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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맘 Jun 10. 2024

친정아버지와 나

강원도 춘천시 서면 노동길 181은 친정부모님이 나란히 누워 계시는 주소다.

자동차로 갈 때는 내비게이션에 ‘경춘공원묘원’이라고 입력한다.


6월, 친정아버지 기일인 다음 주엔 부모님의 묘지화병에 조화가 환하게 바뀌어 있을 것이다.

둘째 딸아이를 낳던 해인 2002년에 하늘에서 엄마를 먼저 부르셨다.

그로부터 10년 후 아버지는 "먼저 가 있어, 곧 따라갈게"라고 하셨던 엄마와의 서러운 약속을 지키셨다.




어제는 둘째 오빠와 전화통화를 했다

“오빠, 다음 주 아버지 기일인데 날짜 맞춰서 같이 갈까?”

“그래 토요일에 거기서 보자”




전화를 끊고 나니 머릿속에 박제된 아버지의 기억들이 소환되었다.

어린 시절 거하게 약주를 하시고 늦은 시간 집에 오는 아버지의 발자국은 언제나 소란스러운 집안 분위기를 예고했었다.

술과 친구를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거침없는 기분이 태도가 되는 아름답지 못한 집안 분위기를 만드셨다.

어려서부터 쭈욱 ‘아버지’라고 불러왔던 나와 다르게 또래 친구들이 ‘아빠’라고 부르는 호칭이 참 많이 낯설고 부러웠던 거리감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집 밖에서는 사람 좋기로 소문나신 분이셨다.

위트 있는 언변과 노래솜씨까지 좋으셔서 요즘말로 ‘인싸’ 셨나 보다.




그래도 3남 1녀 중 막내딸인 나에게 아버지는 특별한 기억으로 계신다.

아버지 덕분에 공직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지금처럼 인터넷서비스가 대중화되지 않았던 90년대 초반의 일이다.

40년 이상 일하셨던 인쇄소를 퇴직하시고 한동안 아파트독서실 관리직으로 근무하셨다.

당시엔 사무관 승진시험이 별도로 있던 시기로 열람실을 이용하던 연세 지긋한 공직자분도 계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 분과 이런저런 말씀도 나누시면서 취업을 앞둔 막내딸을 위해 좋은 정보를 귀담아 오셨다.


어느 날 아버지는 서울시 지방공무원 임용시험 공고에 대해 상세히 전달해 주셨다.

그렇게 아버지의 정보제공 덕분으로 공직자의 길을 걷는 계기가 된 것이다.



30여 년이 흘러 명예퇴직을 결심한 딸이 처음으로 찾은 곳은 아버지가 계신 곳이었다.


“아버지 저 왔어요.

아버지 덕분에 30년 넘는 공직생활을 아무 탈없이 잘 근무했어요.

올해 말에 명예퇴직을 하려고 해요.

감사해요 아버지”


괜찮은 줄 알았는데 목이 메어왔다.

고마움과 그리움의 먹먹함도 나의 진심을 거들었다.

분명히 아버지도 “그만하면 애썼다. 잘했다”라고 하실 거 같았다.




퇴직 후 작년 가을 경춘공원 묘원 앞이다.

엄마 기일에 석재 테이블 위 상차림엔 평소와 다른 특별한 게 하나 놓였다.

30년 이상 공직퇴임 시 받는 근정포장을 부모님께 바친 것이다.

어제처럼 아버지 기일에 만날 약속을 정하던 둘째 오빠의 아이디어였다.

집에서 혼자 보고 접었던 근정포장이 부모님 앞에 열어두니 환하게 웃는다.




그 후로 친정식구들은 특별한 결과물이 있는 날이면 부모님께 찾아가 석재테이블 앞에서 기쁨을 함께 나누곤 한다.

최근엔 사랑하는 조카 소영이의 교사 임용후보자 합격증명서가 놓인 사진이 가족밴드에 올라왔다.

어떤 상차림 메뉴보다 부모님이 좋아하실 특별한 무엇들이 계속해서 올라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6월 달력에 부모님과 마주 할 그리운 동그라미 하나를 표하며 기억의 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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