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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Sep 13. 2024

아름다운 나의 소녀시절 1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언제나 분주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숙모까지,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대가족이라 저녁마다 누군가의 목소리와 그릇 부딪히는 소리로 가득 찼다. 하루의 끝으로 돌아온 집안은 늘 분주했고, 나는 그 집에서 가장 조용한 아이였다. 다섯 살의 나는 말수가 적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떼를 쓰는 법이 없었다.


부모님이 곁에 없다는 건, 그저 꽤나 살만한 일이었다. 뭐든 있다가 없으면 허전해도 처음부터 없으면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누구도 부모님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고 나는 여느 아이들과의 다른 점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그저 주어진 대로 하루하루 잘 살아냈다. 다만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면, 어린 나이라면 부릴법한 투정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애가 눈치가 참 빠르다는 것 정도였다.


늘 북적이는 가족들 속에서 나는 유난히 조용했다. 누구에게도 방해되지 않도록 눈치를 보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고, 부모님이 없는 것도 특별할 것 없는 일처럼 익숙했다. 식탁 끝에 앉아 조용히 밥을 먹었고, 먹고 싶은 게 있어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내 입맛보다는 다른 사람들 기분을 먼저 살피는 게 자연스러웠다.

좋아하는 것도 딱히 없었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몰랐다. 욕심을 내세우지 않다 보니 속마음도 차츰 옅어졌다. 그냥 예의 바르고 조용한 아이로 있는 게 편했고,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게 우선이었고, 욕심을 드러내지 않으며 지내는게 차선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착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때 나는 그저 순하고, 밝고, 예의 바른 아이였다. 그렇게 지내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고, 미움을 사지 않는 방법이기도 했다. 참을성이 많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냥 참아야만 했던 아이였을 수도 있겠다.


늘 조심스러웠고,  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엄마는 돈을 벌기 위해 내가 두 살 때 사이판으로 떠났고, 아빠는 이삼개월에 한 번씩 집에 모습을 보였다. 자연스럽게 나를 돌보는 역할은 할머니에게 맡겨졌고, 그 사랑은 엄격함이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할머니는 내가 밥을 거르고 과자를 먹는 걸 절대 그냥 넘기지 않으셨다.  과자를 먹고 밥을 안 먹었던 날은 할머니 손에 이끌려 지하 김치창고로 내려갔다. 그곳은 어둡고, 숨 쉴 때마다 서늘한 공기가 얼굴에 닿는 곳이다. 어린 나에게는 그저 김치가 가득한 지하 창고가 아니라, 끝도 없는 어둠 속에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문이 닫히고 나면, 밖의 소리는 모두 사라지고, 고요한 정적이 사방을 감싼다. 멈춰서있으면 심장 소리가 쿵쿵 울림으로 다가온다, 꼴깍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가 선명해지고 그때마다 싸늘한 바람이 스치듯이 온 몸이 오싹해났다. 사방은 어둠에 둘러쌓였고 눈을 떠도 감아도 암흑 뿐이었다. 어둠은 두려움이 되어 날 한 입에 삼켰다. 그러면 난 소리가 울리지 않게 나지막히 빌기 시작한다.다시는 밥대신 과자를 먹지 않겠다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만큼 어둠 속에서 끅끅 울다보면 시간이 한참이나 흐른 뒤였다. 나의 울음소리는 울림으로 다가오는 공포 그 자체였다. 얼마나 있었을까. 빛이 보였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는 간식을 먹지 않았다. 


할머니의 교육은 싫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고 할 수 있겠다. 공부가그러했다. 할머니는 내 손에 구구단이 적힌 종이를 쥐여 주고, 문을 잠그고 나가셨다. 그때 나는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꼬맹이였다. 방 안에 혼자 남겨지자 처음엔 어안이 벙벙했고 낮인데도 방 안은 어딘가 어둑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마저 희미하게 퍼져 있었다. 문이 닫히고 방 안의 공기는 점점 무거워졌다. 고요한 정적이 나를 둘러싸고, 작은 방이 끝도 없이 넓어졌다.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삐뚤삐뚤 적힌 숫자들이 눈앞에 있는데, 읽어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 줄, 두 줄 따라 외우다 말고 문을 바라보았다. 배가 점점 고파지면서 입안이 바싹 말라왔다. 나는 한참 후에야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할머니, 열어주세요... 배고파요." 하지만 돌아오는 건 문 너머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텔레비전 소리뿐이었다. 멀리서 사람들이 웃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고, 그 웃음소리가 더 서글프게 느껴졌다. 나는 다시 종이를 보고 구구단을 외우려 애썼지만, 눈물이 자꾸 앞을 가렸다. 방 안에서 울고, 종이를 보고, 외우다 지쳐 또 울며 시간을 보냈다. 햇빛이 서서히 방 안에서 사라질 때쯤, 온 방이 어둑해지고 문이 드디어 열렸다. 할머니가 무심하게 방을 열었을 때 나는 목이 쉬고, 눈물이 얼룩진 종이를 꼭 쥔 채였다. 그날 이후로 구구단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할머니는 아마도 엄마와 아빠가 없는 나를 더 강하게 키우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 속에서 나는 조금씩 규율에 맞춰졌다. 아빠는 가끔씩 집에 돌아왔다. 할머니와 아빠 사이에는 늘 차가운 냉기가 감돌았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가 서로에게 날카롭게 부딪쳤다. 결국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아빠는 엄마와 이혼했고, 아빠는 나를 데리고 집을 떠났다.


어린 날의 기억은 지금도 내 안에 흐른다.재생중인 영화처럼.


나는 시간을 붙잡고 물 흐르듯이 잘 흘러왔다. 조용히 지내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사랑받고 싶은 갈망과 부모님의 빈자리, 마치 오래된 파인 흉터처럼 거기 있다. 아프지도, 그렇다고 사라지지도 않는 채로. 그런 어린 시절을 지나왔다. 이제는 괜찮다. 다만 마음 한편에는 아직도 그때의 기억들이 남아 있다. 마치 그때의 내가 아직도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는 것처럼.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면, 어린시절도 기억 속에서 흐릿해져갈가? 아름다운 나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나는 기억 속 그 날의 그 어린아이를 안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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