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0000일을 앞두고 마지막 계획을 실행하려던 한 청년의 이야기
학교 기숙사 근처에는 낮은 산들과 호수가 있다.
호수가 내려보이는 낮은 산까지 올라간 나는 한 손으로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영상을 찍기 시작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이다.
더 잘 생긴 얼굴이 주인공이면 좋겠지만 내가 섭외할 수 있는 배우는 나 뿐이었다.
그렇게 부득이하게 나를 담기로 했다.
나는 카메라를 향해 말한다.
“My Name? Doesn’t matter. But I am a man with a plan”
[내 이름? 그건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나에겐 계획이 있다.]
“This is my last semester. I’ve made a perfect plan”
[이번이 마지막 학기이다. 그리고 내겐 완벽한 계획이 있다.]
여기까지 녹화 한 뒤, 장소를 바꿔 학교 캠퍼스 안에서 가장 높은 탑 아래로 이동한다.
탑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에 아래 카메라를 설치하고 말을 이어 간다.
“When this semester ends…? My Life also ends.”
[이번 학기가 끝나면, 내 삶도 끝난다.]
“I just decided to record my few days.
[마지막 몇 일을 기록하려 하기로 했다.]
“Hoping that it would be like a proof that I existed”
[내가 존재했었다는 증명이 될 수 있도록]
이제 사다리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5층 건물의 높이의 탑에 걸터 앉아 카메라를 한 손으로 잡고 촬영을 계속한다.
내 뒤로는 저 멀리 낮은 산들과 바다가 보인다. 종종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등을 떠민다.
내 앞으로는 캠퍼스 한 가운데 있는 운동장, 그리고 학생식당이 있는 건물이 보인다.
카메라를 바닥으로 향하고 한마디 덧붙이며 자켓을 벗어 바닥으로 던진다.
제법 높은데다 바람도 많이 부는 곳이라 자켓이 바닥까지 떨어지는데 꽤 걸렸다.
음성과 BGM과 함께 듣고 싶으신 분들은 첨부된 유튜브 링크를 틀고 읽어주세요. (※PC나 아이패드에선 들으면서 글을 읽을 수 있는데, 폰으로보면 유튜브만 나오는군요.) 저음이 잘 들리는 헤드폰을 쓰고 계신 분들은 (장면에 따라) 제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실 수도 있을 거에요.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 그거 꽤 묘한 기분이랍니다.
https://youtu.be/GKsPMWD8UcE?si=4Plw5BXTNCm7IF0d
내가 배우인데 화면에 나오지 않는 장면에서는 나래이션을 깔 수 밖에 없다.
다음 장면을 위해 나래이션을 녹음해야 하기 시작한다.
빠른 속도로 이어지는 내 일상의 수많은 조각들 위에 목소리를 입힌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나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한다.
….
….
….
이젠 잠이 오지 않는 것도 익숙하다.
눈을 감으면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이 반복 재생된다.
의미 없는 순간의 대부분은 지워진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은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은 내 기억을 대신해준다.
그나마 가끔 의식을 잃으면……
난 흑백의 세상 속에 있다.
왜 내 꿈은 흑백인지 해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난 적도 없고,
같은 흑백의 꿈을 꾸는 사람을 만난 적도 없다.
내 꿈의 끝은 언제나 엄청난 소음으로 끝난다.'
나는 촬영을 위해 장소를 교내 채플로 바꾼다.
내 목소리는 계속 내 마음을 담아 영상 속에 들어갈 음원이 된다.
https://youtu.be/0NXzikRba4c?si=y_ebGp-PTeTOFqIE
‘몇 일 후면 태어나서 10000일이 되는 내가
기억하는 날들은 1000일이나 될까?
그 안에 행복했던 날들은 100일이나 될까?’
‘10000일 째 되는 날,
신에게 날 데려가 달라고 기도한다면?
그 기도는 이뤄질까?
아마 아닐 거다.
..
...
...
..
그럼 내가 날 죽인 건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을 선택하겠다.
.
.
..
….
그래서 난 알래스카로 가기로 했다.
...
...
...
....
거기서 만약 늑대나 북극곰을 만난다면?
녀석들이 내 마지막을 처리한다면?
내가 나를 죽인 건지? 자연이 나를 죽인 건지?
천국의 배심원들 사이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아 맘에 든다.’
https://youtu.be/OZrX5TU-7dE?si=yZO5wx4mKoRsn53g
촬영을 마치고 일어나려는 찰나, 카메라 렌즈 덮개가 떨어졌다.
그걸 줍고 일어나려는데 강의실의 앞문이 열렸다.
‘어, 여기에 수업 있는데’
여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메라를 들고 고개를 들었다.
몇 주 째 밤새 컴퓨터 화면을 보며 과제를 해서인지 눈의 초점이 맞지 않는다.
처음 듣는 목소리, 처음 보는 얼굴이다.
지구 어디에 가도 미인의 범주에 포함될 것 같은 얼굴.
9990일 넘게 살았지만 처음보는 완벽한 얼굴이다.
화려하지 않아 더 예뻐보이는 그런 미美
난 나도 모르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예쁜 얼굴을 빤히 쳐다볼 용기는 없는 나.
고개를 떨구고 촬영 장비를 들고 나간다.
‘I’m almost done here.’
[이제 나가요]
그렇게 그녀를 지나 강의실 밖으로 나왔다.
우연이라고 해야할까.
내가 들고 있던 카메라에는 그녀의 얼굴이 담겼다. .
이런 나레이션이 떠오른다.
‘She might be an angel to take me away’
[날 데리러 온 천사일지도 모르겠다.]
작은 키에 긴 머리.
옅은 눈썹에 맑은 눈.
선이 예쁜 입술.
고백할 게 있다.
난 외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긴장하면 … 외국어가 튀어나온다.
그 날 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꿈은 색을 띄게 되었다.
모든 게 회색과 검은색이었던 꿈이 아니라.
모래는 모래색
바다는 바다색
하늘은 하늘색
파도는 하얀색
나는 누군가의 옆에 앉아 바다를 지켜보고 있다.
「何で色が付けているんだ?」
[왜 색깔이 입혀져 있는 거지?]
왜 꿈 속에서도 외국어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내 옆에 앉아 있는 사람 때문에 긴장한 건가.
꿈 속에서도?
파도가 밀려오고 어느 새 두 사람이 바닷가를 같이 걷고 있다.
「誰だ?」
[누구지?]
「あ、あれは僕か?」
[아, 저건 나인가? ‘]
내가 내 옆에 앉아 있던 사람과 바다를 걷고 있다.
내 기억에 없는 예쁜 장면이다.
그 꿈은 새하얗게 밝아지며 끝났다.
(♪여기엔 OST가 있어요♪)
https://youtu.be/NoCEZ2RfNSw?si=_x2Zr7hnEni8GBX4
다음 장면은 좀 위험하다.
난 학교 옥상의 난간에서 카메라를 들고 바닥을 촬영하며 걷는다.
6층 높이의 건물이니 혹시라도 떨어지면 이 다큐멘터리를 끝까지 촬영하지 못한다.
이 다큐멘터리에 쓰일 장면들을 위해 촬영하기 위해 구매한 카메라와 삼각대.
이것들이 내 마지막 몇 일의 목격자이다.
‘막상 내 삶을 담으려 해도 이 조촐한 일상 속에서
기록할 가치가 있는 건 뭘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
한 때 내 꿈?
난 음악을 좋아한다.
통기타, 일렉기타, 베이스 기타, 피아노, 드럼 … 가릴 것 것 없이 다 좋았다.
누가 가르쳐 준 건 아니지만 악기와 놀며 지내다보니 작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싱어송라이터나 뮤지션으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재능이 있는걸까? 먹고 살 수 있을까?
꿈을 좇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해서 꿈을 쫓아냈다.
그리고 보다 보편적인 삶을 선택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위한 BGM, OST는 직접 만들기로 했다.
이번 촬영을 위해 학교와 근방의 곳곳을 살펴보다 알게 된 ‘학교에서 가장 높은 곳’.
그 탑으로 올라가는 좁고 높은 공간에 기타를 들고 와있다.
오늘은 하늘이 푸르다.
카메라를 들고 꼭대기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보며 마치 여러 개의 문이 열려 있는
하늘로 향하는 통로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 채플 입구에 있는 이 탑 꼭대기에는 스테인레스로 만든 것 같은 커다란 십자가도 있다.
낭만이 넘치는 캠퍼스와 내가 나를 숨긴 이 공간을 구분하는 건 구멍이 숭숭 뚫린 철로 만들어진 벽.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지만 나는 반대편을 볼 수 있다.
반대편은 뻥 뚫려 있고 숲과 바다를 볼 수 있다.
난 삼각대에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작곡을 하고 있는 나를 담기로 한다.
통기타로 맘에 드는 코드 진행을 만들고,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 다가온다.
날 아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고 생각했다.
‘어, ㅁㅁ형! 맞죠?!’
대구 사투리가 느껴지는 서울말이다.
첫 번째 인가 두 번째 휴학을 했던 학기에 같은 팀이었던 후배이다.
이름…뭐였더라.
무슨… 빈이었는데.
-아, 선빈.
놀란 건지 반가운 건지 알 수 없는 웃음 섞인 말이 날아온다.
“아직 졸업 안했구나.
여기서 뭐해요?”
그러고는 카메라를 발견하고 힐끔 쳐다보며 묻는다.
“아, 졸업작품 찍고 있어요? “
-아..뭐 ..있어..
대충 얼버부린 나에게 선빈이가 묻는다.
”점심 약속 있어요? 같이 먹을래요?“
‘혼자 밥 먹은 지도 벌써 14주 째다.’
너무 외로워 보일 것 같아 목소리로 옮기진 않는다.
마지막으로 누군가와 밥을 먹는 것도 괜찮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번호 안 바꼈죠? 제가 연락할게요.“
나와 캠퍼스 사이를 막아주고 있는 이 구멍이 숭숭 뚫린 철판 뒤로 선빈이가 멀어져 간다.
이 장면도 영상에서 써먹을만 한가 싶어 카메라를 들이댄다.
구멍이 여럿 뚫린 철로 만들어진 벽.
예술적인 관객은 이 장면에도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
https://youtu.be/QGVDiGEe4b4?si=NXsJknxBIbguRNIQ
학교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들리는 곳을 하나 꼽자면 그건 학생회관과 식당이 있는 건물이다.
그 건물의 2층에서 아까 내가 있었던 탑을 찍으려한다.
창문 밖으로 나가 삼각대를 세팅한다.
내 마지막 몇 일을 담으려 할 때, 난 어떤 장면을 넣어야할까?
’내가 기록하고 싶은 것?‘
'미련이 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마침 아까 북극곰 장면을 촬영하던 빈 강의실에 들어왔던 그 ’완벽한 얼굴‘의 그 사람이 지나간다.
이름도 학년도 모르는 그녀.
언제 봤다고 벌써 위에서 내려다보는 뒷모습도 익숙하다.
배경인물처럼 카메라에 담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멀어지는 그녀를 쫓아 카메라 앵글이 움직인다.
마냥 멀어지는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다.
이 다큐를 완성해야 한다.
그런데...
‘떠나기 전에 알고 싶은 게 하나 생겼다.’
“형! 거기서 뭐해요!”
촬영 중인 나를 발견하고 선빈이가 부른다.
“배고파요. 빨리 내려와요.”
그런 선빈이도 카메라에 담는다.
“빨리와요.”
(♪여기엔 OST가 있어요♪)
https://youtu.be/WboHBQ_hXss?si=NcxLdoK0ADRpeKqT
오랜 만에 타인과 함께 하는 식사인만큼 식판으로 먹는 학생 식당 대신 분식을 시켜 먹을 수 있는 곳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처음 들어온 이 곳에는 누구나 칠 수 있는 피아노도 있었다.
주문을 마치고 선빈이가 화장실을 다녀오는 동안 이 시간을 활용해 영상을 위한 음악, OST를 만들기로 한다.
피아노 한 켠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의자에 앉는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기분‘
사실 그런 게 있기도 하다.
왠지 F키에서 시작된다.
피아노의 현들이 작은 망치에 맞아 생기는 울림을 듣는다.
혹시 이 금속의 현들도 아파서 울고 있는 걸까?
여러 장면들이 떠오른다.
캄캄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통로.
저 멀리 빛이 보인다.
출구 일까 싶어 그 쪽을 향해 걷는다.
한참을 걸어 다가가니 멀리 있는 바깥의 빛이 아니라
‘비상구EXIT’표시등이었다.
하지만 비상구의 문은 닫혀 있다.
내가 한 말이 아닌데 내 목소리가 들린다.
「助けて」
응? 구해달라고?
화장실에 갔던 선빈이가 돌아왔다.
이 영상에 쓰일 OST의 멜로디 라인을 완성시키고 싶어 계속 피아노를 친다.
피아노만 따로 녹음할 시간은 없고 현장감을 살려 이 장면과 음원을 그대로 쓰기로 한다.
내 뒤에서 선빈이가 말한다.
“가만히 있질 못하네.
와서 밥 먹어요.”
아, 혹시 선빈이는 그 사람을 알까 싶어 카메라를 꺼낸다.
아까 작곡 중이던 OST는 머리 속에서 계속 이어진다.
”어? 얘 내 친구에요.“
우연의 일치일까.
아님 잘 생긴 남자와 예쁜 여자는 서로 자연스레 지인이 되는걸까?
뭐 그딴 ‘선남선녀 끌림의 법칙’ 따위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건가?
그렇게 선빈이와 다음 날 아침, 그 강의실 복도에서 만나기로 한다.
우연을 가장해 자연스럽게 식사약속을 잡기로.
그래.
그게 내 최후의 만찬.
아니, 조찬인가?
나.
선빈이.
그리고 그녀.
제이.
이름을 알게 되었다.
To be continued....
1부는 여기서 끝인데 이어서 읽으시려면 아래로 쭉 내려가시고
쉬었다 읽고 싶으시면 다음 글로 넘어가서 읽으셔도 됩니다.
https://brunch.co.kr/@thewholeiceberg/188
음성과 BGM과 함께 듣고 싶으신 분들은 첨부된 유튜브 링크를 틀고 읽어주세요. (50초-1분 길이의 클립들입니다.) 저음이 잘 들리는 헤드폰을 쓰고 계신 분들은 제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실 수도 있을 거에요.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 그거 꽤 묘한 기분이랍니다.
*PC나 아이패드에선 들으면서 글을 읽을 수 있는데, 폰으로보면 유튜브만 나오는군요.
https://youtu.be/AnNjV3rhy8Y?si=qe1mQYrZrYA-p6Hh
마지막 일출을 담자.
이건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장면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일출 시간에 맞춰 새벽 일찍 일어나 카메라를 셋팅했다.
마침 원래 타임랩스 기능이 없는 내 카메라 GF-2의 핵펌이 공개되었다.
날씨도 괜찮다.
다행히 산 위로 올라오는 태양을 찍을 수 있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왠지 기대가 생겼다.
그녀를 처음 만난 그 강의실 앞이다.
알고보니 이 수업의 TA, 조교라서 일찍 오는 거였다.
난 강의실 앞 복도의 긴 의자에 앉아 선빈이를 기다리고 있다.
어제 선빈이를 기다리며 만든 OST의 피아노 선율이 머리 속에 흐른다.
선빈이는 안 오고 대신 핸드폰의 진동이 온다.
전화를 받으니 선빈이는 스쿨버스를 놓쳐서 늦는단다.
….
머리 속에서 흐르던 피아노 곡의 화음은 불협화음으로 바뀐다.
…
그녀가 나타난다.
그리고 나를 지나쳐 강의실로 들어간다.
기대하면 실망하는 법.
그게 인생.
아니, 적어도 내가 살아온 9999일은 그랬다.
난 스쿨버스를 타고 원래 계획대로 이 곳을 떠나기로 한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선빈이가 달려왔다.
”왜 핸드폰이 꺼져있어요?“
선빈이에게 덤덤하게 말한다.
-어..그렇네..
"늦게 일어나서 버스를 놓쳐버렸어요.“
난 눈을 맞추지 않고 고개를 돌려 말한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제가 점심 살게요.”
- 나, 이제 곧 버스시간인데.
“안되요. 먹고 가요. 제이도 불렀단 말이에요.”
그녀가 온다니 왠지 계획을 수정하고 싶어진다.
-……그래.
한 번만 더 기대해보기로 한다.
https://youtu.be/dklaKDbSENU?si=tAXqjEeEbi8hKs20
우린 학생식당으로가서 음식을 기다린다.
‘내 인생이 영화라면… ….
선빈이가 자리를 비운 사이… J가 나타나겠지.’
그녀가 피자박스를 들고 온다.
따뜻한 오렌지빛 석양이 학생식당 창문으로 들어온다.
조명이 따로 필요없다.
나를 발견하고 어색한듯 눈을 맞추지 못하고 다가와 자리에 앉는다.
선빈이를 기다리며 우리는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한다.
말문이 트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는 술도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조금씩 미소를 띄운 얼굴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이건 내 상상,
아니, 망상이다.
현실은 어떻게 흘러갈까?
테이블 위에 올려둔 선빈이의 휴대폰이 울린다.
“어.. 알았어.”
곤란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는다.
미안한 듯 말하는 선빈이.
“형… 제이는 일이 있어서 못 온다는데요?”
.
..
…
….
역시 영화와 인생은 다르다.
.
내 인생이 영화 같을리가 없었다.
(♪여기엔 OST가 있어요♪) https://youtu.be/NM-MpVxQyrQ?si=gx1RyZQFoViTuq10
그래서 난 옥상에 올라가 마지막 일몰을 카메라로 담기로 한다.
해를 등지고 역광의 피사체가 된 나는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든다.
“그래서 난 여기서 마지막 일몰과 함께 메시지를 남기려 한다.”
해가 기울었지만 일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영상에 넣을 다른 장면을 찍는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카메라를 들고 공대건물 옥상 난간에서 걷고 있는 나.
학부에서 대여한 캐논 ‘오두막’으로 나를 찍고,
내가 들고 있는 카메라 GF2는 내 시선을 담는다.
이 영상 위에 내 목소리를 입힌다.
‘그리고 난 알래스카행 비행기를 타려 한다.’
이 세상을 떠나는 방법은 많다.
뛰어내린다. 뛰어든다. 빠진다. 약을 먹는다. 쏜다. 목을 맨다. 칼을 쓴다...
하지만 그 모든 방법들은 ‘완벽’하지 못하다.
누군가 다시 살려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몹쓸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옥상 난간에서 위태위태하게 걸으며 카메라를 아래로 향해 높이를 실감나게 찍으며 생각한다.
떨어지면 위험하지만 그건 방법론적인 실패일 뿐.
사고사는 목표달성일 수도 있다.
연출되지 않은 사망.
이 역시도 논란의 여지는 있을 거다.
그 사이 드디어 해가 많이 저물기 시작한다.
구름 뒤로 숨으려는 태양의 빛은 하늘을 구름과 함께 연보라색, 오렌지색으로 물들인다.
안돼요
몇 번 안 들었지만 귀에 새겨진 그녀의 목소리이다.
다급한 듯 떨림이 있는 목소리다.
‘왜 여기에…?’
난 난간 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뒤를 돌아본다.
그녀가 나에게 다가온다.
어느새 노을을 향하고 있는 카메라의 화각 안으로 들어왔다.
자기가 카메라에 찍히고 있다는 걸 모르는 그녀가 내게 말한다.
“무슨 생각하는 지 알아요”
그러면서 손을 내민다.
'….난 그다지 여기서 뛰어내리려는 생각은 없었는데...'
그래도 10000일을 살아오는 동안 마주한 수많은 얼굴들 중 가장 아름다운 이가 나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다.
바람이 불어 얼굴에 머리카락이 흩날려도 그 아름다움을 가리지 못한다.
그런데…..
[그녀는 내 계획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 숲 속에 있었다.
그녀는 내 말을 들었던 거다.
숲 속에서 영상을 찍고 있던 내 목소리를 들었던 거다.]
그녀는 내 부피의 5분의 4가 채 되지 않을텐데
질량이 큰 물체가 작은 물체를 끌어당기듯이
우주의 법칙을 무시한 블랙홀처럼
날 끌어당기고 있었다.
이 장면엔 이런 나레이션을 넣으면 될까.
'왜 나의 눈부신 그녀는 블랙홀이 되어버렸는가?’
난 용기를 내어 그녀가 내민 손을 잡는다.
마치 국가 정상회담에서나 볼 듯한 로맨틱하지 않은 악수이지만 괜찮다.
그리고 카메라에 담긴 해는 어느 덧 손을 잡고 멈춰 있는 듯한 우리보다 낮게 지평선을 넘어 사라진다.
우리의 악수가 어색한지 그녀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오른다.
그녀는 내가 여기서 뛰어내리려는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왠지 기쁜 표정이다.
놀랐던 마음이 진정되었는지 그녀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녀는 카메라를 들고 옥상 난간을 걷고 있는 나를 보고 급히 올라 왔다고 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내 머리 속엔 이 영상을 위해 만들어진 곡이 흐른다.
급하게 만들어진 곡이지만 가사만큼은 누구에게나 있는 진심이 아닐까 생각된다.
...
Don’t we all wanna be heard?
Don’t we all wanna be loved?
...
우리는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가까운 해변으로 갔다.
모래사장을 걸으며 그녀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우리는 의외로 많은 장소에서 서로를 스쳐지나갔다.
그녀는 내가 채플 앞의 탑 꼭대기에서 촬영하고 있는 모습도 봤다고 한다.
…
내가 혼자라고 생각하고 있던 때
누군가 날 보고 있었다는 건…
생각해보지 못했다.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와 걷고 있는 동안 머리 속엔 나레이션이 흐른다.
내 마지막 기록이 될 뻔한 영상에 입힐.
My last plan has failed.
‘내 죽음을 기대하고 있던 관객들이 있었다면 사죄의 말씀을'
10000일.
많은 날을 살긴 했지만 어쩌면 아직은 이 인생이란 책을 덮기엔 성급한 건 아닐까?
'어차피 나는 시한부 인생.
아니,
우리 모두는 시한부 인생이다.'
.
.
'모든 삶은 끝을 향해 가고 있다.
그 끝을 누구와 함께 걷는가
무엇을 향해 걷는가
그게 중요한 거다.’
초겨울 바닷가여서 그런지 바람이 차다.
난 내가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그녀에게 건넨다.
그녀는 여자에게 장갑을 줄 때 그렇게 건네는 게 아니라며 나에게 다시 보여준다.
장갑을 벗은 내 손 위에는 영어로 11개의 글자가 써있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
그렇다.
어차피 우리는 죽는다.
성급하게 노력하지 않아도 죽는 유한한 존재이다.
머리 속에 나레이션은 계속된다.
“혹시 내 생명이 연장된 것을 기뻐해주는 관객이 있다면 감사할 다름.
여러분의 삶에 사랑이 가득하길"
결국 사람을 살리는 건
사랑이다.
희망이다.
THE END
& THE NEW BEGINNING
Special Thanks to J. & CL
P.S= 이 이야기를 읽고 뮤직비디오를 다시 보시면
다른 느낌이 들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뮤직비디오: https://brunch.co.kr/@thewholeiceberg/186
P.S2=혹시 영상과 사진 속 캠퍼스의 장면이 익숙하신 분들은 ‘쉿’…
제가 어설픈 신비주의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혹시라도 글을 소리로 다시 듣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재생목록을 만들어봤습니다.
영상의 장면들이 떠오를까 궁금하네요.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KXM1nsKdSGrZgl_R6xLA66guTScHXO6h
이 단편소설의 원본-단편영화 제작기는 아래 브런치북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lastplanreality
※이 이야기의 원천이 된 글은 다른 결말로 이어 집니다. 공개기간 종료
https://brunch.co.kr/brunchbook/lastplandi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