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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맘 Jun 24. 2024

특별한 시어머니가 남긴 느낌표

'내가 명예퇴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소소한 일상루틴으로 행복빈도를 더해가던 내가 유일하게 빼기 상상을 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새벽기상 루틴을 실천했고 가족을 위한 느린 집밥으로 정성을 다한 후에 빠른 설거지로 주방을 정리 중이었다.

식탁 위에 올려놓은 휴대폰이 최선을 다해서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고무장갑을 낀 채 먼저 응답한 내 시선엔 ‘시어머니’라는 네 글자가 보였다.

빠져나온 손가락으로 스피커 기능을 누르고 응답을 했다.

익숙한 시어머니 목소리였지만 오늘따라 차분하고 정겹게 나를 부르는 게 이상했다.


“어미야, 엄만데..

여기 동네 김내과에 간호사 좀 바꿔 줄 테니 들어봐라.”


수화기를 건네받은 간호사는 시어머니의 진찰소견을 대신 전달하면서 큰 병원으로 가야 할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걱정과 동시에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4남매 중 차남인 남편의 가족관계증명서에는 나타나지 않는 어머니가 있다.

시아버지 기준으로만 현재 배우자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남편에게는 새어머니이자 나에게는 새시어머니로서 생물학적인 거리감은 부인할 수 없는 분으로 존재한다.

돌아가신 친시어머니는 동네에서 효성과 심성이 곱기로 소문이 자자한 분이셨다고 한다.


나름 지역에서 인지도가 있는 시아버지의 재혼은 신중함 보다는 속도감에 떠 밀렸다는 게 남편의 설명이다.

자식들은 바쁜 서울살이로 떨어져 지냈고 고령의 노부모님을 모시던 처지라 선택의 폭이 좁았을 것이다.

인근에 사시던 큰 시고모님이 누구보다 서둘러 중매를 물색하셨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짧게 시부모님을 봉양하셨고 4남매는 시가의 경제적 도움 없이 자립해서 결혼들을 했다.

그것이 왜 시어머니의 공치사가 되어야 하는지 동의할 수 없지만 으쓱한 레퍼토리가 되어 주었다.


늘 시어머니와의 대화는 경제권을 쥐고 계시는 시아버지에 대한 불평불만으로 시작되었다.

친인척들에 대한 못마땅한 속내와 억울하다는 본인의 신세한탄으로 앓는 소리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시어머니와의 전화통화는 어색한 추임새가 섞여버린 반갑지 않은 감정노동이 되곤 했었다.




갑작스러운 한 통의 전화는 시어머니가 나의 생활영역 깊숙이 들어오는 계기가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명예퇴직이 다른 형제자매들보다 시댁 돌봄의 우선조건을 누렸다.

수도권 외곽에 있다는 이유와 직장생활에 얽매인 그들과 비교했을 때 암묵적인 쏠림현상이 될까 봐 벌써 두려웠다.

시어머니는 조직검사 수술을 통해 난소암 판정을 받으셨다.

병원 이동과 검사수속 등의 환자를 둔 가족의 분주함과 피로감이 누적되어 체험되기 시작했다.

힘겹게 여섯 번째 항암까지 마쳤지만 시어머니는 결국 요양병원 침대에서 다시 내려오지 못하셨다.




총 9개월의 투병기간 후에야 어렵게 연락이 닿은 시어머니의 친아들을 추모공원에서 만났다.

보자기에 덮인 유골함의 온기가 친아들에게 전달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 20분이었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얽힌 서러움을 안은 혈육은 유골함을 차에 모시고 떠났다.

조금은 특별한 가족관계로 만난 시어머니의 삶은 나에게 다양한 느낌표로 남았다.

거부할 수 없는 가족관계의 선택과 책임, 그리고 힘든 상황을 마주한 등장인물들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더불어  나의 감정과 대화하는 시간도 있었다.

십여 년 전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케어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쏟았던 둘째 올케언니 생각이 났다.

같은 며느리 입장을 경험하고 느껴버린 나는 수화기 너머로 언니에게 진심을 전했다.

언니! 그땐 어려서 당연한 줄 알았던 내가 미안했어요!”


며칠 후 시아버지의 가족관계증명서는 새로고침되어 외롭게 출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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