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요리사 ep.13-라면

by 춘식


계란찜 이후로 서영과 나는 연인이 되었다.

공식적으로.

"억해야, 축하한다!"

해한이가 어깨를 두들겼다.

"고마워."

"드디어 니도 사람 구실 하는구나."

"...그게 무슨 소리야."

"니가 몇년동안을 웃어도 웃는게 아닌 삶을 살아온 걸 옆에서 다 지켜봤으니깐"

해한이는 진심으로 기뻐해줬다.

수요일 저녁, 가게 문을 닫고 정리를 하고 있었다.

"억해야."

"응?"

"오늘 시간 있나?"

"왜?"

"라면 먹을래?"

나는 해한이를 바라봤다. 그의 표정이 평소와 달랐다.

"무슨 일 있나?"

"그냥... 오랜만에 니랑 둘이 라면 먹고 싶어서."

"...그래, 먹자."

우리는 가게 주방에 앉아서 라면을 끓였다.

신라면 두 개.

"억해야, 니는 계란 넣을 거제?"

"응."

"나는 치즈."

"알았다."

라면이 끓는 동안 우리는 말이 없었다.

라면이 다 끓자 각자 그릇에 덜어 먹기 시작했다.

"억해야."

"응."

"니 요즘 행복해 보인다."

"...그래?"

"응. 서영씨 만나고 나서 완전 달라졌다."

"고마워."

해한이는 라면을 먹다가 말했다.

"억해야, 나 할 말이 있다."

"뭔데?"

"...사실 나도 하해를 좋아했었다."

나는 사실 해한이가 하해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있었지만 들어내기가 싫었다.

"뭐?"

"니랑 똑같이, 나도 하해를 좋아했었다."


"...진짜?"

"응."

해한이는 라면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좋아했었다. 니랑 똑같이."

"...그걸 왜 이제 말하노?"

"말 못 했지. 니가 하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해한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하해도 니를 좋아하는 거 알았거든."

"...하해가 나를?"

"응. 걔도 니 좋아했다. 확실히."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나는 그냥...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니네 둘이 서로 좋아하는데, 내가 끼어들 수 없었제."

"해한아..."

"괜찮다. 진짜 괜찮다. 오래전 일이고."

해한이는 라면을 계속 먹었다.

"근데 하해가 떠나고 나서... 나도 힘들었다."

"..."

"니는 니대로 하해를 그리워했고, 나는 나대로 그리워했다. 근데 나는 니한테 말 못 했제. 니가 더 힘든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슬퍼하겠나 싶어서."

"미안하다...나는 몰랐네."

"몰라도 된다. 그게 내 선택이었으니까."

해한이는 라면을 다 먹고 국물을 마셨다.

"근데 니가 서영씨 만나는 거 보면서... 나도 좀 후련해졌다."

"후련해?"

"응. 니가 드디어 앞으로 나아가는구나 싶어서. 하해를 놓아주는구나 싶어서."

"..."

"그래서 오늘 말하고 싶었다. 나도 하해를 좋아했었다고. 근데 이제는 괜찮다고. 니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고."

나는 해한이를 바라봤다.

초등학교때부터 나를 곁에서 지켜준 친구.

하해를 좋아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까지 힘들어 하는 줄은 몰랐네.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얘도 똑같이 힘들었구나.

"해한아."

"응?"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네."

"뭐가 미안해."

"니 마음도 몰라주고..."

"야, 그럴 필요 없다. 나는 진짜 괜찮다."

해한이는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니 행복한 거 보니까 나도 기분 좋다. 진짜로."

"..."

"억해야, 서영씨 잘해줘라. 좋은 사람이다."

"...응."

"그리고 니도 이제 행복하게 살아라. 하해도 그걸 원할 거다."

"응."

우리는 라면 그릇을 치우고 설거지를 했다.

"해한아."

"응?"

"니도 좋은 사람 만나."

"나? 나는 괜찮다."

"왜?"

"나는 주식으로 돈 벌기 바쁘다. 애플 주식 오르는 거 보는 재미로 산다. 그리고 아마존이라는 인터넷 서점 주식도 사볼려고."

우리는 웃었다.

"그래도 니도 언젠가는 만나야지. 좋은 사람."

"그때 되면 그때 생각해본다."

해한이는 어깨를 툭 쳤다.

"암튼 니 잘됐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고맙데이, 해한이."

"우리 이제 진짜로 앞으로 나아가자. 니도, 나도."

"...응."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하해 꿈을 꿨다.

하해가 웃으며 말했다.

"억해야, 해한도 잘 챙겨줘."

"...알았어."

"그리고 서영 언니 좋은 사람이야. 잘해줘."

"...응."

"니들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어."

하해는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나는 눈을 떴다.

새벽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들고 해한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해한아, 고맙다. 니가 있어서.'

곧 답장이 왔다.

'돌았나? 잠 안 자고 뭐하노. 어서 자라.'

나는 미소를 지었다.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작가의 이전글작가의 말 - 연재 일정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