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영화를 보러갔다.
며칠 전에 ‘아바타2’가 재미없다는 이야기를 누구한테 들었는지 안보다고 하더니, 관객이 많이 보는 것을 보고 ‘보긴 봐야겠네’라며 말했다.
3시간 넘는 영화는 오래 전 본 ‘벤허’이후 처음이다.
중간에 화장실 가는 시간이 있는지 내가 물었더니, 그런거 없단다. 해서 억지로 갔다 왔다.
저녁 먹고 영화관 건물에 20분 정도 일찍 도착했는데, 밑 층에 있는 서점에 갈까 하다가 시간이 애매해서 그냥 영화관으로 올라갔다.
푸짐하게 먹은 아들은 더 먹을 공간을 비워놨던지 오징어와 음료수를 주문한다.
나도 질새라 녹차라떼를 주문했다.
평일이라 사람들이 그리 붐비지는 않는다. 딱 좋은 인원이다.
너무 사람들이 없어도 썰렁하다.
여유있게 원탁 테이블에 앉아 제일 먼저 상영되고 있는 예고 편들에 눈이 간다.
저 옆에는 오락실에서 몇 명이 작은 소음을 내보낸다.
주문받은 직원들의 손 움직임도 옆 눈에 보인다.
반짝 반짝 윤기있게 깨끗한 황색 바탕에 군데군데 군청색이 어우러진 바닥에도 시선이 잠깐 머물다 간다.
“너는 영화관에 영화보러 가니?”
내가 아들에게 묻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냐는 둥 “그럼?”
“아빠는 영화도 좋지만, 분위기를 보러간다.”
“지금 분위기도, 이따가 영화 끝나고 나올 때 약간 어두운 긴 통로도 좋아“
아들은 알 듯 모를 듯 짐찟 모르는 체하는 것같다.
요즘에는 영화관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
비용을 조금만 더 내면 좀 더 안락한 의자에 앉아서 다리도 뻗으며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 있다.
나는 가끔 백화점이나 마트에 갈 때 여유가 있으면, 잠깐 영화관 의자에 앉아서 분위기를 만
끽하고 예고 편들도 보고 온다.
스타벅스는 ‘문화를 판다’고 이야기한다. ‘공간을 파는’ 커피숍으로도 유명하다.
사람들은 그곳에 커피만 마시러 가지 않는다.
공간을 즐기러 간다. 세련되고 편안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집에서는 할 수 없는 이상한(?) 집중력이 생겨서 많은 사람들이 노트북 앞에 앉아있다.
일하다가도 간간이 들리는 사람들의 수다를 듣고 바깥 풍경에 잠깐 멍때리기도 한다.
요즘에 백색 소음(화이트 노이즈)를 내는 기기도 등장을 하는 데, 카페도 백색 소음이 나오는가 싶다.
어드덧 1,000 매장이 넘는 스타벅스가 우리나라를 뒤덮었다.
2~3천 원을 더 지불하고 좀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원두와 공간을 누린다.
공간은 묘한 매력을 지녔다.
그 구조와 배치, 가구, 소품들은 하나의 분위기를 만든다.
나는 한옥의 구조와 배치를 좋아한다.
가운데 공유 공간으로 하늘이 맏닿아 있고 서로 마주 보는 방들이 정겨움을 선사한다.
마루에 걸쳐앚아 공간을 느끼며 차 한잔을 마시는 것은 과분한 사치다.
현대식 건물들도 어떤 설계를 하느냐에 따라 그 공간은 때로는 자유를, 때로는 아늑함을, 때로는 활력을 준다.
한 공간에도 부분적으로 다른 부분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아마 영화관도, 카페도, 그리고 다른 건물들은 설계자들의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공간에서 파생되는 문화까지 염두에 둔 작품들도 있다.
그곳에서 손님을 맞는 사람들의 복장, 헤어스타일, 동작까지 생각한다.
그래서 그 공간이 주는 분위기와 경험을 사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우리는 공간에 대해서 얼마나 고민하고 있나?
측정할 수 없지만,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 공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회사도 직원들을 위해 공간에 많은 신경을 쓴다.
자연과 어우러진 도시 공간에 관심들이 많다.
아내는 가구들을 수시로 바꾼다.
”뭐 달라진 것 같지 않아?“라고 묻는 날은 그나마 양반이다.
아무말 없이 슬쩍 내 감수성을 테스트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바짝 긴장하고 눈을 위아래, 양 옆으로 빨리 굴려야 한다. 기억력은 어쩔 수 없지만.
공간을 아는 여자와 잘 못느끼는 남자와의 동거.
공간 어쩌구 하고 있지만, 스스로도 좀 고리타분하게 ‘변화’를 싫어하는 나도 그 앞에서는 다른 분위기를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공간을 그냥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 창출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