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는 맛도 이름도 복숭아
복숭아를 잡으면 보드라운 솜털이 가장 먼저 느껴진다. 약간 힘을 주면 단단한듯 하면서도 물렁한 촉감에 문득 조심스러워진다. 조그만 아기를 안을 때 처럼 혹시 아프게 할까 노심초사하게 만드는 과일이다. 흐르는 물에서 방향을 돌려가며 안씻긴 부분이 없도록 전체를 쓸어준다. 과도를 꽂듯이 윗부분에 탁 하고 놓으면 출발점이 생긴다. 거기서 부터는 복숭아와 대화를 하듯이 껍질을 살살 깎아내야한다. 사과처럼 단단하지 않아서 무턱대고 세게 그었다가는 복숭아 살이 날아가거나 내 살이 날아가거나 둘 중 하나가 된다.
진정한 복숭아의 맛은 딱딱한 복숭아(이하 딱복)인가, 물렁한 복숭아(이하 물복)인가를 가지고 인터넷에서 장난스러운 논쟁이 유행했었다. 개인적으로는 딱복의 가만가만한 단맛을 좋아한다. 물복은 물었을 때 뿜어져나오는 과즙의 강한 단맛이 입안을 휘감는 매력이 있다. 딱복은 상대적으로 여러번 씹어야 맛보다 향에 가까운 단맛이 새어나온다. 왠지 그 아삭하지 않지만 무르지도 않은 애매한 식감과 수박이나 자두같은 화려한 맛의 여름과일들에 잊혀지기 일쑤인 무난한 맛이 좋다.
인간 복숭아로 불리는 연예인들이 있을 만큼 복숭아는 그 색과 모양도 독보적이다. 상큼하면서도 달콤한 향기와 생기넘치게 웃는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동그란 모양은 생각만으로도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복숭아의 모양은 오묘하기도 한 것이, 어떻게 보면 사람의 얼굴 같으면서도 뒤집어 보면 엉덩이모양 같기도 하다. 카카오 프렌즈의 어피치는 뒤집힌 모양의 복숭아를 얼굴로 하고있는데, 엉덩이 모양으로 얼굴을 만든 것이 역설적이기도 하지만 더 생각할 것 없이 그냥 귀엽다. 그냥 귀여우니까 됐다.
복숭아는 이름도 복숭아다. 첫글자 복은 향토적이다. 복돌이 복순이처럼 복이 들어오라고 할머니가 강아지에게 붙인 이름 같다. 숭아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숭아는 모양도 소리도 약간 도시적이다. 시골에서 할머니 손에 자란 손주가 도시에 상경해 독립하여 성공적이고 바쁜 나날을 보내다가 휴가철에 할머니가 계신 시골로 내려가 여름밤에 마루에 앉아 할머니에게 도시에서 있었던 일들을 재미나게 이야기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복숭아는 이름도 예쁘다는 걸 강요하기 위해서 지나친 비약을 해보았다.)
어렸을적 바다에서 찍은 사진을 재미삼아 그려본 그림
나에게 복숭아는 어린 시절의 여름 바다다. 회사에 다녔던 아빠는 여름 휴가를 원하는 때에 마음대로 쓸 수 없었고 거의 매년 8월 초~중순에 휴가를 받았다. 주로 8,9,10 일쯤이었는데, 이때는 여름 휴가의 막바지이고 무더위도 마지막 기승을 부릴 때였다. 부모님은 바쁘고 여유가 없어도 여름에 적어도 꼭 한번은 나를 동해바다로 데리고 갔다. 아빠 차가 고장났던 해에는 이모차를 빌려서 가기도 했다. 트렁크가 넘치도록 짐을 싣고 남은 짐은 뒷좌석 아래에 넣은 채 그렇게 바다로 갔다. 바다에 도착하면 소나무 우거진 곳에 텐트를 치고 작은 플라스틱 식탁을 세우고 바다로 놀러갈 준비를 했다. 빨리 물에 가고 싶어 하는 나를 달래며 엄마는 이것저것을 바르고 씌우고 절대 풀리지 않도록 구명조끼를 동여매 주었다. 물장구를 치고 있으면 멀리 돗자리위에서 양산을 쓴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입술이 파랗게 돼서 물밖으로 나가면 엄마는 꼭 작은 컵라면과 예쁘게 깎은 복숭아를 주었다. 맵고 뜨거운 컵라면을 들이키고 나서 복숭아를 베어물면 다시 얼른 물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뜨거운 모래사장 위 따가운 햇볕 아래 몇 시간 동안 앉아있기가 지겹기도 했을텐데 엄마는 한 번도 자리를 뜬 적이 없었다. 언제나 눈을 들면 엄마가 그 자리에 있었고 물 밖으로 나가면 엄마의 양산 아래에서 복숭아를 먹으며 쉴 수 있었다. 끝물이어서 달콤함보다는 시원함이 어울리는 그런 복숭아가 제일 좋은 건 그 복숭아와 함께한 시간이 좋아서 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