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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내 열무김치야!

by 초록맘

김치냉장고에서 김치통 하나를 소중히 꺼냈다.

난생처음 담근 '열무 얼갈이김치'를 식탁에 소분하는 즐거움과 뿌듯함이 남달랐다.

요리수업 시간에 만든 '열무 얼갈이김치'는 맛있고 은밀한 감동이 되어주었다.

배추김치와는 차별화된 초록의 시원함으로 요맘때 딱 필요한 맛이었다.

톡 쏘는 상큼한 국물맛이 베인 아삭하게 익은 냄새가 코끝으로 들어와 침샘을 자극했다.




'김치&저장요리' 수업을 배운 지도 벌써 만 5개월째다.

퇴직과 함께 찾아온 시간적 여유 덕분에 ‘용산꿈나무종합타운’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집 근처에 있었지만 그전에는 무심히 지나치며 나와는 거리가 먼 장소라고 생각했다.

이름처럼 청소년들 위주의 특별한 교육 공간정도로만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서울시민카드를 만들면 도서관 이용도 가능하고 다양한 성인문화프로그램 등도 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김치&저장요리’ 프로그램에 끌린 건 개인적으로 넘사벽의 영역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사실, 오랜 직장생활을 하면서 김치를 직접 담글 용기가 나질 않았었다.

친정엄마의 김치찬스도 영원할 수 없었고 시어머니의 김장 김치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이유로 김치 브랜드를 바꿔가며 마트와 홈쇼핑에서 솔깃한 구매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퇴직과 함께 ‘김치 담그기’는 오랜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가 되어버렸다.

김치 유튜브 동영상과 레시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무거운 숙제처럼 미뤄지기 일쑤였다.

열무김치를 특별히 좋아하는 남편은 여름만 되면 나에게 무언의 압력을 주곤 했었다.

'김치&저장요리' 등록을 한다고 했을 때 나만큼이나 남편도 기대를 하는 눈치였다.


매주 차근차근 강원도 막장, 봄동겉절이, 매실고추장, 오이소박이, 깻잎장아찌, 간장게장 등의 계절요리들을 배워 나갔다.

드디어 5월 마지막주 강의계획표에 '열무 얼갈이김치' 메뉴가 등장했다.

집에서부터 강의실로 향하는 발걸음도 설렘으로 가벼웠던 기억이 난다.




도착한 강의실 테이블 위에는 반가운 열무와 얼갈이, 쪽파, 양파, 붉은 고추 등의 식재료들이 손질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사님의 친절한 설명에 귀를 쫑긋 열고 프린트된 레시피에 눈을 맞추기 시작했다.


열무는 뿌리 부분을 깨끗이 손질해서 먹기 좋은 길이로 자른다.

충분히 받은 물에 풋내가 나지 않도록 열무를 살랑살랑 흔들어 조심조심 씻어 건져 놓는다.

소금 한 컵을 준비해서 넓은 볼에 씻은 열무를 켜켜이 놓으며 소금을 뿌려준다.(맨 위쪽에는 남은 소금을 전체적으로 뿌려준다)

열무는 총 1시간 동안 절여 주는데 40분 정도에 한 번 뒤집어준다.

먼저 찹쌀가루 1.5T를 물 1컵 반 분량으로 풀을 쑤어서 식혀둔다.

물 1컵에 양파 반 개와 홍고추를 넣어 갈아준 뒤 양푼에 붓는다.

양푼에 고춧가루 1/2C와 갖은양념(멸치액젓 1/4C, 새우젓 2T, 다진 마늘 2T, 다진 생강 2t, 매실청 1/4C)도 넣고 함께 불린다.

청양고추는 어슷하게 썰고 양파와 쪽파도 알맞게 채 썰어 준비해 둔다.(A)

절인 열무는 흐르는 물에 살살 씻고 체에 밭쳐 물을 빼준다.

모든 양념이 담긴 양푼에 식힌 찹쌀풀과 (A)를 넣어 고루 섞어준다.

고루 섞인 양념에 절인 열무를 조금씩 살살 버무려 준비한 통에 담으면 완성이다.


늘 미완성의 꼬리표로 느껴졌던 ‘김치’라는 영역에 작은 깃발 하나를 꽂은 느낌이었다.

요리 수업 중에 강사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제 주위에 지인들이 요리 잘하는 비법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하곤 해요.

요리에 비법은 없어요, 단지 비율이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강사님이 알려주신 비율을 정성껏 지켰다.

거기에 ‘처음’이라는 양념과 ‘설렘’을 더했으니 내 열무김치는 더욱 반가운 맛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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