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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나눔 Apr 29. 2023

친구를 찾습니다.

아침부터 봄비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런 날은 집에서 부침개 빚어 먹는 맛이 최고다.

하지만, 아내는 아침부터 출타 중이시다. 누구를 만난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던 것 같다.

아침이라고 해야 정오를 얼마 안 두고 있다.


오늘은 한 친구가 생각이 났다.

중학교 1~2학년 때 축구 친구다.

모 방송국 음악프로그램을 즐겨 듣는데, 오랜 전에 헤어진 친구를 찾는 코너가 있다.

방송국에 글을 보내는 대신 여기에 남겨본다.


1979년 서울 답십리에 살았던 우리는 매일 만나서 축구를 했다.

방과 후 학원은 특수한 아이들만 가던 시절이니 밤이 어둑해져 공이 잘 안보이던지, 배가 고파야 공차기를 그만두고 각자 집으로 갔다.

지금은 아파트 숲이 된 공터는 아이들이 운동하고 뛰어놀던 운동장이었다.

먼지를 뒤집어쓰던지, 비가 내린 다음 날이면 질척한 땅과 군데군데 물이 고여있는 곳을 피하면서 상대방의 골대를 향해서 뛰었다.

그 친구도 나만큼 축구를 좋아해서 우리 둘이는 하루라도 거르면 무슨 일이라도 생길 것처럼 특별한 날이 아니면 비슷한 시간에 서로 만났다.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당연한 듯이 만났다. 

자연적으로 모인 아이들을 편을 갈라서 두 팀으로 경기를 했다. 

아이들이 많으면 골대를 두 개 만들고 적으면 한 개를 만들어서 경기를 했다. 특별히 골키퍼도 없었다. 수비와 공격도 완전히 나뉘지 않았지만, 자신이 잘하는 포지션으로 자연적으로 맞추어진다.

골대는 당연히 큰 돌을 두 개 놓아서 만든다.

우리는 2~3시간 쉬지 않고 공을 차다가 각자 집으로 갔다. 

그 친구는 개인기가 좋았고 웃으면서도 여유 있고 침착하게 경기를 했다. 내가 빠른 발을 주 무기로 치고 달리는 스타일인지라 그 친구의 장점이 부러웠다. 아마 그래서 서로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상대방을 좋아했나 보다.

그 나이의 미숙하고 에너지가 넘치던 우리는 매일 만나면서도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 격한 에너지가 둥근 공에 의해서 잦아들었나 보다.

항상 웃음기가 떠나지 않고 천천히 점잖게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또래 아이들보다 성숙해 보였다.


당시 다들 그리 넉넉한 가정이 많지 않은 시절이었고 그 친구 집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아버지가 육체노동을 하시면서 어렵게 식구들을 부양하신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나도 아버지가 장사를 하면서 여러 번 이사를 갈 때마다 살림과 방 크기가 작아져서 답십리로 이사 온 초등학교 4학년 때에는 그중에서도 어려운 가정 형편에 속했다.  아마 서로 형편이 비슷한 것도 친해진 원인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아쉬운 것은 어떻게 헤어졌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일 자연스럽게 만나다 보니 헤어지는 것도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나 보다. 


오래전이지만, 그 친구의 얼굴은 또렷이 기억이 난다. 이름은 이종석.

우리는 학교는 달랐지만, 둥근 공이 인연을 맺어주었다.


종석아! 네가 이 글을 읽을 확률은 매우 적지만, 한 번 보고 싶다. 

언젠가는 볼 수 있겠지.

만나서 제대로 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운동장, 아니 근처 잔디 구장에서 한 번 공을 차 보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작은 돌에 부딪히면서 차는 것만은 못하지만, 나름 재미있을 것 같다.

서로 어려운 시간을 공과 같이 둥글게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순수한 우리 우정의 힘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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