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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호퍼 Mar 14. 2021

미국의 헌법, 누구를 대변하는가?

민주주의의 대담한 발명품 vs 조지 워싱턴에 대한 헌정

 '필라델피아의 기적'을 이뤄낸 55명의 대표자들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이들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배경을 이해하면, "왜 대통령제를 발명해냈는지", "선거인단 제도를 왜 창안해냈는지" 등에 대한 해답을 일정부분 찾을 수 있다.


55명의 사회적 배경

먼저, 헌법제정 회의에 참석한 55명의 연령이다. 55명 중 20대는 4명, 30대는 14명, 40대는 23명, 50대 이상은 14명으로 평균 연령은 42세였다. 최고령은 81세의 벤저민 프랭클린이었고, 최연소는 26세의 뉴저지 대표 조너선 데이턴이었다. 대표단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었고 실제로도 두드러진 활약을 한 알렉산더 해밀턴, 에드먼드 랜돌프, 거버너 모리스, 제임스 매디슨 등 4명은 30대에 불과했다.

   

55명 중 41명은 대학을 졸업했다. 9명은 프린스턴 대학교를 졸업했고, 6명은 영국에서 대학교를 나왔다. 그리고 31명은 변호사 자격이 있었고, 주지사 7명, 의사 4명, 판사 6명, 교수(교사) 6명, 군 고위직 8명, 검찰총장 4명 등으로 상당한 전문성을 갖춘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다.


대표자들의 풍부한 정치적 경험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미국의 독립과 건국, 그리고 국가형성 과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8명은 독립선언서에 직접 서명을 했고, 15명은 1776년과 1780년 사이에 주(州) 헌법 제정에 참여했다. 25명은 주 의회 의원을 지냈고 40명은 1783년과 1787년 사이에 연방의회 의원을 역임했다. ‘건국의 아버지’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다.      


대표단 55명 중 42명은 독립전쟁 동안 군인으로 복무한 경험 때문에 남다른 애국심이 있었을 것이다. 이들이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연방정부의 무기력함과 강한 중앙정부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 2018년 6월 <TIME> 특별호에서 건국의 아버지 7인을 다뤘다.
로버트 달 교수는 55명의 대표자를 지칭할 때 ‘국부’, ‘건국의 아버지’라는 용어 대신에 ‘헌법 입안자(Framers)’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건국의 아버지라고 부를 때, 마땅히 포함되는 존 애덤스, 사무엘 애덤스, 토머스 페인, 토머스 제퍼슨과 같은 주요 인물 다수가 헌법제정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건국의 아버지'라는 용어는 워렌 하딩 Warren G. Harding의 1916년 공화당 전당대회 기조연설 이후 대중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1973년에 역사학자인 리처드 모리슨이 존 애덤스, 벤저민 프랭클린, 알렉산더 해밀턴, 존 제이,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 그리고 조지 워싱턴 등 7명을 건국의 아버지로 명명한 바 있다. 이 중 존 애덤스와 토머스 제퍼슨, 벤저민 프랭클린은 독립선언서 초안 작성에 참여했고, 해밀턴과 매디슨, 제이는 <연방주의자>의 저자로 헌법 비준을 앞장서 주창했다. 그리고 제이, 애덤스, 프랭클린은 독립전쟁을 종식시킬 파리조약(1783)의 대표로 비준에 참여했고, 워싱턴은 대륙군의 총사령관이었으며 헌법제정회의 의장이었다. 워싱턴, 아담스, 제퍼슨, 매디슨은 대통령을 역임했고, 제이는 최초의 대법원장, 해밀턴은 최초의 재무부 장관으로서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건국의 아버지를 7명만이 아닌 독립선언서의 서명자(Signers), 헌법제정회의 대표자(Framers)들까지도 포함시켜 그 범위를 넓게 보는 견해도 있다.


55명의 경제적, 정치적 배경

헌법제정회의 대표자들은 인민들의 투표로 선출된 것이 아니다. 헌법제정회의를 소집한 연합의회는 “각 주의 대표자들은 각 주에서 임명되어야 한다”고 정했을 뿐이다. 회의에 참석할 각 13개 주의 대표자들은 단원제 조직인 펜실베이니아와 조지아를 제외하고는 양원의 주 입법부에서 선출됐다. 주목할 것은 연방 상원의원과 동일하게 각 주 의회에서 대표자들을 선출했다는 점이다.  


주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의 선출 자격에 당시로써는 엄격한 재산자격이 있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찰스 비어드 Charles A. Beard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헌법은 ‘반신들 (半神, demi-gods)’이나 심지어 ‘무관심한 사람들’에 의해서도 창안되지 않았으며, 더더욱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비준 절차로 채택되지 않았다. 대신에, 경제적 이익이 모든 단계에 걸려 있었다.”


비어드의 경제적 해석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55명의 대표자는 부동산을 보유한 지주이면서 금융업, 제조업, 무역·운송업 등을 영위하는 상위 0.1%의 선택받은 남성들이었다는 점은 이론이 없다. 나머지 99.9%의 사람들은 1787년 여름 필라델피아에서 55명이 “왜 모였는지”, “모여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두기도 어려웠고, 알 수도 없었다.


제임스 메디슨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헌법제정 회의가 경제적 배경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확인시켜준다.(Chomsky, 1999·2005) 

영국에서 지금이라도 선거권이 모든 계층의 국민에게 주어진다면 지주들의 재산권이 불안해질 것이다. 토지개혁법이 제정될 것이니까. 이런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개혁으로부터 이 나라의 이익을 영구히 지키고, 소수의 부자를 다수의 횡포에서 보호하기 위한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더구나 이들은 각 주의 이익을 최대한 방어하고 관철하도록 임무를 부여받았을 것이다. 남부 출신과 북부 출신, 그리고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주와 많은 주는 근본적으로 정치적 대척점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새로운 연방헌법을 제정하기 위해 필라델피아에 모인 것이 아니라, 단지 연합규약을 개정하기 위해 12개 주로부터 파견되었을 뿐이다. ‘헌법제정 회의’라는 명칭도 헌법 제정 이후에 붙여진 것이다.

▲ 백안관에 걸린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로 잇몸이 좋지 않아 틀니를 항상 끼고 있었기 때문에 입모양이 부자연스럽다.


민주주의의 대담한 발명품 vs 조지 워싱턴을 위한 헌정

필라델피아에서 인류 역사에 유례가 없는 새로운 행정수반 모델인 ‘대통령’이 발명되었다. 이에 대해 켄 곰리Ken Gormley(2016)와 같은 정치학자는 “대통령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대담한 발명품으로 공화제 정부에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극찬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통령제는 “정말 민주주의의 대담한 발명품일까?”, 아니면 “이미 행정수반으로 내정된 조지 워싱턴을 위한 헌정일까?” 더 나아가 “당시의 헌법 입안자들은 지금처럼 막강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을 예상했을까”라는 의문이 없을 수 없다.


미국의 대통령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국의 헌법은 대통령의 권한이나 의무에 대해 별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헌법 제2조에서 대통령의 대내적인 권한만을 대략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를 두고 “헌법 제2조는 미국의 독창성을 나타내는 위한 왕관 중의 하나”라고까지 높이 평가하는 이도 있다.


어쩌면 헌법 입안자들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의 막강한 권한을 가진 행정수반을 만든다는 것을 충분히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헌법 제2조 제1절은 대통령에게 ‘행정권’을 부여하지만, 부여된 행정권에 대해 아무런 정의나 설명을 하지 않는다. 제2조 제2절에서는 대통령은 ‘육군과 해군의 총사령관’이 된다고 규정하지만, 군대를 지휘하는 대통령의 권한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다. 더구나 의회의 독립적인 ‘전쟁 선포권’은 대통령의 군 통수권과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아 후일 곤란한 문제에 직면하기도 한다. 또한 헌법은 대통령에게 ‘상원의 권고와 동의’를 얻어 조약을 체결하고, 연방판사와 대사, 특정한 연방의 하급관리를 임명할 권한을 부여한다.


헌법의 침묵은 대통령에게 짙은 안개가 끼고 어두컴컴한 산길을 걷게 하는 것과 같다. 심지어 대통령의 권한이 명확한 것처럼 보이는 부분에서도 헌법이 침묵하고 있는 예는 많다. 이에 대하여 아킬 리드 Akhil Reed 교수(2010)는 헌법을 이렇게 두둔한다. 

“헌법 제2조의 눈에 띄는 개방성은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행정부를 발명해내기 위한 헌법 제정자들의 천재성이 투영된 것이다. 공백 부분은 조지 워싱턴을 통해 채워질 것이고, 그가 대통령직을 둘러싼 안개를 걷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겨진 공백은 역사를 통해 채워질 것이다.” 


실제로 대통령의 권한에 대해 굳이 상세하게 규정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초대 대통령은 조지 워싱턴으로 누구나 예상했기 때문에 대통령의 권한에 관한 규정을 의도적으로 비워놓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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