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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나눔 May 20. 2023

산과 침대

오늘도 예외 없이 토요 산행을 했다.

해발 330m 정도의 동네 산.

자주 가는 산이다.

어제 오랜만에 바닷바람을 쐬면서 이것 저것 군것질을 하고 매운탕도 먹었더니, 산을 향해 차를 운전하면서 호흡이 원만하지가 않아 허리띠를 느슨하게 했다.

요즘은 샤워를 하면 거울 앞에서 몸을 옆으로 돌려보는 버릇이 생겼다. 배가 얼마나 나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힘을 빼고 거울을 쳐다보다가도 화들짝 놀라서 다시 힘을 준다.

어제같이 아무 생각 없이 본능을 쫓아가다 보면 어김없이 다음 날 거울 앞에서 화들짝 놀라곤 한다.

"이건 도대체 언제 도망가는기여."

인격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다가도 이렇게 호흡에 곤란을 느낄 때면 다시금 다짐하곤 한다.

"빼야지."

많이 먹지도 않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편인데 한 번 솟은 봉우리는 꺼질 줄 모른다.

"역시 복부 비만은 운동보다는 음식 조절이야."

산을 오르면서 숨이 찰 시기에 배가 조금씩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역시 산이 쵝오야."


집에 도착하니, 새로 산 침대가 와있다.

그동안 매트 위에서 자다가 큰 맘먹고 이번에 장만했다.

아내는 한 달간의 대 장정을 마치고 드디어 집에서 푹신한 감촉을 느껴본다.

만족감과 그동안의 여정을 마무리한 탓에 살짝 상기되었다.

침대를 사기로 결정하고 다수의 브랜드를 검토하고 매장에서 누워보기도 많이 했다.

나도 몇 번 동행했다가 덩달아 매장의 거의 모든 침대에 누워보는 호사(?)를 누렸었다.

가구 식품 전시회 마지막 날에 방문하여 가성비 있는 캐나다 브랜드를 계약하고 계약금을 지불했지만, 프레임은 그냥 준다는 직원의 말이 사실은 거짓이라는 것을 나중에 확인하고 취소도 했다.

국내 유명 브랜드, 중소기업 제품, 미국, 유럽 브랜드를 넘나들며 온라인에서 검토하고 매장에서 확인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아내는 준 전문가가 되었다. 나에게 규격은 어떻고, 국 내외 브랜드 장단점과 스프링 재질 비교에서 부터 프레임에 대해서 까지 청산유수와 같이 읊어대는 것을 듣고는 "가구 매장에 취직해도 되겠네."라고 한 마디 했더니, 아내는 "그럴까?"라고 응수한다.

드디어 아웃렛에 갔다가 가족의 달 기념으로 유명 브랜드를 50% 할인 판매한다는 푯말을 보고 매장에 가서 즉시 계약을 했고 전액 결제를 했다. 구매 후보 리스트에 있었지만 가격이 조금 높아 망설였던 브랜드였다. 아내는 그동안 해박한 지식이 도움이 되어서 더 이상 고민할 시간이 필요 없었다. 같이 간 나는 아내의 확신에 토를 달지 못하고 계좌 이체를 해야만 했다.

"역시 아는 것이 힘이여."

계약을 한 날도 오늘과 같이 해맑은 미소가 아내의 얼굴을 떠날 줄 몰랐다.

계약한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긴장을 대폭 풀어도 되는 날이다.

침대에 누우니 잠이 스르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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