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신입에게는 칭찬을!

by 초록하리보

얼마전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타 과 부장님이 ‘누구씨 자료 업로드 한 거 봤는데, 어쩜 그렇게 잘했어요? 진짜 괜찮더라’ 라며 인사를 하고 지나가셨다.



여기서 누구씨는 바로 나인데, 순간 어리둥절 했던건 부장님이 말한 그 일이 내가 그다지 성의를 다 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충 넘기자는 마음으로 한 일을 잘했다고 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었지만 마음이 개운하지가 않았다.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서 내가 처리한 일을 사무실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살펴보았지만 그래도 특별히 잘한 부분을 찾을 수 없었다. 그냥 지나가면서 하신 말이구나 생각하고 다른 일을 했다.



불쑥 또 부장님이 하신 말이 생각났다. 도대체 뭘 잘했다는 거야! 잘한거 아닌데? 대충한건데? 이정도 만으로도 내 수준에서는 잘 했다는 말인가? 잘하고 있다고 후배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려고 하신 말인가? 나 사실 이거보다 더 잘할 수 있는데… 어느새 나는 이미 마무리했다고 생각한 그 일에 다시 손을 대고 있었다. 템플릿을 수정하고 컨텐츠를 보강했다. 원래 진행중이던 일이 있어서 이 정도면 됐으니 더 신경쓰지 말자하고 생각을 접으려고 해도 자꾸 부장님이 칭찬한 그 일에 마음이 갔다.



누군가 다시 수정하라고 잔소리를 했다면 신경쓴 것 같은 티만 나게 대충 고치고 말았을 텐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나는 그 한 마디에 그 일에 집착을 하게 된 걸까?

나는 타인의 인정에 목마른 사람인가? 나는 열등감에 찌들어 자그마한 칭찬에도 날아갈 듯이 기뻐하는 사람인건가?

신입이 일로 칭찬을 받기란 흔한 일은 아니니 그럴만 하다 보려 해도 그 일은 누가봐도 잘했다고 짚어줄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이쯤 되니 부장님과 고도의 심리게임을 하는 기분이었다. 열심히 좀 하라는 뜻으로 반대의 전략을 쓴 건가. 아니면 타 과 신입에게 정말 할 말이 없어서 칭찬이라도 하신건가?! 골몰하다가 부장님은 지금쯤 그런 말을 한 것도 잊었을 것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닿자 이제 정말 그만 생각하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으니 난 아직도 그 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 일과 부장님의 심리를 예측 및 분석을 하는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난 정말 무섭도록 집요한 인간이다. 설마… 나의 집요함을 알고 그 일을 완벽하게 만들고자 날 자극하려고 그런 말을…..? 아, 이제 정말 좀 그만하자. 어쨌든 이번 일을 통해 한 마디의 말이 주는 여파가 얼마나 어마어마 할 수 있는가를 확실히 느꼈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곱씹고 또 곱씹게 되는 말을 한 적이 있겠지. 문제는 말을 내뱉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그 말이 얼마나 오래갈 것인지, 얼마나 무겁게 자리할 것인지를 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딱 내가 원하는 만큼의 값만 입력해서 3d 프린터로 만들고 ‘요 정도 둥그런 모양에 요 정도 무게의 말을 받아가세요. 2분 19초가 지나면 저절로 제거됩니다-’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마 그런 일이 가능한 세계에서는 말의 존재 자체가 필요 없겠지. 그러니까 말을 하려거든 말이 가질 수 밖에 없는 리스크를 감수해야만 한다.



나의 입 밖으로 나간 말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서 내가 의도한 것 보다 가벼울 수도, 까칠까칠 할 수도, 달콤할 수도, 느릿느릿 할 수도 있다. 나처럼 예민한 인간에게는 많은 말들이 무진장 찝찝하고 찐득한 재질로 와서 찰싹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모른다. 그렇다보니 사실 ‘좋은 사람이 되려거든 말을 할 때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면 된다!’ 같은 말을 진지하게 믿을 필요는 없다. 내가 여러 번 생각해도 그 말이 변덕을 부려서 상대방에게는 골치아픈 말로 가버릴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한다. 그러니까 도대체 말을 어떻게 하자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처음부터 나도 답을 몰랐기 때문에 그 답을 바라고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죄송하다는 심심한 말씀 밖엔 드릴 것이 없다. 다만 확실히 깨달은 것은 이것 뿐이다.



어쨌든 칭찬을 하자. 특히 신입에게는 꼭 칭찬을 하자. ‘아니 어떤 의도를 갖고 말해도 상대방에겐 다른 방식으로 다가갈 수 있다면서..?’ 같은 생각은 무시하자. 그냥 신입에게는 칭찬을 마구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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