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닮아서

by 초록하리보


어렸을적부터 겨울철만 되면 몸이 간지러워서 가끔은 피가 날 때까지 피부를 긁곤 했다. 어렸을 적에야 긁고 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의 피부에 관심이 없었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인식하게 된 이후로는 내가 심한 건성의 피부라는 걸 알게되었다. 워낙에 피부가 건조하고 기름기가 없어 며칠동안 세수를 하지 않거나 머리를 감지 않아도 기름진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나와 반대로 사춘기때는 여드름으로, 어른이 되고 나서는 머리의 오일리함으로 사소한 귀찮음을 자주 겪었던 우리 오빠는 날 부러워하기도 했다. 이 또한 어렸을 적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겨울은 1년중 4분의 1뿐이니 간지러움이 잦다는 생각이 들때쯤이면 이미 봄이 오고 건조함은 몇개월 간 잊혀졌다.



남들에게 보이는 얼굴을 신경 쓰게 될 때쯤부터 보습용 로션은 내 생활 필수품이 되었다. 내가 생활하는 곳곳에 핸드크림을 마련해두었고 짧게 여행을 가더라도 내가 평소에 사용하는 로션을 꼭 챙겨야 한다. 이제 깜빡하고 바디로션 바르는 걸 까먹는 일도 없다. 샤워 후 깜빡 잊게 되면 몸이 간지러워져 알람처럼 스스로 로션바를 것을 알려준다. 피부가 촉촉하지 않은 것이 억울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로션과 에센스 등의 것들로 보습을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이제 그것만으로도 부족한 나이가 되었나보다.



얼마전부터 건조함이 심할 때 손 끝이 갈라져 피가나기 시작했다. 어느날 손 끝이 불에 타는 듯 따가워서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손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생겨 있었다. 마치 물에 퉁퉁 불었을 때 손가락에 생기는 주름의 반대와 같은 느낌이랄까. 가뭄으로 땅이 갈라진 것처럼 나있는 주름 사이의 특히 깊은 골에서 피가 살짝 나고 있었다. 처음엔 어디에 긁혔나 해서 생각을 더듬어보았지만 긁힌 기억도 없을 뿐더러 긁힌 자국이라기엔 모든 손가락의 끝이 따가웠다. 피부가 건조하다 못해 갈라지는 구나. 이 때 처음 알게되었다기엔 익숙한 이 깨달음의 순간은 짧았다. 하지만 그 기원은 아주 오래된 것이었다.



엄마가 딱 그랬다. 겨울이 되면 손톱 밑이 갈라져 따가워 하던 엄마에게 핸드크림을 자주 바르라고 말하는 것 말고는 따로 신경을 쓴 적이 없었다. 그 갈라진 모양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고, 엄마도 피부가 건조하구나라는 생각만 해보았다. 여간해선 티를 내지 않는 엄마의 성격엔 손끝이 따갑다던 그 말 하나에 이렇게 성가신 고통이 숨겨져 있었구나. 어떤 행동이든 공기와 맞닿는 것이 아니면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어서 모든 순간이 상처를 자극하는 고통이다. 지금처럼 키보드를 칠 때도 그렇고, 물을 한 잔 마시려 해도 손가락 끝이 닿지 않게 괴상한 모양으로 손을 만들어야 한다. 핸드크림을 자주 바르라니, 참 효과도 정성도 없는 위로였다.



나이가 들며 엄마가 했던 말과 행동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될 때가 있다. 어렸을 땐 보고도 몰랐던 것을 이제야 알게 되면 그 기분은 반쯤 씁쓸하고 반쯤 무력하다. 내가 이제야 이해하게 된 진실들을 알고 다시 어렸을 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는 바람 같은 건 없다. 다만 지금도 나도 모르게 넘겨버리고 있는게 없을까 싶어 한번 쯤 안부를 묻게 된다. 결국은 똑같이 무심한 딸로 돌아오게 되지만.



건조해서 손끝이 따가우니 엄마생각이 나, 같이 피부관리 잘하며 늙어가자는 장난스러운 문자를 보냈다. 보낸 것도 잊고 있었는데 잠자리에 들기전 쯤 엄마에게서 온 문자. 안좋은 것은 안 닮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수고했어 우리딸. 숙면하는 밤 되거라 좋은 꿈 꾸고 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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