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A-Track 05-누구에게나 있는 그 소원
아직 30년도 살지 않았는데 반복 되는 기대와 실망과 오해가 가득찬 삶에 지친 청년이 있었습니다.
삶에 대한 의지가 0에 가까워졌던 한 청년이 만든 노래입니다.
노래 부를 힘도 없는 삶 속에서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인데
지금 돌아보니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삶에 대한 소원이 숨어 있었네요.
*곡의 하이라이트: 곡의 끝부분에 우는 듯한 기타소리가 그 청년의 마음을 잘 표현한 것 같아요.
곡 (링크): https://youtu.be/ORngB6U_YAE
[verse 1]
Would it be so bad, so bad
If you lower your guard
Would it be so bad, so bad, so bad
If you let me in
[bridge]
Don’t we all wanna be heard?
Don’t we all wanna be heard?
Don’t we all wanna be heard?
Don’t we all wanna be loved?
Don’t we all wanna be loved?
Don’t we all wanna be loved?
[chorus]
Huh-oh
It’s okay, k
Come on
Open your heart
Huh-oh
Just say “hey”
Come on,
Just take my hand
[Verse2]
I know you think I’m no good, no good,
Not enough for you,
If only I could I could
Show you what I’m worth
[bridge]
Don’t we all wanna be heard?
Don’t we all wanna be heard?
Don’t we all wanna be loved?
[chorus]
Huh-oh
It’s okay, k
Come on
Open your heart
Huh-oh
Just say “hey”
Come on,
Just take my hand
[outro]
Only had you known
only had you known
only had you known how I really am
I’d given everything for you
[outro/bridge]
Don’t we all wanna be heard?
Don’t we all wanna be heard?
Don’t we all wanna be heard?
Don’t we all wanna be loved?
Don’t we all wanna be loved?
Don’t we all wanna be loved?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고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고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고
내게 마음을 연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고 싶은 마음.
그런데 우리는 너무 불완전한 존재죠.
아무도 완벽한 부모님 밑에서 마냥 행복한 삶을 살며 '트라우마'나 '불만' 없이 자라지 않았죠.
만약 심리학이 말하는 걸 곧이곧대로 들으면 우린 거의 모두 다 내담이 필요한 환자 혹은 잠재적 환자/고객일 겁니다. 온전히 인정받고 사랑받고 영유아기, 유년시절의 정서적 필요가 대 채워진 상태로 자란 사람은 없을테니깐요.
이 노래를 부르는 청년도 그렇습니다.
상대가 자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는 투사가 드러납니다.
I know you think I’m no good, no good, not enough for you
사실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는 직접 듣기 전에는 완벽히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상대가 대놓고 적의나 혐오를 드러내지 않는 이상 자신의 '무언無言의 신호 해석력'에 의지해야 합니다. 비언어적 요소에 대한 해석은 개인의 경험에 크게 좌우되고요. 특히 이성에 대한 건 더더욱. 부모의 성향이 어땠는지 부터 반대성을 가진 형제자매 유무부터 다양한 경험이 영향을 미치죠.
그런데 상대가 자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저렇게 부정적으로 가정하면 제대로 다가갈 수도 없겠죠. 이런 마음 가짐의 소유자가 연애대상으로 매력적으로 느껴질리가 없습니다. 독단적인 것 같기도 하고 속단하는 모습인데 자신감도 없어보입니다.
(저와 사랑관/연애관이 많이 다른듯한 브런치작가 집샤님이 보시면 할 말이 많으실 겁니다.)
한편, 노래가사의 주인공은 자기애적 망상도 일부 드러냅니다.
"If only I could, I could, show you what I’m worth"
자신감이 없는듯하면서도 '자신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다면 ... '이라며 복잡한 태도를 보입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곤란하겠죠?
그런 가사 속에서도 계속 살아가고 싶어하는 인간 본연의 속성을 건듭니다.
- 누군가 자기를 알아줬으면 좋겠고 자기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
굳이 연애 관계가 아니더라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인간에게 있는 굉장히 기초적인 본능인 것 같아요.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느낍니다.
육아 5년차인 제가 내린 잠정적 결론 중 하나 입니다.
아이들이 사랑을 느끼는 포인트는 누군가 무엇을 얼마나 많이 사주느냐, 선물을 주느냐- 가 아닙니다.
자기가 하는 말에 얼마나 귀를 기울여주고 집중하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야, 지은이, 이안이 모두 그랬어요.
아직 말도 못하는 6개월 1세 사이에서 이미 마주 보고 앉아서 자기와 눈을 맞추고 말을 걸어주면 좋아하고, 잘 모르겠지 하고 아이 시선에 닿지 않는 머리 근처로 핸드폰을 숨겨 놓고 봐도 알아차려요.
이제 걸으면서 자기 의사 표현을 거침없이 (심지어 거칠게) 하는 단계가 된 이안이를 보니 특히 더 체감합니다. 옆에 누워서 이야기하고 손으로 만져주고 장난치고 안마해주고 하면 웃으면서 좋아하다가 핸드폰을 보면 싫어하는 소리를 내며 뺏으려 합니다. (핸드폰을 보고 싶어서 가져가려는 게 아니에요)
저희 집 아이뿐만 아니라 놀이터에서 만난 주변 이웃집 아이들이나 외부 아이들을 교육하는 환경에서도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더 나이가 든 첫째, 둘째는 이제 언어를 사용해 이야기 합니다.
"핸드폰 보는 게 중요해, 책 읽어주는 게 중요해?" 이런 직접적인 이야기를 할 때도 있고,
엄마 아빠가 핸드폰에 너무 집중해 있으면 포기하고 자기들끼리 놀러가거나 책을 보기도 해요. (그런데 종종 고개를 들고 관찰하고 있다는 거..!!)
남편으로서도 마찬가집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때는 서로의 관심과 집중이 필요할 때가 많죠?
아내와 마주 앉아 식사를 할 때도 가끔 급한 업무차 연락으로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가 그게 끝나도 계속 해서 보게 되면... 아내 심기가 불편해지죠. .. ...
(자기가 먼저 보고 있을 때는 별 생각 없어보입니다만...)

사실 그렇잖아요?
소개팅 하러 나갔는데, 앞에 앉은 사람이 자기 얼굴도 안 보고 핸드폰만 보고 있으면 좀 그렇죠?
배우자가 되었다고 그런 '좀 그런 기분'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테니깐요.
우리는 모두 '관심' 받고 싶어하는 거겠죠. 집중 받고 싶고.
날 완전하게 이해해주는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건 가능할까?
우리는 누군가/상대에게 이해 받고 싶어 합니다. 오해 받으면 싫죠. 화가 날 때도 슬플 때도 있죠.
그런데 그 이해의 정도에 따라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게 달라집니다.
나를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고 다가오며 구애를 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대부분의 (성숙한) 어른들은 이렇게 반응하지 않을까 싶어요.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물론 외적인 매력에 대한 인정을 받은 것 같아서 기분 좋을 분도 계시겠지만)
그런 사람과 결혼해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어떨까요?
사랑이란 단어가 동사가 될 때는 '이해 (To understand)'가 전제 될 때, 아름다워지고 의미가 생기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게 바로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사랑'과 '이해'를 주제로 마주하게 되는 딜레마라고 생각합니다.
날 알아줬으면 좋겠지만 사랑 받고 싶고,
사랑 받고 싶으니 날 전부 보여줄 수 없을 것 같고.
사랑 받을 만큼만 적당히 매력적인 요소만 선별적으로 '디스플레이'하고
깊은 내면의 아픔과 두려움들은 혼자 서 안고 살아가다보니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데도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껴 외로움이 사라지지 않고.
결혼이 본연의 정의를 가지고 있을 때는 이게 일부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감정만을 기반으로 한 게 아니라 감정이 오르락 내리락 사그락 할 때도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약속.
그 선언과 맹세를 '법'과 같은 구속력을 가지고 불완전한 서로가 쉽게 포기하지 못하도록 '묶어'둡니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안 좋은 사례들은 잠시 내려놓으시구요. 본연의 정의. 원래의 취지대로..라는 수식어를 강조해봅니다)
그래서 섣부른 화로 관계를 끝내지 못하게 돕고, 일시적 충동을 따라 배우자와 아이들에게 씻기지 못할 상처를 남기지 않도록 책임감 있는 가족구성원으로 살아가도록 가이드라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약속이 만드는 '구속력'이 서로가 서로에게 더 진실해질 수 있게 해주는 바탕이 될 때도 있구요.
내가 조금 덜 매력적으로 보일 때도 이 사람이 휑하고 떠나버리지 않을 수 있다는 근거처럼 느껴지니깐요.
그렇게 메이크업을 한 얼굴도, 클렌징 후의 얼굴도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고, 예쁜 옷을 걸치고 있던,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있던 같은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는 관계가 결혼이라고 생각해요.
'왜 누구네 집 남편/아내처럼 못해?'
이런 쓸데없는 불평을 하기 전에는 꼭 그 사람과 같이 살고 있는 사람만 알고 있을 그 부러움의 대상의 단점을 염두에 두어야할테구요. 나의 배우자가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나의 단점을 잔뜩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말이죠.
배우자가 나를 아무리 잘 알아도 나의 모든 과거를 알고 있지는 못하죠.
우리의 모든 생각과 과거를 다 아는 사람에게 사랑 받는 건 가능할까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 일, 잘한 일, 잘못한 일, 부끄러운 일, 감추고 싶은 것들...을 모두 포함해서요.
연애의 관점에서 '신비감'이 없어진다는 피상적인 분석으로 매력이 감소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죠. 하지만 나의 '전부'라는 것은 '장점'이나 '현재'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닐 겁니다. 그런 편집본은 연출된 나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앞서 말한 딜레마는 해결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대하는 초월적 사랑은 '신의 영역'으로 넘기게 되는 게 아닐까요?
나의 모든 과거와 잘못, 부끄러운 것들을 다 아는 존재가 그런 걸 다 알고 있는데도 나를 사랑한다?
그게 실감날 때 느낄 수 있는 안정감은 아마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과는 다른 따뜻한 만족감이 아닐까 상상해봅니다.
또 그게 된 상태에서는 결혼 안의 사랑을 다루는 법이 더 여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구요.
배우자를 통해 자신의 모든 애정욕구를 채우는 것은 정말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불가능할테니......
불만족이 불평이 되고 불평이 감사를 잃게 만들고, 화목한 부부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으니깐요.
노래 가사를 생각해보며 떠도는 생각들은 여기서 마무리 하고, 뮤직비디오의 스토리는 아래 글에서 설명하려 합니다. (내일 점심 12시에 공개될 예정입니다.)
https://brunch.co.kr/@chooseurmiracle/165
P.S= 이 곡에 대한 배경 이야기가 된 글은 아래 연재북에서 계속될 예정입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lastplandiary
공개기간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