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와 성직자
굳게 닫힌 수술방 문틈으로 무거운 기운이 스며 나온다. 환자 관련해서 중요한 내용을 전달해야 하는데도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문 앞에 서서 경건하게 마음을 먹고 큰 숨을 내쉰 뒤에 결의에 찬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버튼을 누르면 자동문이 드르륵 열리고 부릅뜬 눈이 나를 바로 쳐다보는데 죄인이 된 것처럼 흠칫 놀란다. 파란색 수술모와 수술 마스크 사이로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 두 눈은 ‘어째서 여기에 들어왔느냐’라고 추궁하고 있다.
귓속말로 속닥속닥 환자의 상태에 대해서 알려준 뒤 고개의 끄덕임을 확인하고 돌아 나온다. 나오는 길에 수술대 쪽을 살짝 엿보면 주변의 소음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집중하는 두 개의 눈이 보인다. 그 뒤로 발판에 올라서 수술하는 장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 부리부리한 눈을 보니 누군지 알 것 같다. 공중에서 두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 아래 계신 분의 손동작과 다르지가 않다.
아쉽게도 그분의 수술은 볼 기회가 없었다.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다인데 잘하는 수준이 어느 정도냐고 하면 펠로우 선생님들이 수술 스케줄을 짤 때 이 분은 수술방에서 엄청 예민하고 무서우시니 전공의들은 안 되고 자기들만 들어가려고 챙겨두는 수준이다. 엄청 예민하고 무섭다면서 자기들은 꼭 챙겨서 들어가고 수술 준비도 철저하게 한다. 진짜로 좋은 것은 숨겨두는 그런 심보일까? 이 파트를 돌 때마다 한 번쯤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만 들은 것들이 있어 감히 ‘한번 볼 수 있을까요?’라고 청해 보지 못했다.
회진을 돌면 환자들이 곧잘 ‘수술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분은 모든 수술은 하늘에 달려 있다며 소리 높여 진인사대천명을 설파한 뒤에 자리를 뜬다. 수술의 도사가 되면 도인과 같은 마음을 같게 되는 가보다. 그 설교의 한 구절 중에 ‘하늘이 우리 몸에 수술의 길을 만들어두셨다.’는 구절이 있는데 참 적절한 표현이지 싶다.
외과의를 칼잡이라고 표현하는데 외과 의사 중에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수술은 칼로 벤다기보다는 조직을 찢어내는 과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 느낌이 어떤 느낌이냐고 하면 LA 갈비를 뜯을 때 뼈에 붙어 있는 콜라겐 덩어리를 갈비의 두께 방향으로 끊어낸 뒤에 뼈에서 벗겨낼 때 찌지직하면서 깔끔하게 뼈와 고기가 분리되는 그런 느낌이다. 우리 몸이 여러 레이어가 겹쳐져서 이루어져 있고 암 수술은 암을 중심으로 레이어를 분리한 뒤 암 덩어리를 싸 내서 꺼내는 듯이 이루어진다. 신기하게도 겹과 겹이 잘 벗겨지면 피도 안 나고 중요한 구조물을 건드릴 일도 없이 수술이 순조롭게 완료된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은 일인 것이 조직의 색이 비슷비슷해서 오렌지가 담긴 바구니에서 더 오렌지빛을 내는 오렌지를 찾아내는 그런 느낌이고 머릿속으로 2차원이 아니라 3차원으로 그림이 그려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장축을 따라서 시원하게 조직을 긁어내며 내려가다가 보면 자칫 바로 아래에 평행하게 흐르고 있는 혈관을 건드리게 된다. 재앙이다. 옛날 해부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지도에 선배 외과의들이 그어 만든 수술의 길을 잘 찾아서 따라가는 것이 ‘손이 좋다.’, ‘수술을 잘한다.’는 칭찬의 숨은 의미이다.
그런데 이분의 담당 전공의가 되면 조금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때가 있다. 진인사대천명이 마음에 거리끼는 환자분들이 있어서 그분들을 위로하며 ‘잘해드리겠다는 의미이다.’라고 풀어드려야 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가만 보면 병원의 의사들과 외과 내 세부 파트의 성향을 ‘끝까지 해본다와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인다’는 파트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이 성향에 따라서 치료의 방향도 어느 정도 결정이 되는 부분이 있고 성격적인 측면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소문에 의하면 원래 이식 파트에서 촉망받는 분이셨는데 젊은 사람의 일부를 떼서 오래 사신 분들에게 주는 것을 거부하셔서 다른 파트로 가셨다고 들었다. 그런데 또 소아 이식에는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신다고 한다.
곧 은퇴를 앞둔 회식자리에서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기술과 판단력을 흠모하는 수술의 장인이 후배들을 앉혀놓고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지금보다 수술방법, 도구, 약물, 의학지식 등등이 발달하지 않은 수십 년 전에는 살리는 환자보다 잃는 환자가 더 많았을 것이다. 이런 시간을 보내면서 어떤 분들은 질병과 싸우는 투사가 되는가 하면 어떤 분들은 겸허하게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는 성직자가 되는 것 같다. 한국 외과계의 거인들이 수십 년간의 경험 속에서 끌어낸 결론을 두고 갑론을박할 수 없다. 외과 회식자리에서 나온 종교이야기가 갑작스러웠지만 환자를 두고 치열하게 고민해온 흔적들이 엿보여 진인사대천명이 마음에 큰 울림을 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