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축구 Apr 18. 2023

내 인생에 '은사'님이 등장하다.

더는 새로울 것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 순간, 내 인생 은사님이 생겼다.

 축구선수가 되어보겠다고 아르헨티나에 갔다가 한국에 돌아와 누가 내게 이제 무엇을 할 거냐고 물을 때, 입버릇 처럼 했던 말이 있다.


'소시민이 되겠다.'


 더 이상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황당한 꿈'(이를테면 축구선수 같은..)을 꾸지 않겠다는 선언 같은 것이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피자배달 아르바이트를 했고, 한국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임용시험에 임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안정적인 삶. 즉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을 했다. 그리고 나는 제도권 언저리에 도착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술에 의지하는 밤이 시작된 지점. 지금 되돌아보니 나의 확장을 억지로 막아서니 그 확장하려는 '나'를 해소할 방법이 술이었던 것 같다.

길렀던 머리를 자르고 수염을 밀었다.

 

 이상한 사람이 등장했다. 한국에 돌아와 새로 들어간 축구팀에 요상한 옷을 입고 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뭐 하는 사람이지'라고 잠깐 생각했지만 사실 별 관심 없었다. 축구팀에서 축구만 잘하면 되는 거니까. 그 사람은 팀에서 골을 넣어야 하는 포워드였고, 나는 그 포워드에게 공을 전달해야 하는 미드필더였다. 나는 그 요상한 사람에게 공을 전달해야 했다. 몇 번 같이 뛰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더 열심히 안 뛰어요?'


그 이상한 사람과 어떤 경기를 마치고 나오며 그 사람에게 했던 말이었다. 경기 승패에 관계없이 그날의 경기가 마음에 안 들었다. 그리고 난 우리 팀 모두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 이상한 사람은 유독 유쾌한 표정으로 경기장에서 나가고 있었다. 그게 거슬렸었다. '만족스럽지 않은데, 분명 저 사람은 최선을 다해 쏟아붓지 않았는데 왜 웃지?' 


며칠 뒤 개인카톡 왔다. '내게 왜 그런 이야기를 했냐?'


사실 '왜 더 열심히 안 뛰냐'와 같은 이야기를 이 사람한테만 한 게 아니라, 내 기억을 더듬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이런 반응이 생경했다. 그 사람은 내 의견을 수용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 사람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요상한 옷을 왜 입고 다니는지, 뭐 하는 사람인지 그때서야 인지했던 것 같다. 이상한 사람은 맞았고 보통 사람도 아니었다.

요상한 옷을 입은 사람은 연쇄 사업가이자 한 회사의 대표였다.


어느 날, 이 형이 링크하나를 보내왔다. '기본 학교 3기 모집' 6개월 동안 매주 함평에 내려가 최진석 교수님과 기본을 배운다는 내용의 모집요강이었다. 함평? 매주? 6개월? 등록금 100만 원? 이게 뭐지? 이 형이 돈이 너무 많으니까 세상이 재미없어졌나? 이걸 누가 해? 그런데 이것도 지원자가 많아 3차 시험까지 통과해야 한다고 했다. 나를 테스트해 본다는 생각으로 모집에 응했다. 결국 나도 형도 기본학교 3기 합격자 명단에 들었다.


'함께 하자!'라고 할 줄 알았는데, '할 거냐?'라고 묻는다. '형은 할 거죠?'라고 돼 물었다. '나는 당연하지'라는 대답에 나도 그럼 가볼게요.라고 선택했다. 저 비범한 사람의 선택이라면 한 번 믿어볼 만하겠다 싶었다.

기본학교 입학과 첫 수업 전까지는 사실 '배움'에 대한 기대보다 만날 사람들에 대한 기대가 컸다. '6개월간 매주 함평까지 무언가를 배우겠다' 며 올 사람들이라면 모르긴 몰라도 비범치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교수님의 첫 수업을 듣고 생각이 박살 났다. 


'좋은 선생 찾기를 게을리하지 말고 내가 당신에게 그 좋은 선생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내려가라'

격주로 올랐던 고산봉 정상.


 라고 당당히 말하던 그 눈은 내가 찾던 스승의 눈이었다. 더는 새로울 것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 순간, 내 인생 은사님이 생겼다. '끊었던' 책을 다시 붙잡고 글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해로운 걸 끊어내듯 책을 끊어냈었다. 내가 생각 없이 잡았던 수준 낮은 수많은 책들은 나의 생각을 어지럽히기만 했고 그럴수록 내 행동은 느려졌었다. 기본 학교를 다니며 읽은 수준 높은 책들은 외려 나를 간결하고 명랑하게 만들었다.

 

구분 짓는 것.

문명.

수준.

이성과 감성.

덕.

경계.

숙고하는 삶.

과학과 기술.

블록체인.

4차 산업 혁명.


내가 지금까지 본능적으로 그리고 아주 원초적으로 감지하고 있었던 것들의 개념이 명확해졌다. 이런 과정 안에서도 나는 나를 의심했다. 그런 내게 최진석 교수님은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스스로를 사랑하라. 자신만의 신화를 써 내려가라' 


 라고 하셨다. 나는 나의 신화를 여기서 끝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황당한 꿈은 멈추겠다. 소시민이 되겠다.'는 생각을 소각시켰다. 나는 위대한 인간이 되어 신적 경지에 나를 이끌고 올라가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다시금 '황당한 꿈'이 탄생했다. 내가 본능적으로 우연히 아주 다행히 행동으로 옮겼던 '축구선수'라는 꿈은 해치우지 않으면 안 될 어떤 해소의 대상이었다. 이제는 '황당한 '꿈을 해소해야 할 무엇으로 생각하지 않겠다. 본능적으로라도 원초적으로라도 황당함을 감지했고 실행으로 옮겼던 나를 믿겠다.

이축구라는 이름에 한자가 생겼다. 나는 다시 이축구로 나아간다.

나는 황당함으로 이 세상을 찰 기본학교 3기 이축구(蹴球) 다.


작가의 이전글 2부 에필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