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축구 Jul 09. 2024

멍청이가 스스로 멍청한 것을 알면,

더 이상 멍청이가 아니다.

한 때, 인터넷에서 돌던 그래프가 있다. 지금도 가끔 보이는 걸로 봐서는 이 그래프가 사람들에게 꽤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그래프를 본 순간, 본능적으로 자기는 어디쯤 위치해 있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러면 두 분류로 나뉘는데, 여기서 신기한 지점이 포착된다. 외려 탁월한 사람은 '우매함의 봉우리'에 서 있지 않을까라고 염려하고 반대로 멍청한 사람들은 자신을 '지속가능성의 고원'에 있다고 착각한다.


바로 이런 현상을 연구자들의 이름을 붙여 '더닝-크루거효과'라고 부른다.


나는 우매함의 봉우리에서 추락한 적이 꽤 여러 번 있다.(지금도 추락할 때가 있다.) 그래서 스스로를 절망의 계곡에서 기어올라가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 봉우리에 우뚝 서 있는 사람들이 꽤 잘 보인다.


이런 현상들은 우리나라에서 엘리트 운동선수를 했던 사람들에게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어제 있었던 대한축구협회의 졸속행정도 그 봉우리에 모인 사람들이 벌인 짓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이런 사람들은 우리 윗세대 즉 60,70년대 생들이다.(물론 예외는 항상 존재한다.)

C급 지도자 연수 현장.

나는 2020년에 C급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무려 200만 원이 넘는 비용과 거의 열흘에 가까운 시간을 오롯이 투자했다. 난 많은 기대감을 가지고 연수에 참여했다. D급 지도자 연수에서 기대이상으로 축구에 관련해 많은 것을 배운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출석만 잘하면 합격증을 준다는 정보에 안이한 생각을 했다가 전임지도자인 이진성 감독님께 호되게 혼났고, 일주일 동안 축구에 대한 태도를 새롭게 하게 된 터닝포인트였다.


그 기대가 깨지기까지 2시간이 채 안 걸렸다.


지도자 연수 집합장소에 도착하자, 연수생들은 대부분 비선출이었던 D급 연수와 다르게 나와 또 한 명을 제외하고 전부 선수출신이었다. (중고등학교 선수 경력이 인정되면 D급 지도자연수를 듣지 않아도 된다.) 첫 미팅에 전임지도자와 그 밖의 강사들이 소개되고 식사시간이 되자 정말 웃기지도 않는 촌극이 벌어졌다. 연수생들이 자신의 모교 또는 전 소속팀의 감독이나 코치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전임지도자 또는 강사와의 인맥을 찾고 있었다. 이유는 뻔하다. C급레벨부터는 탈락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금세 강사들은 연수생들을 부르며 '네가 xxx이냐?' 같은 인사를 주고받았다.

지도자 연수중 작성한 지도 계획.


나는 속으로 "어쩔 수 없지. 인간이 하는 일들인데"라고 생각하면서, 그래도 열심히 배우고 운동하고자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게다가 전임지도자는 티비에서만 보던 한국 축구계의 레전드 중 한 사람이라 그래도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첫 수업이 시작되자, 그 남은 기대마저 사라졌다. 도대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내뱉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이유는 두 가지 중 하나인데, 대화가 내 수준에서 듣기에 매우 수준  높거나 내가 모르는 전문분야라서 일 수 있고 또 하나는 너무 눌변이라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을 때이다. 


정확히 후자였다. 연수기간 내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는 말 중 모르는 단어도 없고 어려운 전문용어도 없는데 이 능력도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진짜 순수한 호기심으로 강의 중 이 사람의 말을 받아쓴 적이 있다. 주어 서술어 목적어를 받아써봤는데, 1시간 동안 강의 내내 완성된 문장이 없었다.(그렇다고 준비한 강의자료의 내용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이 중에 한 명이다.

"이 사람, 평생 공부를 안 했구나. 아니 책도 한 권을 채 안 읽었구나. 그저 공만 찼구나."


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람이 대한축구협회에서 상당히 높은 자리로 계속해서 영전하는 것을 바라보며 한숨이 나왔다. 이것 말고도 직접 겪은 경험으로 대한축구협회의 수준에 실망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중요한 건 스스로 멍청한 줄 모르는 사람들이, 오히려 내가 아는 지식과 축구가 높은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평생 '축구'라는 기술만 배워서 할 줄 아는 게 '축구'밖에 없어서 축구밥을 먹는 사람들이 대한축구협회에서 높은 자리를 죄다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비난받고 있는 대한축구협회장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축구를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대한축구협회에서 일했으면 한다.
이전 12화 광야에 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