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과거로부터
서울은 내가 태어난 도시이다. 30년을 넘게 산 곳이지만 가끔은 낯설고 나를 서럽게 할 때가 있다. 2013년 졸업하던 때가 그랬고, 2016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둘 때가 그랬다. 그리고 2018년에도 그 주기가 찾아왔다. 대학교를 2번째 다니면서 좋은 점은 과거에 맞지 않던 옷을 새로 찾아 입는 느낌이라 참 좋았다.
하지만 그 옷도 4번의 계절을 지내고 보니 몸에 맞지 않는 부위가 하나 둘 늘었다. 배가 나왔고 구부정하던 어깨가 조금 펴져서 셔츠를 맨날 M사이즈로 입던걸 L사이즈를 찾게 되었다. 최근에 목욕탕 저울에 올라서 보니 새로운 숫자도 보였다. 내 나름대로는 새 옷에 내 새 모습을 맞춰 가고 있다.
하지만 주위 어른들과 부모님은 내 모습이 그리 예쁘게 보이지 않으신 거 같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심적으로 힘들었던 1년이란 시간 동안 그 좋아하던 SNS도 안 하고 시도 안 쓰고 글쓰기 활동을 일절 하지 않았다. 그동안은 정말 뇌가 죽어있는 상태였다.
그러다 올해 2월 문 시인을 알게 되었고 블로그에 글을 쓰게 되면서 내가 살아났다. 주중에는 구미에서 학교를 다니고, 주말이면 서울에 왔다. 집 근처 독립서점에서 좋아하는 시집을 읽고 손님들, 작가님들과 밤새도록 얘기하는 게 좋았다. 뇌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야만 2020년 2월에 안경광학과 학사 졸업장을 받고 안경사 시험에도 합격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늦은 밤 주말 외출은 100년 만의 무더위라는 올해 여름에 더 잦아졌다. 심야책방에 자주 오는 단골손님이 되었고 불면이 심해지는 여름밤을 보내기에 최적의 장소가 독립서점이었다. 그 시간만큼은 내게 참 좋은 시간이었지만 새벽에 들어오는 나를 보며 부모님은 "한심한 새끼"라 하셨다. 그 말에 나는 한없이 한심해졌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리고 구미에서 서울로 올라가던 비 오는 날에 일이 터졌다. 양측이 감정이 올라와 있었고 서로에게 상처를 줬다. 나는 고장 난 우산이라도 좋으니 마중받고 싶었다. 부디 나를 바람 맞히지 않길 바랬는데 오히려 태풍을 만난 기분이었다. 어떻게 해야 이 전쟁을 휴전할 수 있을지 아니 정전할 수 있을지 그저 날짜만 세고 있다.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고 누가 날 좀 깨워줬으면 좋겠다. 그게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길 스스로 바란다.
2018. 10.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