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 디자인'
어느 나라에 짓게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지을 집은 1층 집이 될 것이다. 2층과 지하실 있는 집에 살아본 결과, 별로라고 결론지었다.
한국의 아파트에서 살던 꼬꼬맹이 시절에는 나도 2층 집이 로망이었다. 선물 받은 미미의 집도, 경비실 앞에서 주워온 쥬쥬의 집도 죄다 2층 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그 시절 나는 2 주택 보유자였다! #씁쓸) 장난감 집도 드라마 속 부잣집도 할리우드 영화 속 집도 다 2층 집인데, 나와 주변 친구들 모두 죄다 닭장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2층 집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한 나이스 한 집이라고 뭔가 세뇌되었었다. 한참 후 우리는 캐나다로 이민을 갔고, 로망이던 2층 집에 살게 되었다!
근데 막상 살아보니 매일매일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었다. 깜빡 잊고 뭘 놓고 내려왔다거나 위층에 가지러 가야 할 때 등등. 현관 밖을 나가려다가 잊은 것 때문에 계단을 5번쯤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그 시간이 너무 아깝고 귀찮게 느껴져서 틴에이져 시절 나의 계단 내려가는 속도는 가면 갈수록 빨라졌다. 카펫이 씌워져 있어서 모서리에 닿는 발바닥을 거의 45도로 하고 미끄러지다시피 호도도도독~ 내려갔었고, 승숙(엄마)는 매번 조심하라며 다그쳤다. 운동신경 1도 없는데 넘어져서 구르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그 후 자취생활부터 지금까지는 경제적인 이유로 다시 아파트에 쭉 살고 있다. 이후에 다시 계단 있는 집으로 가게 된다면, 좀 힘들어질 것 같다. 뭔가 아래층이나 위층에 잊어먹은 게 있어도 참을만하면 그냥 포기할 것 같다. 선천성 운동신경없음과 후천성 운동하기시름으로 내 신체나이는 아마도 80살쯤일 것이다. 할머니는 계단 오르기 힘들다. 픽사 애니메이션 <업>의 초반 3분 씬. 10번을 봐도 또 눈물 나는 감동적인 오프닝이 지나고 나면,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홀로 남은 할아버지의 우울한 아침 장면이 나온다. 2층 침실에서 간신히 일어나 휠체어에 타서 계단의 전동장치에 기대 위이이이잉 하고 달팽이의 속도로 1층까지 내려온다. 중간에 한번 멈춘걸 할아버지가 쾅 때리면 다시 덜커덕 위이잉 하고 움직인다. 2층 집에 사는 노인의 비애다.
'유니버설 universal'를 영한사전에 집어넣으면 의미가 영 다른 것 같은 뜻이 두 개 나온다. '전 인류의' 혹은 '일반적인'. 집 설계 시점에서 봤을 때 '전 인류를 위한 디자인'과 '일반적인 디자인'은 거의 반대말 같다. '일반적인 디자인'은 사지 멀쩡한 다 큰 어른들을 위한 설계고, '전 인류를 위한 디자인'이라고 하면 몸이 불편한 사람들과 키가 작은 아이들까지 포함한 설계가 된다. 근데 진짜 그런 설계가 되려면 집이 알아서 막 사람 키에 따라 싱크대나 캐비닛의 높이가 왔다 갔다 해야 하고, 난 그렇게까지 인공지능이 탑재된 최첨단 아이언맨 집까지 바라는 건 아니다. 그냥, 입구나 모든 문에 턱이 없고, 넓어서 휠체어가 통과할 수 있고, 신발을 갈아 신는 현관에는 의자를 놓거나 손잡이를 달고, 욕실은 미끄러지지 않는 타일로 하고, 샤워실도 턱 없이 그냥 쓱 들어가고, 바닥도 넘어지면 머리 깨지는 대리석 같은 거 말고 따뜻한 촉감의 나무나 털이 짧아서 청소하기 편한 카펫을 깔고, 지면보다 집이 높으면 입구에 완만한 램프(경사면)를 놓는 정도가 내가 떠올리는 유니버설 디자인이다. 그렇게 만들면 '일반적인' 사람들도 살기 편하다. 다리 멀쩡한 성인들도 언제 욕실에서 미끄러질지 모르고, 계단에서 무거운 짐을 옮기다가 언제 허리가 나갈지 모른다. 나와 윤이콘(남편) 둘 다 은둔자여서 집에 손님이 올 일은 별로 없겠지만, 언젠가 누군가 온다면 지팡이를 짚던, 유모차를 탔던, 휠체어를 탔던, 슬개골이 연약한 강아지를 데려오던, 그냥 맘 놓고 들어올 수 있는 집이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집은 오르락내리락 계단이 없는 1층 집이 될 거다. 그런데, 2층 없이 1층만 짓고 싶다고 하면, 적어도 캐나다 쪽 업자한테서는
"뭐?? 2층을 안 한다고??"
라는 반응을 듣는다. 그도 그럴게 캐나다에서 1층 집(방갈로 bangalow)이라는 건 뭔가 옛날에 돈 별로 없는 사람이 간소하게 지은, 작고 오래된 집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하우스 플리핑 flipping을 하는 건축업자들은 토론토에 오래된 방갈로를 사서 2층으로 증축하고 외관도 모던하게 바꿔서 비싸게 팔아먹는 게 기본 방식이다. 새로 짓는 집을 굳이 1층으로 만드는 건 이해가 안 될 것이다. 면적상 2층으로 하는 게 훨씬 싸게 들기도 한다. 지붕이 제일 비싸기 때문이다. 같은 메스를 2층으로 안 하고 1층으로 널어 뜨려 놓으면 지붕 면적이 두배가 된다. 그런 1층 집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를 들은 건 지금은 무한 연기된 승숙의 집 증축 이야기를 할 때다. 그 당시 어깨 수술을 하고 고생하는 승숙을 보며, 처음으로 유니버설 디자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제안한 증축 콘셉트는 2층을 없애고 1층을 넓히자는 것이었다. 승숙의 집은 언덕에 걸린 집이라 세탁실, 팬트리, 차고가 지하실에 있고 그 외 모든 공간이 2층에 있었다. 장 본 것들, 요리할 재료, 빨랫감을 들고 지하실, 1층, 2층을 오르락내리락해야 된다. 두 계단층 모두 소리를 줄이기 위해 카펫으로 감싸여 있었는데, 카펫에 싸인 계단을 한 칸 한 칸 무거운 청소기를 들고 빨아들이는 것도 세상 귀찮고 고되다. 청소 도우미를 부를 것도 아니고 (외부인이 집에 들락날락하는 걸 싫어한다) 승숙의 성격상 죽기 직전까지 다람쥐처럼 동분서주 일을 만들어서 하고 돌아다닐 텐데 최대한 동선이 편안한 집으로 고쳐드리고 싶었다. 아 물론 내 돈은 아니고 나는 설계 아이디어와 업자들에게 연락을 넣는 두뇌 노동력만 제공했었다. 그 프로젝트가 중단된 건 코로나 때문에 건축업자도 나무도 모든 게 모자라는 대란이 일어나서다.
승숙의 집에 한 달간 머물며 리모델링 이야기를 할 동안 두 가지 작은 일이 있었다. 하나는 엘레나와 알렌(친구 부부)이 왔을 때다. 내 고등학교 동창인 그 친구들은 9학년 때부터 사귀다가 깨지다가 사귀다가 깨지다가 결국 결혼했다. 알렌은 부모님의 건축 공사 사업을 물려받아서 졸업하자마자 사장이 되어서 10년 넘게 일 해왔지만 몇 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휠체어를 타게 되었지만 여전히 운전하고 돌아다니면서 사업을 한다. 드론을 이용해 작업장을 확인하는 등 내가 듣기에 별 어려움 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미스터리 한 것은 그 둘을 여러 번 만났는데 한 번도 차에서 타고 내리는 걸 본 적이 없다. 알렌은 되돌아보면 휠체어에 있었고, 되돌아보면 운전석에 있었다. 마법인가?? 아무튼, 그 둘에게 승숙의 집 레노베이션 얘기를 하자, 건축가는 아니지만 업계 사람이니까 할 수 있는 한 조언을 해주겠다고 해서, 실제로 집을 보면서 이야기하기 위해 집으로 초대했다. 근데 막상 생각해보니, 휠체어를 탄 알렌이 이 집에 들어올 방법이 없었다. 승숙의 집은 경사면의 옆을 향하고 지어져 있어서, 진입로와 차고가 있는 집의 왼쪽 메스는 낮은 땅에 있고, 출입구가 있는 집 오른쪽 메스는 높은 땅에 있었다. 집에 들어가려면 한 층높이의 계단을 올라가야 했고, 램프는 없었다. 우리 집에서 알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은 결국 가라지 밖에 없었다. 자동차도 휠체어도 둘 다 바퀴로만 움직이니까, 딱 차가 들어올 수 있을 만큼만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휘발유 냄새나는 어두운 가라지에서 이야기할 수는 없었고 다행히 여름이라 밖에서 노닥거릴 수 있어서 (겨울에는 얼어 죽는다) 우리는 차고를 열고 그 앞 드라이브웨이(진입로)에 캠핑용 테이블을 펴놓고 만나서 이야기하게 되었다. 레노베이션 얘기니까 집 안과 밖 곳곳을 직접 보여주며 얘기를 나누려고 했는데 그냥 불가능이었다. 승숙의 집은 휠체어 탄 사람이 절대 들어올 수 없는 집이었다. 가라지로 들어올 순 있지만 그게 끝이다. 가라지에서 집 안으로 들어갈 때 또 턱이 있고, 들어오면 언덕 지형 구조상 지하실이라서 위로 올라가려면 또 계단이다. 산 넘어 산이다. 그동안 알렌이 갈 수 없게 된 곳이 얼마나 많았을까.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유모차도 마찬가지다. 첫째 딸 쌀이를 낳고 키운 처음 몇 년간의 이야기를 에세이집으로 펴낸 난다 님은, 유모차를 끌고 나서 휠체어를 탄 사람들의 심정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고 한다. 아기 낳기 전에 아무 생각 없이 늘 다녔던 카페가, 유모차를 끌고 갔더니 턱이 있어서 못 들어가게 되었을 때의 황당함과 좌절감. 유모차 타는 애기는 몇 년 지나면 유모차를 졸업하지만, 휠체어를 졸업할 수 없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문턱이 없는 곳만 다니며 사는 것이다.
두 번째 일은 그 동네의 이웃 한국인 할아버지를 오랜만에 뵈었을 때다. 해가 어슴프레 질 무렵, 저녁 식사 후에 소화시킨다고 승숙과 헤럴드(my bro)와 동네 한 바퀴를 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우리를 발견하셨다. 할아버지 집에 가서 오랜만에 다 같이 차라도 한 잔 하자고 하셔서, 걷기 시작한 지 5분 만에 다시 차를 타고 돌아오게 되었다. 도착하자 할아버지는 가라지 도어를 열지 않고 그냥 드라이브웨이 중간쯤에 어정쩡하게 주차를 하셨다. 날씨가 따뜻하니까 그냥 밖에 세워놓으시나 보다 하고 내려서 현관이 있는 계단으로 가는데,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집과 반대쪽으로 가시는 것이다.
"할아버지 어디 가세.."
말이 끝나기 전에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드라이브웨이에서 가장 완만하게 이어진 잔디밭 지점까지 가서 천천히 조금씩 경사면을 걸어서 현관문 앞 포치까지 도달하셨다. 항상 그쪽으로 다니셨는지, 아예 잔디가 죽어서 길이 나있었다.
"작년에 이 계단에서 심하게 넘어져서 다리를 다쳤어. 그 이후로는 영 계단을 못 쓰겠어…"
"그럼 램프를 놓으셔야죠!"
"어, 안 그래도 어떻게 램프를 놓을까 옆집 친구랑 이야기하고 있어."
그 후로 나는 동네의 집들을 보면 현관 앞에 계단이나 문턱이 있나 없나를 확인하게 되었다. 거의 80%가 현관 앞에 높던 낮던 계단이 있었다! 램프가 설치된 곳도 별로 없었다. 할아버지는 평생 살아오신 집에서 가능 한 버티다가, 더 이상 못 살겠다 했을 때 램프와 엘리베이터와 관리인이 있는 콘도로 이사 가실 것이다. 대부분 캐나다의 노인들이 하우스에서 살다가 말년에 콘도로 이사 간다. 더 각별한 관리를 해주는 노인용 콘도 타운도 있다. 어, 그런데 한국은 평생 도심의 아파트에 살다가, 말년에 '공기 좋은 곳의 주택'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희한한 일이다.
캐나다 집들은 거의 99% 지하실이 있다. 그건 아마도 난방 방식 때문이다. 한국의 보일러는 기계가 비교적 조그맣고 같은 층의 다용도실 벽에 붙이면 땡이지만, 캐나다는 대부분 퍼네스 furnace라는 게 지하실에 있다. 이걸 번역기 돌리니 '용광로'(!!!), '보일러' 이런 뜻이 나오는데 둘 다 전혀 아니고, 그냥 한국의 보일러 기계보다 겁나 크며, 온수를 돌리는 게 아니라 따뜻한 공기를 위로 보내는 방식이라 지하에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그런 흉물스러운 퍼네스를 다 가려버리고 인테리어를 멋지게 해 놔도, 지하는 결국 여름에는 습해서 제습기를 24시간 틀어야 한다. 근데 그것보다 나는 그냥 내 밑에 큼지막한 어두운 공간이 있다는 거 자체가 너무 싫다. 이 혐오는 내 실제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브루클린 지하실 쥐똥파리재앙과 거의 원탑을 다투는 또 다른 사건이 승숙의 집 지하실에서 일어났다.
언제였나, 몇 해 전의 여름이었다. 나는 승숙의 집에 놀러 왔다가, 그날 밤 비행기로 뉴욕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다들 어디 갔는지 집에는 나와 헤럴드만 있었다. 비가 하루 종일 오더니, 거의 해가 다 지고 난 저녁쯤에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 티브이 소리가 꺼지자 밖의 세찬 빗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나와 헤럴드는 '어 정전이네?' 하고 소파에 멀뚱멀뚱 앉아있었다. 그런데 점점 바깥의 물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뭔가 느낌이 쎄-했다. 우리는 이 소리가 바깥이 아니라 우리 밑, 지하실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오싹함을 감지했다. 둘이서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시퍼런 달빛?이 감도는 호러 주방을 지나서 암흑의 지하 던전 계단 입구에 다다랐다. 공포영화를 보면 보통 이런 타이밍에서 먼저 지하로 내려간 사람이 죽지 않았던가. 공포영화 거의 안 보지만 왠지 그럴 것 같았다. 누가 먼저 내려갔는지는 그다음 장면이 너무 끔찍해서 기억나지 않는다. 계단 몇 개를 내려가서 플래시 조명으로 지하실을 비추자, 시커먼 물고기 수십 마리가 지하실 바닥을 회오리처럼 헤엄치고 있었다-라고 0.2초 정도 생각했지만, 그 길쭉하고 흐물흐물 시커먼 것들은 물고기가 아니었다. 그 물은, 홍수로 인해 하수구에서 거꾸로 솟구쳐온 물이었고, 하수구 물에는 뭐가 떠다니는지 다들 잘 알 것이다. 우리 집 지하실은 이웃 할아버지네만큼은 아니어도 꽤 인테리어가 된 상태였다. 나무 바닥, 카펫 바닥, 세탁기, 건조기, 냉동고, 김치냉장고, 티브이, 등등. 검은 물고기 떼가 살림살이들을 휘감아 치고 있었다.
우리는 비명을 지르며 다시 계단 위로 도망쳐 올라왔다. 오 쉣! 오 쉣! 오 쉣!을 50번 정도 외친 후에, 살림살이를 보존해야겠다고, 2층까지 차오르면 어떻게 하냐고, 내려가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용감한 결단을 내렸다. 비닐봉지 따위로 발을 감고 자시고 할 여유는 없었다. 어차피 소용없어 보였다. 키 큰 부츠를 신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 부츠들은 전부 차고로 연결된 지하실에서 이미 검은 물고기 때의 희생량이 되었을 터였다. 우린 그냥 눈 딱 감고 맨발로 지하실의 참혹한 하수구 물속으로 전진했다. 물고기 때가 발목을 스쳐 지나가는걸 안 느끼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발은 그냥... 나중에 닦으면 된다.
"이 물이 솟구쳐 오르는 곳을 찾아서 막아야 돼!!" 헤럴드에게 소리쳤다.
물은 세 곳에서 솟구치고 있었다. 세탁실 바닥의 수챗구멍, 샤워실 바닥의 수챗구멍, 그리고 변기...
나는 <기생충>의 홍수 씬에서 변기에서 시커먼 물이 솟구쳐 오르는걸 뚜껑으로 막고 그 위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박소담처럼 태연할 수 없었다. 아니, 그 물의 솟구침은 뚜껑을 덮고 누른다고 해결될 압력이 아니었다. 뭔가 쑤셔 박아서 원천적으로 막아야 했다. 손에 잡히는 데로 수건이며 발매트를 쑤셔 넣었지만 헛수고였다. 압력에 대항할 무게감이 필요했다. 내가 이 어둠 속에서 계속 누르고 있을 순 없었다. 빨리 이걸 막고 샤워실 수챗구멍도 막아야 했다. 결국 나는 캐나다에 이민 올 당시 엄마가 갖고 왔던 초초초초초창기 김치냉장고를 그 위에 박았다. 지금 김치냉장고야 일반 냉장고 크기지만 초창기 모델은 정말로 품에 들어오는 장독대만 한 사이즈였다. 다른 구멍들은 어떻게 막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콸콸 쏟아지는 물소리 너머로 헤럴드가 우는 건지 비명을 지르는 건지 화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어찌어찌 수습을 하고 위로 올라온 우리는 세면대에 발을 집어넣고 한참을 닦았다. 당연히 뉴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캔슬되었다. 그날 우리 동네에 온 비는 1년 치 총강수량을 1시간 안에 다 쏟아부은 역사적인 기록이 되었다. 동네의 거의 모든 집들의 지하실이 침수가 돼서 인테리어 업자가 모자를 지경이었다. 결국 집 보험사와 키보드 배틀을 뜨고, 온다고 해놓고 안 오는 업자들과 실랑이를 벌이며 지하실을 고치는데 1년이 넘게 걸렸다. 다음에 이런 홍수가 나도 역류되는 일이 없도록 메인 하수구를 막는? 설비가 있다고는 했는데 불법이다, 아니다 말이 많았다. 그리고 설상 설치한들 그게 수동이라면 사람이 내려가서 레바를 내려야 하는데 이미 물고기떼가 등장하고 레바를 내리면 무슨 소용인가.
쥐똥파리 재앙과 검은물고기떼 재앙을 겪고 나니, 이제 지하실은 됐다. 난 미래의 우리 집에 지하실을 절대 안 만들 것이다. 어차피 지하실 없는게 계단도 없고 동선도 편해지고 여러모로 좋다. 그리고 집 부지는 홍수 위험이 없는 높은 데다 지을 것이다.
Dear my architect:
집안 구석구석 문턱과 계단이 없는 친절한 디자인의 1층집.
대지 구조상 출입구가 지면보다 높다면 입구에 계단과 램프 둘 다 설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