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나는 수 많은 순간 중 우연이라 이름 붙여지는 것들은 많지 않다. 우연이란 당시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고도 스쳐지나가버리지 않고 기억속에 남아있는 것으로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의미가 있어야만 만들어지는법이다.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지인들과 갑자기 오랜만에 밥이나 먹자는 약속을 잡게 되었다. 비벼먹는 특이한 일본식 소바를 먹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던 중 대부분이 20대 후반이라 그런지 달라지는 몸상태에 대해 열띤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역시 다들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고 그 중 특별히 운동에 애착을 가진 분이 있었다. 오랫동안 취미로 주짓수를 할 만큼 경력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기에 도움 받을 만한 여러 질문을 하다 결국 내 체력이 얼마나 바닥인지를 모든 사람에게 공개하게 되었다. 그 분이 해 준 조언 중 하나는 매일 횟수를 정해서 팔굽혀펴기를 하고 하루도 빼먹지 않는 것을 스스로 챌린지 해보라는 것이었다. 사실 내가 팔굽혀펴기를 하나도 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걸 마음 속으로 이미 알고 있었기에 나는 꿈도 꿀 수 없는 수준이군 하고 그냥 듣고 잊어버렸다.
(다만 흉내내기 뿐인지도 모를)요가를 시작하면서 그 때 그 사람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힘들면 딱 한번이라도 매일 해보세요. 원래 체력이 약할 수록 느는 속도가 빨라서 쉽게 재미가 붙어요. 무릎 대고 하면 좀 더 쉬워요. 무릎을 대고 팔굽혀펴기를 하려는데 고민이 되었다. 무릎은 상체에서 어느정도 떨어진 곳에 대야하지? 팔은 어떤 각도로, 어느 방향으로 뻗어야 하지? 얼마나 내려가야하지? 별 소득없는 고민 끝에 자세를 잡고 상체를 내려보았다. 내렸다기보다 떨어진것에 가까운 팔굽히기 이후 펴기는 할 수 없었다. 역시 팔굽혀펴기는 어려워. 다시 팔굽혀펴기는 내게서 하루만에 잊혀졌다.
오랜만에 독서를 다시 시작하고 흥미로운 책을 찾아서 재밌게 읽던 중 강압적인 등장인물이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팔굽혀펴기를 시키는 장면이 나왔다. 팔굽혀펴기가 최고의 전신운동이라나 뭐라나하며 자기가 가둔 사람들에게 당신들을 위한 것이라고 팔굽혀펴기를 시키는 장면은 이야기의 전개 상 긴장감을 주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나는 팔굽혀펴기라는 단어 그 자체에 꽂혔다. 팔굽혀펴기가 ‘최고의 전신운동’이었다니! 다시 잊고 있었던 종로의 한 카페에서의 대화가 떠올랐고 ‘매일 하나씩만 하세요’라는 말이 광고문구처럼 머리속에서 띵하고 떠올랐다. 사람들이 말하지 않던가, 우연이 반복되면 운명이라고! 나는 책장을 넘기며 다시 한번만 해보리라 다짐했다.
다만 다시 시작한 게 그날 당장은 아니었고 며칠 후 요가를 끝내고 송장자세를 한 후였다. 운동에 있어서 만큼은 그렇게 성실한 사람이 아니니까. 또 다시 자리를 잡는 데 한참의 시간을 쓰고 팔을 굽혀 내려가보았는데 이번엔 올라오는 데 성공했다. 저지방 저근육의 바닥의 체력을 가진 사람에겐 그 기쁨이란 러너스 하이와 비슷했다. (당연히 러너스 하이 같은 건 겪어보지 못했지만 들은바에 따르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으니 그냥 넘어가주시면..) 하나가 되니까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는 매일 다섯개씩 할 수 있게 됐다. 6이 아니라 5라는 숫자가 좀 더 있어보여서 다행이다. 꼭 괜찮을 것 같다가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다섯번째 팔굽혀펴기를 할 때는 허리의 반동을 이용하지 않으면 올라오기가 힘들다. 체력이 향상됐다거나 하는 느낌을 받는 것 까진 아니지만 매일 아주 조금이라도 그나마 남아있는 근육을 쓰고 있다는 것 자체로 뿌듯하다. 요가나 팔굽혀펴기를 하기 싫은 날에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내 몸 만큼은 마음을 힘들게 하지 않게. 몸이 마음에 도움이 되도록. 그래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