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요리사 ep.12-서영의 계란찜

행복해야해

by 춘식

금요일이 되었다.

서영의 집에 초대받은 날.

"억해야, 니 뭐 가져가는 거 없나?"

"와인 한 병 사갔어."

"와인? 니가 와인을 알기는 아노?"

"...편의점에서 제일 비싼 거 샀어."

해한이는 웃었다.

"야, 그래도 빈손으로 가는 것보단 낫다. 니 옷은?"

"이거."

검은색 셔츠에 청바지.

"오케이. 그럼 잘 다녀와라."

"응."

오후 6시, 서영이 보낸 주소로 향했다.

서영의 집은 마포구의 작은 빌라 2층이었다.

초인종을 눌렀다.

"오셨어요? 올라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서영이 앞치마를 두르고 나왔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거 뭐예요?"

"와인이요. 별거 아니지만..."

"와, 감사해요! 마침 와인잔도 준비했어요."

서영의 집은 작지만 아늑했다. 거실 한쪽에는 남편의 사진이 작은 액자에 담겨 있었다.

"앉아 계세요. 거의 다 됐어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니요! 오늘은 제가 사장님을 대접하는 날이에요. 가만히 계세요."

서영은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는 거실을 둘러봤다. 책장에는 요리책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남편의 요리 노트도 보였다.

"사장님, 식탁으로 오세요!"

식탁에는 이미 여러 접시가 놓여 있었다.

시금치나물, 콩나물, 김치, 그리고...

"계란찜이요?"

"네! 제가 요리 학원에서 배운 거예요. 오늘 처음으로 사장님께 대접해드리고 싶었어요."

계란찜은 뚝배기에 담겨서 김이 모락모락 났다.

"앉으세요!"

나는 자리에 앉았다.

"밥은 솥밥으로 지었어요. 사장님이 솥밥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느낌이요."

서영은 밥을 푸고, 국도 따라줬다.

"자, 이제 계란찜 드셔보세요!"

나는 숟가락으로 계란찜을 떴다.

부드러웠다. 입에 넣으니 고소하고 부드러웠다.

"어때요?"

"...맛있어요."

"정말요?"

"네. 정말 맛있어요."

서영의 얼굴이 환해졌다.

"다행이다! 사실 오늘 세 번이나 만들어봤어요. 연습하느라."

"세 번이나요?"

"네. 사장님한테 맛없는 거 드릴 수 없잖아요."

우리는 함께 밥을 먹었다.

"서영씨."

"네?"

"요리 많이 늘었어요."

"정말요?"

"네. 이 계란찜... 정말 잘 만들었어요. 간도 딱 맞고, 부드럽고."

"사장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너무 기쁘네요."

"저한테 배운 거보다 더 잘하시는 것 같은데요."

"에이, 그럴 리가요. 전부 사장님 덕분이에요."

우리는 계속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했다.

"서영씨, 혼자 여기 사세요?"

"네. 남편이 떠나고 나서 계속 혼자 살았어요."

"...외롭지 않으세요?"

"처음엔 정말 외로웠어요. 근데 이제는... 괜찮아요. 그리고..."

서영은 나를 바라봤다.

"요즘은 외롭지 않아요."

"...왜요?"

"사장님이 있어서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사장님한테 요리도 배우고,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시간도 보내고... 덕분에 많이 행복해졌어요."

"저야말로... 서영씨 덕분에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사장님도 그렇게 느끼세요?"

"네. 전에는 그냥 가게에서 요리만 했는데, 요즘은... 다른 것도 생각하게 돼요."

"다른 것요?"

"제 인생이요. 제 행복이요."

서영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식사를 마치고 서영이 가져온 와인을 함께 마셨다.

"사장님."

"네?"

"저... 질문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사장님은... 하해를 아직도 많이 생각하세요?"

나는 잠시 망설였다.

"...생각해요.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

"그럼... 저는요?"

"서영씨요?"

"네. 사장님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서영의 눈이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나는 서영의 눈을 마주 봤다.

"저는... 서영씨가 좋아요."

"...정말요?"

"네. 처음에는 그냥 손님이었는데, 이제는..."

"이제는요?"

"...소중한 사람이에요."

서영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저도요, 사장님."

"..."

"저도 사장님이 좋아요. 많이요."

우리는 한참을 서로를 바라봤다.

"사장님."

"네?"

"저... 하해를 대신하려는 거 아니에요."

"...알아요."

"저는 그냥... 저로서 사장님 곁에 있고 싶어요."

"...저도요."

"그럼..."

서영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 시작해봐도 될까요?"

나는 서영의 손을 잡았다.

"...네."

서영의 손은 따뜻했다.

처음으로, 나는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았다.

하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일 같지 않았다.

오히려... 옳은 일 같았다.

"사장님,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저야말로요, 서영씨."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꼭 잡았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하해야, 고마워. 나한테 살아갈 용기를 줘서.'

'그리고 이제는... 내 인생을 살아볼게.'

바람이 불었다.

마치 하해가 대답하는 것 같았다.

'잘했어, 억해야.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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