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각종 서점에서 사고 팔리는 책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저자가 오직 돈 벌려고 쓴 책. 다른 하나는 자신의 이익은 뒤로 물려두고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쓴 책. 앞엣것을 나쁜 책, 뒤엣것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 보자.
이렇게 나누었을 때, 서점에서 잘 팔리는, 쉽고 재미있는 책들은 대부분 나쁜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출판-유통업계의 각종 광고에 노출된 소비자들은 별 고민 없이 ‘그들이 쳐 놓은’ 그물에 걸려 책을 구입한 뒤 ‘그들이 의도한 대로’ 재미있게 읽는다. 이런 책들은 쉽고 재미있다. 때마다 독자의 가슴을 두드리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잘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팔려고 썼지만, 내용이 좋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굳이 시간도 없는데 나쁜 책들 속에 파묻혀 세세히 살펴 좋은 책을 골라내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까) 값싸고 자극적인 불량식품에 빗대어 생각하면, 이런 책들이 나쁜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좋은 책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읽는 책들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책을 사도 저자에게는 물질적 이득이 돌아가지 않는 책이라면 좋은 책일 확률이 더욱 높다. 고전(古典�Classic)이 대표적인 예다. 고전은 아무리 사서 읽어도 저자에게 물질적 이득이 돌아가지 않는다.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꾸준히 그런 책들을 읽고 있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는 책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그것은 최소한 2,700여 년 전부터 헬라스 사람들 사이에서 즐겨 불리던 서사시였다. 누군가가 이런 노래는 더 오래 남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외우고 있던 시를 손수 글로 옮겨 책을 만든다. 그리고 그 책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옮겨진다. 2,700년 동안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이 손으로 직접 베끼는 수고를 감내하면서까지 그 내용을 후손들에게 전하려고 힘을 기울였을까. 그간 수많은 전쟁과 사고로 책이 유실되거나 불타버리는 일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았을 텐데, 그럼에도 얼마나 노력했으면 2,700년 전의 책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2025년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 전해졌을까.
2,70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노력을 기울인 이유를 무시하지 말자. 이것이 고전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다. 더 나아가 그 노력의 크기는 고전에 담겨있는 의미의 깊이와 비례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시대가 바뀌어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가 있다. 고전은 바로 그러한 문제들을 가장 탁월한 방식으로 다루는 책이며, 그렇기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좋은 책이란 그러한 가치들을 담고 있는 책을 말한다. 팔려고 만든 책은 절대 흉내 낼 수 없다.
이런 책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시·공간에 얽매이지 않는 ‘인간의 문제’를 담고 있다. 결코 쉽게 읽히지는 않으나 읽는 방법을 익힌 뒤에 읽으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한 번 읽는다고 하여 다 읽은 것이 아니다. 여러 번 읽어야 한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길어 올릴 수 있다. 또한 저자의 문제의식과 저술의 목적이 명확하며, 그 내용을 전하는 방식과 내용 자체가 적합한 형식을 띤다. 내용상으로는 다른 좋은 책들과 맞물려 있어서 하나의 좋은 책을 읽으면 다른 좋은 책들도 쉽게 찾아 읽을 수 있다.
아무 책이나 읽지 말자. 어차피 우리가 태어나서 읽을 수 있는 책의 수는 한정되어 있다. 이왕에 책을 읽는 것이라면 더욱 의미 있고 좋은 책들을 골라 읽으려 노력하자. (물론, 책을 읽는 활동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 책이나 눈에 들어오는 대로 읽어야 한다. 일단 책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책을 읽는 데에 익숙하고 책 가운데 인문학 책을 본격적으로 읽으려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