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진고개-동대산-두로봉-응복산-통마름골) 기행문

[백두대간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by 구자룡

[백두대간 15차 트레킹] 오대산(진고개-동대산-두로봉-응복산-통마름골) 기행문

글/사진. 구자룡(대간길 문화인류학자)


어느덧 백두대간 트레킹이 15차에 이른다. 일반적인 대간 종주는 북진이나 남진으로 구간을 연결하여 진행하는데 우리는 여러 사정이 있다 보니 특정 구간을 편의대로 정해서 다니고 있다. 계절별로 1박 2일 혹은 2박 3일로 진행하기에 코스를 정하는 나름의 기준이 필요하다. 우리의 체력에 맞는 대략 10~20킬로미터 구간의 거리, 서울과 대구에서 각각 진출입 용이, 1박 혹은 2박을 할 수 있는 야영 가능 장소, 그리고 계절별 풍경 등이다.

이런 기준에서 이번 오대산은 계획을 세우는데 참으로 고민이 많은 구간이었다. 지난겨울에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그 기념으로 미리 우리끼리 겨울 평창을 느껴보고자 오대산 구간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했었다. 그러나 연일 계속된 한파로 인해 계획대로 진행할 수 없어서 코스를 따뜻한(?) 남쪽의 영동 민주지산으로 변경하여 잠시 백두대간을 먼발치에서 조망하는 것으로 대신했었다.(당시 민주지산의 기온이 영하 16도, 체감온도 영하 22도였다.)[참고. 엄동설한 영동 민주지산 트레킹 기행문]


2018년 여름은 111년 기상관측 이래 가장 무더웠다. 서울에 내려졌던 폭염특보는 38일 만에 해제되기도 했고 무려 40도를 오르내리는 기온의 연속이었다. 이런 기상 조건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백두대간 트레킹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역대급 태풍 ‘솔릭’이 한반도를 관통한다는 예보가 계속되고 특히 8월 23일 강릉을 통과할 것이라고 하여 모두들 걱정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24일부터 가기로 되어 있었기에 23일 최종 결정을 해야 하는데 이 솔릭이 ‘시마론’의 영향으로 속도가 느려지면서 더욱 예측이 어려워졌다. 결국은 여러 대안을 검토한 가운데 하루 순연하여 25일 출발하는 것으로 급변경하였다.


일정 : 2018년 8월 25-27일(토-월요일)

참석 : 구자룡, 박용상, 이경화, 이진원, 이근수

트레킹 코스 : 진고개-동대산(1,434m)-차돌배기-신선목이-두로봉(1,422m)-신배령-만월봉(1,281m)-응복산(1,360m)-약수산(1,306m)-구룡령으로 이어지는 22km/ 실제 진행한 코스는 응복산에서 통마름골로 하산하면서 24.2km


진고개-두로봉-응복산-통마름골 트레킹 기록(램블러)


트레킹 계획은 계획일 뿐

원래 계획은 백두대간 진고개에서 구룡령까지 약 22킬로미터를 1박 2일 동안 걷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백두대간 종주 산악회에서 진행하는 경우에는 이 구간을 새벽 3시경 야간산행을 시작하여 당일 오후 3시경 하산하는 코스다. 그렇게 높은 산이 있는 것도, 가파른 산이 있는 것도, 암벽이 있는 것도 아닌 능선으로 이어진 넉넉한 대간길이다. 이번에 참석하는 대원들을 기준으로 본다면 약간의 무리가 따르는 거리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다녀본 경험으로 충분히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계획을 잡았다.

문제는 코스가 아니라 구룡령이 강원도에서도 오지에 해당하기에 교통편을 해결하는데 애로가 있었다. 처음에는 오대산국립공원 내면사무소에서 상원사로 연결된 446번 지방도를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서울팀은 새로 개통된 KTX를 이용하여 진부까지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검색을 철저하게 하지 않아서 인지, 아니면 제공 정보가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우리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인지 이 길이 폐쇄되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었다. 과거에는 차량들이 왕래했던 길인데 지금은 숲길로 조성되어 멋진 16킬로미터의 트레킹 코스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진부에서 구룡령까지 택시를 부르면 1시간 30분 소요시간에 대략 13만 원 정도의 요금이 발생하는 상황을 인지하여 서울에서도 차량을 가지고 가기로 했다.

대구팀은 항상 차량으로 이동했기에 이번에는 차량이 두 대가 되어 날머리인 구룡령에 한 대를 두고, 나머지 한 대로 함께 이동하여 진고개로 향하는 계획을 세우니 산속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가면서 2박을 야영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하여 1박 2일 짐만 지고 가볍게 트레킹 하는 계획을 세웠다. 첫날 계획한 코스가 길다고 느껴져서 가능하면 이른 시간에 구룡령에서 만나기로 했다. 비록 계획에서 날자가 하루 순연되기는 했지만 나머지 구체적인 일정은 원래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동대산 오르기, 2018 © 추보 구자룡


역대급 태풍이 비껴 지나간 대간길

10시 20분 대구팀이 먼저 도착했고, 10시 30분 서울팀이 도착하여 이제 한 팀으로 들머리인 진고개로 향했다. 전날까지 태풍의 영향권에 있어서 인지 진고개에 도착했을 때 그곳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넓은 주차장에 우리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입구는 차단되어 있었다. 공단 직원에게 진고개로 올라가는 입구를 물으니 진고개에서 상원사로 가는 탐방로가 태풍의 영향으로 임시 폐쇄되었으며 관계자들이 탐방로를 점검하고 있다고 했다. 공단에 직접 연락해 보는 게 좋겠다고 하여 전화를 하니 해제되었다고 한다. 그 직원에게 해제 정보를 알려준 다음 얼른 탐방로 입구를 통과했다. 문제의 소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눈에 띄지 않는 숲에서 장비와 전열을 가다듬고 드디어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했다. 이때가 대략 12시 30분경이었다.

도시에서, 직장에서 쌓인 묵은 때가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매번 산행 초입에서 겪는 일이지만 처음 한두 시간은 숨이 막힐 정도로 힘이 든다. 거의 2시간가량 쉬엄쉬엄 동대산으로 올라가는 중에 동대산 바로 밑의 갈림길에서 처음으로 인기척을 느꼈다. 탐방로를 점검하고 있었던 공단 직원들로 아마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원래 계획의 내용이 아닌 임기응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대산에서 두로봉으로 해서 상원사로 간다고 했다. 거리와 시간을 생각할 때 그 코스는 무리이니 동피골로 바로 내려가서 선재길로 상원사로 가는 게 좋겠다고 알려주었는데 그 상황에서 그 권고는 명령(?)과 다름이 없어 보였다. 우리를 안전하게 하산하게 하는 사명을 띤 그분들을 넘어설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분들이 지키고 있는 동안 동대산에 잠깐 올라가서 기념사진만 찍고 동피골로 하산하는 코스로 내려갔다. 공단 직원들은 진고개로 내려갔다. 이 일로 지체한 시간이 30분은 족히 될 듯하다. 잠잠해진 후 다시 동대산으로 올라 원래 예정했던 두로봉으로 향했다.


힘들면 멈추고, 집을 짓고, 쉬면 되고

신선목이에 도착했을 때가 6시를 넘고 있었다. 목적지로 생각했던 두로봉까지는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더 가야 하는 지점이다. 잠시 휴식을 하고 출발하려고 일어섰는데 갑자기 더 가기 싫었다. 그래서 혼잣말로 “ 더 가기 싫다”라고 흘렸는데 모두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동대산에서 일시 하산 해프닝을 한 이후 두 번째 계획을 벗어난 결정이었다.

야영 장비를 챙겨 배낭을 메고 다니는 백패킹의 묘미는 힘들 때 진행을 멈출 수 있는 데 있다. 언젠가 조령산에서의 무리한 진행이 가져온 힘든 시간과 위험에 노출된 적이 있었다. 이때는 야영장비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계획한 곳까지 가고자 했던 우를 범했었다. 비슷한 체력들이라 내가 힘들면 모두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렇지만 짐짓 계획한 야영지까지 무조건 가야 한다고 우겼다. 특히 진원이가 매번 계획이 틀어진다고 하소연을 했었기에 이번에는 계획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그런데 아무도 속지 않는다. 이미 '더 가기 싫다'의 의미를 해독한 것이다.

다만 이곳에 여장을 푸는 것은 깊은 산속에 있는 동물들과 식물들에게 해가 될 수 있어서 가능한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깊은 산속이라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준비한 음식으로 맛있게 먹고 가볍게 반주 한잔을 기울이는 낭만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마침 둥근달이 떠있고 다른 쪽 저 먼 곳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자연 속에서 진한 우정을 느낄 수 있는 이 여유를 그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준비 안된 결정이 가져온 고난의 행군

다음날 새벽잠을 깨우는 등산객들의 발자국 소리에 의도치 않게 5시에 기상을 했다. 이 깊은 산골짜기에 그것도 새벽 5시에 수십 명의 등산객이라니. 이미 덕유산에서도 경험한 적이 있었지만 좀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이 곳에 야영한 것도, 길을 막은 텐트도 심히 불편한 상황이었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상황을 들킨 것 같아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기로 하고 철영을 먼저 했다. 그 덕분에 7시에 두로봉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지난밤에 기상시간을 5시로 했었지만 타의에 의해 등 떠밀려 일어난 것 같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두로봉을 지나 신배령에 도착했을 때가 10시 30분경이었다. 만월봉 오르기 전에 경화가 먼저 도착하여 점심을 준비했고 든든하게 먹었다. 만월봉에 도착했을 때가 오후 1시 50분이었다. 예정한 시간에 거의 맞추고 있었다. 만월봉을 지나면서 이정표에 통마름골 2.1km라는 정보에 앞서 가던 진원이가 바로 하산하자고 했다. 거기에 근수도 동조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트레킹을 줄이고 야영을 좀 더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었다. 그동안 우리들은 항상 함께 출발해서 함께 다니고 함께 하산까지 마무리하는 진행을 했었다. 굳이 이럴 필요가 있을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던 중이었다. 그래서 하산팀과 종주팀으로 나누어 다시 합체하기로 하고 두 사람은 통마름골로, 나머지 세 사람은 구룡령으로 향했다. 용상과 경화, 그리고 나는 지난봄 덕유산 북진에서 함께 했기에 좀 더 속도를 붙일 수 있었다. 무거운 짐을 지고도 일반 등산객과 비슷한 1시간 만인 오후 3시에 응복산에 도착했다. 즐거움도 잠시 갑자기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지고 멀리 먹구름도 보였다.

좀 더 빠른 속도로 구룡령으로 향하는 중에 명개 1.2km라는 이정표를 발견했다. 이 분위기라면 비를 맞지 않고 안전하게 하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바로 하산하는 길이라 생각되었다. 이때가 3시 30분경이었다. 이 선택이 지루한 하산길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1.2km이니 어찌하면 만월봉에서 먼저 내려간 두 사람을 따라잡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세 번째로 계획을 벗어난 결정이었다. 약수동 마을(가장 안쪽 민가)에 도착했을 때가 4시 40분이었다. 평범한 산길 1.2km를 내려오는데 1시간 10분 정도 소요된 것이다. 이정표 기록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버스가 오는 곳까지 무려 5km가 더 남아 있었다. 응복산 아래 명개로 갈라지는 길에서 원래 계획이었던 구룡령까지 5km 정도 남았으니 마루금으로 이어진 구룡령으로 바로 갔으면 좋았을 텐데...


두로봉에서 신배령으로 가는 하산길, 2018 © 추보 구자룡



순간의 결정과 선택의 어려움, 그리고 바른 결정

원래 구룡령에 도착한 후 차량으로 통마름골로 이동하여 계곡에서 1박 야영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계획이 뒤틀려지면서 구룡령으로 가서 차량 회수를 해야 되는데 이게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근수가 생고생한 이야기다. 통마름골 안쪽으로 택시 호출이 여의치 않았고 현지 어르신의 말씀에 의하면 비용도 18만 원 정도라고 하여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근수가 구룡령로에서 구룡령까지 히치하이킹을 하고자 했으나 이 도로를 다니는 차량이 전무하여 히치하이킹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직접 걸어서 구룡령까지 올라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올라가는 길에 어떤 민가에서 풀어놓은 진돗개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어릴 때 개를 키웠지만 무시무시한 진돗개 앞에서 도저히 전진을 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뒤돌아 내려와서 하고 싶지 않았던 택시를 불렀다. 진부에서 출발하는 택시라 오는데도 1시간 이상이 걸렸다. 차량을 회수해서 다시 모두 모일 때는 벌써 밤 8시가 되었다. 근수가 악전고투하는 동안 통마름골 초입에 도착한 진원이와 계곡 안쪽 어디쯤에 있는 우리들 간에 전화로 야영할지 민박을 할지 결정을 하지 못하고 오락 가락 했다. 그 사이에 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다행히 비를 만난 것은 아니라 몸은 여유로왔지만 마음은 타들어 가던 시간이었다. 진원이가 제안하고 찾은 민박집에서 야영을 대신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네 번째 계획의 변경이었다. 이날 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아침에 민박집 옆으로 흐르는 냇가가 강으로 변한 광경을 목도하면서 가슴을 쓰려 내렸다. 진원이의 탁월한 제안이었다.

태풍 솔릭에 대한 과장된(?) 기상 예보로 출발을 하루 연기한 선택, 신선목이에서 야영을 결정한 선택, 민박을 결정한 선택은 이번 트레킹에서 탁월한 결정이었다. 이런 결정들 뒤로 아쉬움이 남는 결정들도 있었다. 응복산에서 지레 겁먹고 원래 계획했던 구룡령을 포기했던 결정이 계속 여운을 남긴다. 당시에는 합리적인 결정이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나 답지 않는 결정이었다. 스스로 위안을 해보면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단지 계획은 가이드 역할을 하는 것이고 무리하지 않고 현지 상황에 대처하는 결정이 바른 선택이다. 이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앞으로도 이런 결정을 해야 안전하게 백두대간 트레킹을 마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백두대간 오대산 어느 대간길, 2018 © 추보 구자룡


팍팍한 생활을 잠시 잊기 위한 긴 여정

자연과 함께 한 힘든 순간들을 이겨내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그 순간을 교감하는 즐거움이 있기에 다시 만날 날이 기다려진다. 하지만 함께 트레킹 하는 동료들의 나이가 들어갈수록 일정을 잡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각자의 삶을 영위하는 방법과 직업이 다르니 어찌 보면 일정을 맞추는 것이 힘든 것은 당연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함께 하는 동료들이 있기에 새로운 추억을 하나씩 쌓아갈 수 있다.

항상 든든한 조력자이자 묵묵히 중재자 역할을 해주는 용상이는 울산에서 화학연구소의 연구원으로 근무했었다. 일찍 직장 생활을 접고 경북 군위에서 주유소 사업을 했는데 이 사업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현재 함양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우리 모임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등산과 야영을 좋아하지만 교대 근무로 인해 사전에 휴가를 확정하지 않으면 일정을 잡기 어렵다. 이번에는 함께 근무하던 아르바이트 직원이 갑자기 그만두면서 출발 이틀 전까지 참석이 불투명했었다. 다행히 직원이 충원되면서 참가할 수 있었다.

언제나 함께 하는 든든한 동반자인 경화는 경찰이다. 산행에서 가장 힘든 위치가 후미인데, 자진해서 그 후미를 항상 담당해주는 지구력의 사나이다. 천천히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 체력이 떨어져 늦어지는 동료들로 인해 후미는 더욱 지칠 수 있는 위치이다. 그 책임감으로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 이번에는 첫째 아이가 대학을 휴학하고 공무원 시험을 보았다고 한다. 아직 합격여부가 결정되기 전에 오대산 계획이 세워져서 출발 며칠 전까지 최종 참가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첫날 만나서 진고개로 이동하는 중에 점심식사를 하면서 딸애의 합격소식을 전했다. 만약 불합격했으면 집안 분위기 상 참가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딸애의 합격 덕분에 함께 할 수 있어서 좋고, 합격 기념으로 점심을 한턱 내니 더욱 좋았다.

백두대간을 처음 계획한 설악산부터 여름과 겨울 산행을 함께 하면서 조금 덜 걷고 느긋하게 야영의 재미를 느끼고 싶어 하는 진원이는 웃음을 전파하는 감초 역할을 한다. 대구에서 원단 유통사업을 하고 있다. 자기 사업을 하기에 시간을 낼 수는 있지만 산행 중에도 간혹 전화로 업무를 했었는데 이번에는 전화벨이 울리지 않았다. 사업이 좀 어려운 모양이다. 참가에 어려움은 없었지만 체력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며 걷는 코스를 줄이고자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었다. 사전에 체력훈련을 적극적으로 실시하는 열의를 보여주었다. 이런 준비 자세가 중요하다.

항상 참여하고 싶어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참가가 어려웠던 근수도 이번에는 참가했다. 오대산 계획을 공지하는 순간 바로 신청했다. 집에 선언하는 차원에서 먼저 신청했다고 한다. 서울에서 그것도 사대문 안 광화문 근처에서 김밥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다. 24시간 체제로 아르바이트 여러 명과 함께 장사를 하기에 교대 근무 인원에 문제가 생기면 참가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참가하겠다고 했다. 식당일로 휴일도 없이 수개월 동안 자기 시간을 갖지 못한 보상으로라도 참가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출발 이틀 전에 지병이 있으신 부친께서 요양원에서 응급실로 이송되어 상황에 따라 참가가 불가능할 수 있었다. 다행히 어르신께서 호전되시어 트레킹을 다녀올 수 있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1년에 네 번 모여 함께 트레킹 한다는 게 어렵다. 어쩌면 그래서 백두대간을 찾아 나서는 트레킹이 더 큰 즐거움이 되고 힐링의 시간이 된다. 꼭 트레킹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략 15kg에서 20kg의 짐을 지고 대간길을 오르내리는 일이 결코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트레킹과 야영을 하고자 하는 마음속에는 함께 보내고 싶은 소중한 시간의 추억이 있다. 지식노동자이자 프리 워커인 나는 정신적으로 받은 스트레스를 자연 속에서 날려 보내고 싶어서 백패킹 계획을 계속 세운다. 대자연의 엄숙함을 느끼고 싶은 욕망으로 이런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면서 조금 더 자연의 소중함을 깨달아 가고 있다. 그리운 후배들과 함께 하니 더욱 즐겁다. 그리고 남쪽 백두대간 길을 다 걷고, 남은 북쪽 백두대간 길을 따라 백두산까지 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함께 하는 대원들과 함께 꿈을 꿔 본다.


두로봉과 신배령 사이 어느 대간길에서 설악산 서북능선과 대청봉 조망, 2018 © 추보 구자룡


생명, 2018 © 추보 구자룡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덕유산(향적봉-백암봉-지봉-신풍령) 트레킹 기행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