였다.


신선대(성인대)에서 울산바위, 황철봉, 미시령, 신선봉까지 조망






바람소리에 잠을 깼다. 잠깐 뒤척이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이러기를 수차례 한 다음 눈을 떴을 때는 새벽 2시가 넘었다. 바람에 근수의 쉘터가 무너지고 있었다. 모두 밖으로 나왔다. 해결책을 강구해야 하는데 다시 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아 아예 쉘터를 걷기로 결정했다. 쉘터 안에 용상이의 텐트가 있기 때문에 잠을 자는데 문제가 없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다시 텐트를 점검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날이 밝아올 때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내 텐트가 내려 안고 있었다. 일어나기는 싫고 바람에 텐트의 지붕이 얼굴을 짓누르기에 팔로 얼굴을 가려 그 무게를 지탱해보려 애를 썼다. 그러기를 몇 차례 선잠을 자다가 깼다. 밖으로 나온 근수가 무너지는 내 텐트를 점검해 주었으나 더 이상 버티기엔 무리라 생각되어 텐트 안에서 배낭에 짐을 챙겨 넣었다. 밖으로 나와서 주변 상황을 보니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판단이 섰다. 옆집의 쉘터도 기둥을 빼서 바람을 이겨보려 애를 쓴 흔적이 역력했다. 아침을 먹고 출발해야 하는데 쉘터 없이 이 바람을 이길 수 없었다. 결정이 필요했다. 우선 철수하자. 그리고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적당한 곳에 가서 아침을 해 먹고 다시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텐트를 걷고 배낭을 싸는 과정에 몸이 바람에 날릴 정도로 강풍이 계속 불었다. 애지중지 했던 내 텐트(제로그램 알찰텐)의 폴대 한마디가 아예 부러졌고 세 마디가 휘었다. 풍동 실험까지 하며 강풍에 견디도록 설계되어 있는 텐트에 문제가 생길 정도였다. 이 바람은 밤에 산꼭대기에서 골짜기로 부는 산풍이 아니었다. 지형의 영향으로 특정한 좁은 지역에만 분다는 높새바람도 아니었다. 비록 바람의 이름은 모르지만 지금까지 이런 바람을 맞는 적은 없었다. 이것은 자연현상인가 신의 노여움인가? 결국 이 바람은 종일 우리를 괴롭혔다. 그것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 수많은 산행을 하면서 지도상에 나와 있는 길과 우리가 가려고 하는 길의 거리감이 크게 다르다는 생각을 한 적이 별로 없다. 그런데 이 오르막은 예상을 깨고 있었다. 이전에 이 길을 다녔던 사람들의 후기에 너덜지대가 있어서 약간 힘들다는 표현은 있었지만 크게 위험하거나 지루한 구간이라는 설명은 없었다. 화암사 숲길로 조성된 곳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상봉으로 오르기 시작했을 때가 대략 오전 8시경이었다. 상봉을 향해 오르면서 아침을 먹을 만한 장소를 찾는데 무려 4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아침을 먹지 못한 상태에서 새벽같이 철수해서 앞만 보고 오르막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경사가 급하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위험한 곳은 없었다. 응달에 눈이 모여 있기도 했지만 대체로 산행길이 잘 나 있었다. 단지 3명이 바람을 피하고 휴식을 취하며 식사를 할 만한 그런 장소를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찾지 못한 것이다. 겨우 비탈길을 의지하며 쉴 만한 곳을 발견하고 배낭을 내려놓고 보니 벌써 12시가 다 되었다. 특히 근수가 허기를 많이 느껴 힘들어했다. 야간 근무를 하고 평소 운동할 시간이 없는 자영업자의 애로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 우선 먹고 보자. 아점으로 라면에 햇반을 넣고, 계란을 풀어 김치를 넣으니 걸쭉한 갱시기(일명 꿀꿀이죽)가 만들어졌다. 뭐라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맛있었다. 경상도 사람으로 이런 상황에서 식사를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런 황홀한 맛이었다. 또다시 작은 행복감을 느끼며 여유롭게 커피도 한 잔 마셨다.




잠시 여유를 가지고 돌이켜보았다. 이 정도 걸었으면 신선봉까지 가고도 남을 시간인데 아직 미시령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지도 못했다. 오늘 계획한 트레킹 거리는 대략 15km 정도다. 목표를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신선봉을 지나 대간령(새이령)까지 가고, 대간령에서 소간령을 통해 박달나무 쉼터로 내려가는 길을 급하게 인터넷 검색으로 찾았다. 여기서 고성 도원리로 가는 방향도 있지만 숙소로 정한 용대자연휴양림과는 반대 방향이라 고민이 되었다. 상봉에서 다시 생각해보고 어렵다고 생각되면 신선봉으로 올라가지 말고 화암재에서 화암사로 바로 내려가는 비상계획도 세웠다.


백두대간길을 가겠다고 지난가을부터 계획을 세웠고 일정과 장소를 바꿔가며 준비한 대간길이 아니었던가. 어제 용상이는 멀리 함양에서 새벽 첫 버스를 타고 동서울까지 왔었다. 근수는 야간 근무를 마치고 동서울에서 합류했다. 근수표 김밥까지 준비해서 왔다. 이제 기다리던 대간길을 걸을 차례이다. 그런데 새벽잠을 깨웠던 바람이 한 낮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계속 불고 있었다. 올라갈수록 칼바위가 나타나고 급기야 통천문(일명 개구멍)을 통해 올라가야 하는 곳에 당도했다. 무겁고 부피가 큰 배낭을 메고 올라갈 수 없었다. 용상이가 맨 몸으로 먼저 올라가고 이어서 배낭을 올려주고 근수가 올라가고 다시 내 배낭까지 올려준 다음 통과했다. 갑자기 나타난 그곳은 울산바위와 황철봉, 그리고 미시령까지 설악산 전체가 조망이 되는 멋진 곳이었다. 잠시 풍경 구경도 하며 앞으로 만날 대간길을 기대하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대략 해발 1000미터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상봉을 향해 다시 출발했다. 앞서가던 용상이가 더 이상 갈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멈춰 섰다. 길을 잘못 찾은 것은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점검을 해 보니 길이 있지만 큰 바위를 옆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밑은 낭떠러지였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밧줄이 있었지만 밧줄 상태를 보니 신뢰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이 되어 있었다. 바람에 햇볕에 바위에 쓸리며 반 이상 너덜너덜거렸다. 막다른 길이었다. 통천문에서와 같은 방법으로 배낭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묵묵히 따라왔던 근수가 고소공포증을 호소했다. 나 역시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기에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다른 길은 없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넘어가느냐, 아니면 돌아서느냐 하는 고민을 할 때 근수가 말했다. "어차피 원래 계획했던 진부령까지 갈 수 없잖아요. 신선봉도 오르기 어려울 정도로 체력이 고갈되었어요. 상봉을 지나 화암재까지 간다 해도 결국은 화암사로 내려가야 할 텐데 위험을 무릅쓰면서 상봉을 찍을 필요가 있을까요. 대간길을 잠깐 걷는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더 큰 문제는 이런 위험 구간이 앞으로 어느 정도 더 있을지 정보가 없어요. 지금까지 올라온 길은 이미 길의 상태를 알고 있으니 안전하게 여기서 화암사로 하산하면 좋겠어요.”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잠시 망설여졌다. 용상이도 같은 생각이라 했다. 그래 내려가자. 이때가 오후 2시경이었다.


저 바위만 넘으면 대간길인데...


rexman님의 공간에서 가져온 사진이다. 바로 이 지점을 반대쪽에서 넘어와야 하는 구간에서 막혔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증거물을 직접 남길 생각을 못했다. 그때 찍어 놓을걸.


그동안 열여섯 차례 백두대간 트레킹을 하면서 원점회귀를 한 경우는 없었다. 물론 여러 이유로 계획에서 벗어난 결정들도 있었다. 우리는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간다'는 산행 원칙을 가지고 있다. 이번 결정도 비록 아쉬움은 있지만 이런 바탕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원점인 매점에 도착하니 오후 5시 20분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참 잘한 결정이었다. 유학재 산악인이 <등반중입니다>라는 책에서 말한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데 공감한다. 다른 사람들은 히말라야에서도 포기하고 내려가는데 그까짓 1000미터에서 포기하는 게 뭔 대수가 될까 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아직 해가 남아있고 저녁에 먹을 식량과 묵을 집도 있으니 더 이상 무엇이 문제가 될까.





용대자연휴양림에 도착하여 샤워를 하고 근수가 이틀 동안 질머 지고 다녔던 소고기 수육을 약한 버너 불에 올려놓고 부추 올려서 천천히 소주 한 잔 기울이니 이 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고통이 없는 산행은 아마도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는 그런 결정은 포기가 아니라 다음 산행을 위한 훌륭한 결단으로 기억될 것이다. 사람마다 각 자의 체력에 따른 고통의 강도는 다를지 몰라도 고생은 모두가 다 한다. 이 고생을 하기 위해 여기까지 멀리 돌아왔고 이제 자연 속에서 한 잔 술과 함께 고통을 날려버리고 추억만 가득 담아 다시 일터로 간다.



뜬금없이 금강산(金剛山)을 다녀왔다. 모두가 알고 있는 금강산 비로봉은 북한에 있지만 남한에도 금강산의 봉우리가 몇 개 있다. 금강산의 남쪽 끝 봉우리가 신선봉(神仙峰, 1204m)이라 한다. 바로 옆에 있는 상봉(1244m)은 북설악산의 봉우리라고 하는데 지금의 산세로 보면 금강산의 봉우리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미시령을 경계로 볼 것인가 화암재를 경계로 볼 것인가의 문제이다. 신선봉 동쪽 아래에 신라 때 진표율사가 창건한 화암사(禾巖寺)가 있다. 이번 트레킹의 출발점이자 종점이 된 곳이다. 겨울, 강풍, 위험구간, 체력 등으로 금강산 화암사 원점회귀 트레킹은 최고의 백패킹을 즐기면서 포기의 지혜를 배운 트레킹이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멋진 장소를 찾았다. 소간령-마장터-대간령(새이령)-물구비 계곡 구간은 오지탐험을 할 정도로 아직 세상이 알려지지 않은 트레킹의 명소로 남아있다. 다음에 올 기회가 있다면 가벼운 배낭 하나 메고 가볍게 트레킹하고 용대자연휴양림에서 야영을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트레킹은 7월 초 지리산 종주를 다시 추진할 예정이다.


최고의 백패킹과 포기의 트레킹 경험을 간직하게 한 바로 그 곳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의 바람을 맞으며 흔들림 없는 동영상을 찍기란 불가능하다. 짐벌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영상을 남길 수 있어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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