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시간도 함께 - 서영
2월이 되었다.
"억해야, 다음 주 화요일이 니 생일이제?"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네, 엄마."
"올해는 어쩔 거노? 부산 내려올 거가?"
"아니요, 서울에서 서영이랑 있을게요."
"...서영이? 그 여자 친구?"
"네."
"오메, 우리 아들이 드디어 여자 친구를 사겼네! 특해 누나한테도 말했나?"
"아직요..."
"내가 할게. 누나도 좋아라 하겠네."
어머니는 기쁜 목소리로 전화를 끊으셨다.
생일 당일, 화요일.
나는 평소처럼 가게 문을 열었다.
"억해야! 생일 축하한다!"
해한이가 작은 케이크를 들고 왔다.
"땡큐."
"오늘 서영이 누나 오제?"
"응, 저녁에."
오후 5시쯤, 가게 문이 열렸다.
어머니와 특해누나였다.
"엄마? 왜 서울에..."
그렇다. 내가 서영씨와의 관계로 인해 언급은 하진 않았지만 특해누나는 엄마와 아빠에게 내가 서울에서 학교는 안다니고 가게 열었다고 말을 했었다.
"아들 생일인데 와야지. 그리고 가게 오픈하고 처음 오잖아. 특해야, 짐 좀 들어라."
누나는 큰 봉지를 들고 있었다.
"억해야, 생일 축하한데이."
"응, 누나야."
"근데 여자 친구는 어디 있노? 보고 싶은데."
"나중에."
"그래? 그럼 우리가 기다리고 있다가 같이 저녁 먹자."
오후 6시, 서영이 왔다.
"사장님! 생일 축하... 어?"
서영은 가게 안을 보고 놀랐다. 어머니, 누나, 해한이가 모두 앉아있었다.
"어서 오세요!"
어머니가 일어나서 서영을 맞았다.
"... 안녕하세요."
"아이고, 이쁘게 생겼네. 우리 억해 잘 부탁한다."
"...네, 네!"
서영은 얼굴이 빨개졌다.
"자, 다들 앉아라. 오늘은 우리 억해 생일이니까 내가 미역국 끓여줄게."
"엄마, 괜찮아요. 제가..."
"가만 있어라. 엄마가 아들 생일에 미역국 끓여주는 게 당연한 거 아이가."
어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가셨다.
누나가 서영 옆에 앉았다.
"서영? 나는 억해 누나 기특해라고 해요."
"안녕하세요. 윤서영이에요."
"우리 동생 잘 부탁해요. 좀 무뚝뚝하지만 착한 놈입니다."
"네, 잘 알아요."
어머니가 주방에서 미역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미역국
내가 미리 불려둔 미역을 먹기 좋게 썰었다.
쇠고기(양지머리) 300g을 작게 썰어서 참기름에 볶았다.
불린 미역을 넣고 함께 볶았다.
물 3리터를 붓고 센 불에서 끓였다.
국간장 2큰술, 다진 마늘 2큰술을 넣었다.
"억해는 국물 진한 거 좋아하니까 미역 많이 넣었다."
시간관계상 압력솥에 30분 정도 푹 끓였다.
한 김을 빼고 양파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췄다.
"다 됐다! 밥 푸고 상 차리라."
우리는 모두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자, 생일 축하한다, 억해야."
"고맙습니다, 엄마."
어머니는 미역국을 내 앞에 놓으셨다.
"맛있게 먹어라."
"네."
나는 미역국을 한 숟가락 떴다.
어머니의 손맛.
어릴 때부터 매년 생일마다 먹던 그 맛.
"맛있어요, 엄마."
"그래, 많이 먹어라."
우리는 함께 밥을 먹었다.
"서영씨, 우리 억해 어때요? 잘해줘요?"
어머니가 물었다.
"네, 정말 잘해주세요. 저한테 요리도 가르쳐주시고..."
"그래요? 그럼 됐다. 억해는 말은 별로 없지만 마음은 따뜻한 놈이에요."
"네, 알아요."
누나가 말했다.
"서영씨, 우리 동생이 요리만 하고 다른 건 잘 모르는데, 이해해줘요."
"아니에요, 사장님 다정하세요."
"사장님? 아직도 사장님이라고 불러요?"
서영은 얼굴이 빨개졌다.
"아, 습관이..."
모두 웃었다.
"억해야."
해한이가 말했다.
"니 정말 행복해 보인다. 좋다."
"고마워."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억해야, 엄마가 니한테 미안한 게 하나 있다."
"뭐가요?"
"니가 어렸을 때 장사하느라 바빠서 많이 못 챙겨줬제. 그게 항상 미안했다."
"엄마, 괜찮아요."
"아니다. 니가 하해 일로 힘들어할 때도 엄마가 옆에 없었잖아. 그게 너무 미안했다."
"엄마...서영씨 있는데"
"와 괘안타, 근데 이제 니가 이렇게 좋은 사람 만나서... 엄마가 너무 기쁘다."
엄마도 티는 내시지 않았지만 나에 대해서 많은 신경을 쓰고 계셨구나라는 걸 알게되었다.
서영이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우리는 모두 함께 밥을 먹었다.
가족과 친구, 그리고 연인이 함께한 생일상.
어머니의 미역국, 누나가 사온 케이크, 해한이가 준비한 선물, 서영이 건넨 따뜻한 손길.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선물이었다.
저녁을 먹고 케이크를 자르고 촛불을 껐다.
"소원 빌었어요?"
서영이 물었다.
"네."
"무슨 소원 빌었어요?"
"비밀이에요."
사실 나는 이렇게 빌었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이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계속되길.'
'그리고... 하해야, 어디에 있든 행복해.'
어머니는 그날 밤 늦게 KTX를 타고 부산으로 돌아가셨다.
해한이도 집으로 들어갔다.
서영과 나만 가게에 남았다.
"사장님."
"네?"
"아니, 이제 이름으로 불러도 되죠? 억해씨."
"...네."
"생일 축하해요, 억해씨."
"고마워요, 서영씨."
"선물 아직 안 드렸어요."
"선물?"
서영은 가방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뭐예요?"
"열어보세요."
상자를 열어보니 손목시계였다.
"이거..."
"억해씨는 시계도 없이 다니더라고요. 그래서 준비했어요."
"감사합니다."
"뒤에 글씨도 새겼어요."
시계 뒷면을 보니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To 억해, 앞으로의 시간도 함께. - 서영'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서영씨..."
"억해씨, 저랑 앞으로도 계속 함께해줄 거죠?"
"...당연하죠."
"약속이에요."
서영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나는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약속."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바라봤다.
그날 밤, 나는 깨달았다.
인생은 계속된다는 것을.
과거를 기억하면서도,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을.
하해는 내 과거의 소중한 사람이고, 서영은 내 현재이자 미래의 소중한 사람이다.
둘 다 사랑할 수 있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축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