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지혜학교, 철학교육 이야기 17-지혜학교의 학교 폭력 대응법]
1.
2013년 늦은 봄이다. 두 명의 남학생들이 수업에 빠지고 시시덕거리며 학교 입구 앞에서 배낭을 들고 장난을 치고 있다. 그 뒤에는 30대 초반의 어느 선생님도 어두운 표정으로 주섬주섬 짐을 꾸린다. 특별 수업으로 3박 4일 지리산 종주를 떠나기로 한 날이었다. 우연히 옆을 지나치던 나는 이들을 향해 잘 다녀오라고, 고생하라고 인사를 건넨 기억이 있다.
개교 초기, 그러니까 지혜학교만의 학생 문화라는 것이 형성되기 전, 생활관 내 위계적인 서열 문화가 공고히 자리 잡고 있을 때, 선배들은 후배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혔고,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학교에서 이런저런 (교육적인) 조치를 시도했었다, 이들의 경우에도 문제가 반복되자 특단의 조치를 세운 것이다.
그 뒤로 몇 번의 크고 작은 홍역을 치르면서 동시에 학교의 시간이 쌓이고 학생들 사이의 문화가 형성되면서 심각한 폭력 사건은 모습을 감추었다. 그럼에도 크고 작은 폭력들은 여전히 드러나고 있고, 그보다 더 많은 갈등이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즈음에서 지혜학교에서는 학교 폭력과 관련하여 어떤 문제들을 겪고 있고, 어떻게 대응하고 있으며, 어떤 고민과 과제를 마주하고 있는지 차분히 정리해보려 한다.
2.
그간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학생들 사이에서 특히 갈등과 폭력이 분출되는 시기가 따로 있는 것 같다. 바로 기초과정 2학년 시기이다. 기본적으로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큰 변화를 겪는 데다가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 욕구를 정확하게 알아차리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상태에서 일상적인 갈등이 심심치 않게 폭력으로 번진다. (물론 이런 교육은 나도 받아보지 못했다. 도대체 어디서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을까.) 권력관계를 형성하여 약한 학생을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괴롭힌다.
이를 발견한 교사들이 때마다 훈계를 하며 지도하지만 대부분은 ‘그때’뿐이다. 갈등과 폭력이 거듭 될수록 상황은 더 나빠진다. 담임교사가 돌아가면서 학생들을 불러다가 왜 그랬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대화를 한다. 그래도 안되면 학교의 공식 기구인 ‘학생지도위원회’에 회부하여 문제를 드러내고 그에 맞는 ‘책임’을 지게 한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상세히 다룰 것이다.)
그래도 안되면 담임교사뿐만 아니라 기초과정 부장교사를 포함하여 모두 달려들어 특단의 대책을 세운다. 직접 갈등으로 겪고 있는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반 학생들 모두 모여 정규 수업을 모두 뒤로 미루고 이 갈등과 폭력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학생들에게 감정일기 쓰기, 특정 욕설, 표현하지 않기 등의 과제를 부여한다. 또 주변의 학생들도 방관자가 되지 않고 감시하고 개입해서 멈추라고 발언하기로 공동 약속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학부모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갈등과 폭력이 반복되고 학교에서 교사들이 노력이 이어지는 즈음 담임교사는 해당 학생의 학부모에게 연락하여 상황을 설명한다. 그리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교사와 학부모가 한 방향으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과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나누어 맡기도 한다. 필요하다면 학교에 직접 방문하여 학생, 교사와 함께 전체 대화에 참여한다. 당신의 자녀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겪고 있는지, 속내를 듣는다. 내 아이의 부모를 넘어 모두의 보호자로서 바라고 기대하는 바를 말해주기도 한다.
교사와 동료 학생, 학부모들이 모두 달라붙어 이와 같은 절절한 노력들이 꾸준히 이어지면 문제는 자연스레 완화된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앞에서 요약·정리한 일들은 거의 1년 내내 되풀이된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학생들은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가 굵어지는 동시에 이때 쏟아부은 노력 덕분에 점점 평온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3.
앞서 잠시 언급한 ‘학생지도위원회’(이하, 지도위)에 대해서도 간단한 설명이 필요하겠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생활하다가 학교의 생활 규칙을 어기는 경우, 이를테면 교사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학교 밖을 나가거나 심각한 폭력을 일으키는 등의 문제를 일으키면 지도위에 회부가 된다. 생활교육부 소속 교사를 포함하여 사안별로 필요한 교사들이 지도위를 구성하고 해당 학생이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동기로 그랬는지, 확인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등에 대해서 알려주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지혜학교만의 학생 지도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책임지기’이다. 이는 ‘처벌은 없다’라는 말과 이어진다. 잘못한 일에 대해 교사들이 ‘형량을 계산하여 선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 숙고한 뒤에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잘못한 일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학생 자신의 자발적인 성찰과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교육적으로 중요하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이에 학생들이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책임지기의 구체적인 내용들, 이를테면 학교 공용 신발장 정리하기, 식사 후 학교 조리실에서 뒷정리 돕기, 텃밭 정리하기 등을 제시하면 교사들과 협의하여 일정기간 동안 정해진 과업을 수행한다.
모든 제도가 그렇듯이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실제 운영하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또 다른 문제가 나오기 마련이다. 오랫동안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났던 한 교사는 지도위 운영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처벌을 하지 않는 것까지는 이해도 되고, 동의도 되지만 사실상 책임이라는 말로 본인의 행위를 면피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닐까, 해당 학생의 성찰과 반성을 이끌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거죠. 지도위가 마무리되어도 해당 학생이 달라진 것 같지도 않고 달라졌다 해도 그것이 확인이 되지 않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지도하는 교사로서 무력감을 느끼는 일은 아마 모두 같을 겁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것 아니냐,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공교육에서 학폭위를 운영하듯이 그렇게 처리할 수는 없는 거 아니냐 하는 반문도 나오고 있고요.”
이처럼 학생은, 더 나아가 사람은 쉽게 반성하지 않고, 쉽게 달라지지 않으며, 쉽게 거듭나지 않는다. 앞서 교육은, 학생의 배움과 성장은 자판기에서 물건을 뽑아내듯이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했었다. 그러나 이런 문제야말로 저 무거운 말을 가장 힘겹게 감당해야 하는 순간이다. 어떤 교육적 노력도 곧바로 정직하게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이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4.
온갖 노력을 기울여도 똑같은 일이 되풀이된다고 했지만, 사실은 갈수록 폭력의 강도가 심해져서 극단적인 폭력으로 치닫지는 않으며, 오히려 (오랜) 시간이 흐르면 폭력적인 관계는 비로소 자취를 감춘다. 지혜학교에서는 왜 폭력적인 상황이 심화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를 또 다른 교사는 이렇게 생각했다.
“학생들 사이의 폭력이 극단적으로 가지 않는 것은 학생들 사이에서 그래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전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 분위기나 문화를 본인들이 돌아보면서 그러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도 있는 것 같고 선생님들이 어쨌든 학생들을 붙들고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도 한몫을 하는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겠지요. 학생들끼리 갈등이 심했을 때, 그 반의 다른 많은 학생들은 그러지 말자고 말했었거든요. 일이 있을 때마다 이야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학생 자치 안건으로 올려서 문제를 공론화하면 다시 한번 돌아보고 생각을 하는 경우들이 있는 것 같아요.”
‘과연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서 갈등과 폭력을 완전히 없앨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기에는 객관적인 정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이렇게 질문을 바꿀 수도 있겠다. ‘한평생 살아가면서 내 안에 똬리 틀고 있는 폭력성을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있을까?’ 학교 폭력의 문제가 폭력을 몰아내고 단순히 학생들끼리 사이좋고 평화롭게 지내도록 만드는 과업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피상적인 접근일 것이다. 폭력적인 행동을 저지른 사람을 대상으로 적절한 절차를 밟아서 곧바로 그를 교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는 인간의 변화와 성장에 대해 무지한 생각일 것이다.
‘파테이 마토스’(pathei mathos)라는 옛 그리스의 격언을 떠올린다면, 인간은 모두 고통으로부터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폭력 문제에 대응한다는 것은, 갈등과 폭력이 낳는 고통을 딛고 어떻게 더 나은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전인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여기에 든든한 뒷배가 되는 것은 평화를 지향하는 ‘학생 문화’이다. 축축이 젖은 숲에서는 불씨가 금방 사그라들 듯이,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 이러지 말자’라는 목소리를 내는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갈등과 폭력은 커지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이 학생들은 평화적인 학생 문화의 주체인 동시에 교사들이 곳곳에서 땀과 눈물로 자신들 사이의 갈등과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는 사실을 지지하는 목격자이자 증언자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지혜학교에서는 해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학교 폭력 문제를 다 같이 손잡고 견디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