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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준 May 18. 2023

잘못은 크레온에게 있다

소포클레스_<안티고네>에 관한 단상


  

1.

  이 작품의 제목을 “크레온”이라 붙이는 게 더욱 어울리지 않았을까? 이야기의 처음은 안티고네의 단단한 결기로 시작되지만, 이야기의 대부분은 통치자인 크레온을 가운데 놓고 사방에서 생각과 말들이 부딪히다가, 마침내 크레온만이 남아 파멸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시선을 크레온에게 모아 놓고 보면, 새삼스런 물음이 생긴다. 도대체 크레온은 어떤 중대한 과오를 저질렀는가? 도대체 어떤 잘못을, 어느 정도로 했기에 아들 하이몬과 아내 에우뤼디케가 연이어 목숨을 내던지기까지 했는가?


  에우리뒤케는 한 손으로는 칼을 자기 몸에 찔러 넣으면서, 다른 손으로는 이 모든 고통의 책임은 크레온 당신에게 있노라 정확히 가리켰다. 이에 크레온도 가슴을 쥐어뜯으며 자신의 잘못에 몸부림쳤다. 그러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뒤에도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크레온은 어떤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결과를 마주하게 되는가? 물론 고집스럽게 자신의 정책을 밀어붙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파멸의 한가운데로 내몰릴 만한 잘못이란 말인가? 게다가 고통 속에서 절규하는 크레온은 정작 자신이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알고 있을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야기의 곳곳에서 크레온이 저지른 크고 작은 잘못들을 떠올릴 수 있다. 상황을 보고하러 온 파수꾼을 까닭 없이 의심했고(320행 이하), 신의 법을 거스르는 법령을 선포했으며(450행 이하), 온 도시의 백성들이 어둠 속에서 작은 소리로 나누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730행 이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크레온의 ‘성깔’ 때문에 도시가 혼란에 빠졌다며 질책했고, (1015행 이하) 그 외에도 크레온의 오만함(1095행 이하)과 생각 없음(1240행 이하), 더 나아가, 감정이 격해졌을 때 종종 묻어 나오는 노예나 여자, 젊은것에 대한 멸시도 크레온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이런 질책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크레온이 그처럼 파멸당해야 하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오히려 크레온은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는가. 그의 시선으로 테바이의 상황을 보자. 오래전, 라이오스 왕이 길에서 살해를 당했다. 연이어 괴수 스핑크스가 테바이의 길목을 막아서고 도시를 말려 죽이고 있었다. 시민들은 불안에 휩싸여 흔들렸다. 당시 권력의 뒷줄에 서 있던 크레온은, 한편으로는 왕이 없는 상황에서 나라도 도시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과연 이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질 능력이 있을까 주저했다. 그 사이에 듣도 보도 못한 오이디푸스라는 청년이 스핑크스를 몰아내고 도시를 구원했다. 시민들은 그를 왕으로 추대했고 크레온도 자기 자신에 대한 복잡한 마음을 뒤로 물리고 오이디푸스를 왕으로 섬겼다.


  그런데,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오이디푸스의 통치가 시작되고 나서 도시는 또다시 질병에 걸렸다. 재차 도시를 구하겠노라 큰소리치던 왕이, 돌고 돌아 자기 자신이 이 질병과 재난의 원흉이라는 진실 앞에 불명예스럽게 테바이에서 쫓겨났고 자신의 누이인 이오카스테도 이 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가까스로 상황을 수습하여 다음 왕위를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이자 형제)인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에게 공평하게 나누었더니, 이제는 그들 사이에서 또 갈등이 커져 온 도시가 전쟁에 휩싸이고 그렇게 테바이는 또다시 재앙 속으로 빠졌던 것이다.


  크레온이 통치해야 할 나라는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였다.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세우고 도시를 치유해야 할 막중한 과업이 주어진 것이다. 이제는 예전처럼 머뭇거릴 수 없다. 없는 힘을 짜내어 도시의 영웅과 원수에게 각각에 어울리는 대우를 해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애매모호해서는 안 된다. 적은 적이고 동지는 동지이어야만 한다. 살인자인 동시에 구원자였고, 남편인 동시에 아들이었으며, 문제의 해결사인 동시에 문제의 원흉이었던 오이디푸스가 몸소 보여주었던 그 애매모호함. 오이디푸스가 쫓겨 나간 뒤,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가 번갈아 나누었던 왕권의 그 애매모호함. 그러한 애매모호함들의 다른 이름은 무질서이다. 더 이상 무질서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마음먹었다. 그 누구보다 자기의 마음이 흔들렸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더 강력한 법이 필요했다. 적은 적으로, 동지는 동지로 대우하라.(180행 이하) 이를 어기는 이는 온 도시의 시민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을 것이다.


  그렇게 도시는 명확한 질서 위에 올곧게 세워져야 했다. 도시의 질서가 무너지면 재난과 질병이 들이닥친다. 건물의 모든 무게를 떠받치는 주춧돌을 세우는 심정으로 법령을 선포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법령을 선포하자마자 어린 조카가 대놓고 자신의 법을 어겼다. 있는지 없는지 알 수도 없는 신의 법을 들먹이며, ‘뻣뻣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당혹스러웠다. 사람들 앞에서 뱉어 놓은 말이 있었기에 계속 큰 소리를 쳐야 했다. 광장에 세워 놓고 사방에서 날아드는 돌멩이 대신, 외곽 동굴에 밀어 놓고 입구를 가로막는 큰 바위를 안티고네에게 보여 주었다. 죽지 않을 만큼 물과 음식을 넣어 줄 테니 살고 싶으면 나중에라도 마음을 바꾸고 잘못했다고 말하라.


  여기까지가 크레온의 일이었다. 노예니, 여자니, 젊은것이니 하는 말들도 그렇다. 이는 테바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오래전 전쟁터에서 창과 방패를 함께 들고 도시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적 있는 명예로운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본 적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들의 자격 없음을 말함으로써 우리의 자격 있음을 강조할 수도 있지 않는가!               


그러나 권위 앞에 나약한 사람이 권위를 앞세우는 법. 기별도 없이 찾아온 테이레시아스의 예언에, 아니 그 예언자의 권위에 크레온의 나약한 마음이 비로소 드러난다.


“테이레시아스: 그러면 이것도 잘 알아두시오, 이제 내 달리는
태양의 회전을 몇 번 채우기도 전에,
그대의 배에서 나온 이들 중 하나가 시신이 되어
저 시체들에 대한 대가를 치르리라는 것을.
그대는 지상에 속한 자 하나를 아래로 던져
살아 있는 영혼이 명예를 잃고 무덤에 거주하도록 붙잡아 두고
저승 신들에게 속한 시신 하나는, 바쳐야 할 의식도 바치지 않고서
장례도 없이 신성치 않게 이곳에 잡아두었으니, 그 대가로 말이오.
이들에 대해서는 그대에게도 이승의 신들에게도 권리가 없소.
이들은 이 일에서 그대에게 폭력을 당한 것이오.”(1064-1074)


  사실상 크레온은 폴뤼네이케스와 안티고네에게 폭력을 저지른 것이다. 경건을 행한 자에게 불경죄를 부여했다. 살아있는 영혼을 죽은 자들을 위한 무덤에 가두고, 반대로 죽은 영혼은 장례를 치르지 않음으로써 이승에 가두어 두었다. 마땅한 자에게 마땅한 대가를 부여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크레온이 저지른 ‘폭력’이며, ‘불의’이자 ‘무질서’이다. 정확히 말하면 크레온의 통치 행위 자체가 사실상 무질서였는데, 그 자신이 질서를 잡기 위한 법령을 선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무질서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런 무질서의 대가로 하이몬이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된다. 이로써 신의 법은 크레온이 저지른 무질서를 질서로 바로 잡는다.    


 3.

  기이한 점은, 테이레시아스는 하이몬의 죽음을 예언했을 뿐, 아내인 에우뤼디케의 죽음에 대해서는 침묵했다는 점이다. 하이몬의 죽음은, 마땅한 자를 마땅하게 대우하지 않은 크레온이 저지른 무질서에 대해 신의 법이 내린 벌이라고 한다면, 에우뤼디케의 죽음은 무엇에 대한 대가인가? 크레온이 저지른,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잘못이 있다는 말인가?


  겉으로 보자면 에우뤼디케의 죽음의 원인은 하이몬을 죽게 한 데에 있다. 그리고 하이몬의 죽음의 원인은 크레온의 무질서한 통치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위에서도 말했듯이 크레온이 신의 법을 어긴 대가는 하이몬의 죽음으로 치렀다. 여기에 천상의 이야기꾼 소포클레스의 숨겨진 장치가 드러난다. <오이디푸스 왕>에서도 테이레시아스의 예언 중에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눈을 찌른다는 결정적인 이야기는 나오지 않듯이, <안티고네>에서도 테이레시아스는 에우뤼디케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소포클레스가 숨겨놓은 메시지를 찾기 위해서라도 에우뤼디케의 죽음은 어떤 잘못에 대한 대가인지 돌아가서 물어야 한다.


  에우뤼디케가 직접적으로 그 누구도 아닌 하이몬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목숨을 끊었다는 점에 주목하면, 이제 우리는 크레온과 하이몬의 대화를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하이몬은 크레온에게 무엇을 말했는가? 신의 법을 이야기하는 안티고네와 테이레시아스와는 달리 하이몬은 도시 백성들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행하며, 무엇을 비난하는지를 살폈노라 말한다.(686행 이하) 그리고,


하이몬: 제가 사악한 자들을 경건히 섬기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크레온: 저 계집아이가 사악함에 감염된 게 아니란 말이냐?
하이몬: 이 테바이의 온 도시 백성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크레온: 내가 도시가 시키는 대로 명해야 한다는 것이냐?
하이몬: 아버지께서 방금 아주 어린애 같이 말씀하셨다는 걸 아십니까?
크레온: 내가 이 땅을 다스릴 때 내 뜻이 아니라 다른 이의 뜻대로 해야 한단 말이냐?
하이몬: 한 사람에게 속한 것은 국가라 할 수 없습니다.
크레온: 국가는 지배자의 소유가 아니더냐?
하이몬: 아무도 없는 땅이라면 혼자서도 잘 다스리겠지요.  (730-739행)


  하이몬은 신의 법을 이야기하는 대신 “온 도시의 백성들”을 말한다. 통치자의 겁박에도 불구하고 어둠 속에서 오가는 그들의 말과 생각들을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크레온은 지배자가 왜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하냐고 반문한다. 이런 반문이 가능한 이유는, 도시는 다름 아니라 지배자인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크레온의 또 다른 잘못이 드러났다. 국가를 운영하는 데에 있어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는 것. 이것이 크레온이 저지른 두 번째 잘못이며, 에우뤼디케의 죽음을 불러일으킨 원흉이었던 것이다.  


  만약에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갈등이 이 작품의 절정에 그쳤다면, <안티고네>는 (많은 사람들이 해석하듯이) 신의 법에 맞서는 인간의 오만을 경계하는, 그리스 인들의 전통적인 옛이야기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소포클레스의 내심은 바로 하이몬의 등장 이후에서 드러난다. 하이몬의 입을 통해, 누가 이야기 하는지, 그 발언자의 자격보다는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그 발언 내용의 타당성을 보라고 힘주어 말한다. 도시는 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더 나아가 온 도시의 백성은 크레온과는 달리 신의 법을 알아보고 지지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라는 것을 과감히 주장한다. 이를 부정했던 크레온의 통치는 결국 에우뤼디케의 죽음이라는 참상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안티고네>의 또 다른 의미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기원전 440년, 번성하던 아테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민주정에 보내는 소포클레스의 헌사(獻詞)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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