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었던 그때 그 시절, 나의 청춘을 되짚다.
오래된 서랍에서 아주 오래된 습작을 발견했다.
종로 인사동 입구 어드메에서 10여년 전 거금 주고 구매한 빨간 수제 가죽 다이어리 한 권.
그 무지 노트 한권이 갖고 싶어
열 번은 기웃거려댔었지.
그렇게 내 품으로 온 그 곳엔
2006년 겨울,
갓 스물네살이 되었던 나의 모습과
작가가 되겠단 마음으로 끄적인 나의 습작들이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었다.
2007. 01. 14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기출-
- 혹여라도 메세지가 오지 않을까, 봉희는 조급한 마음에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심호흡을 천천히 하면서 단전으로 기를 모아 식도를 통해 꾹 눌러본다.
하나, 둘, 셋. 다시 한 번, 힘!
파란 하늘과 맞닿은 번지점프대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뱀처럼 굽이굽이 흘러가는 검은 강물을 본 순간, 젖은 시멘트 위에서 그대로 굳어버린 못난 바위처럼
봉희의 아랫배는 딱딱하게 마비되었다.
더-억. 드르르르르르... 벌써 30분째 말발굽 같은 변기대와 부벼대던 엉덩이를 일으켰다.
오늘은 꼭 성공하려고 했는데....
4일째 변을 보지 못한 대가로 낯빛이 거무티티해지는 변을 당했다.
또로롱.
핸드폰 메세지가 도착했다는 신호다.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합격자 확인은 홈페이지......'
묵직한 아랫배를 문지르는
그녀의 손에 긴장감이 흐른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젖은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린다.
이름과 주민 번호를 두드리고 엔터키를 누르는 그녀의 눈은 이미 감은 상태.
봉희는 화장실에서처럼,
단전에 기를 모으고 심호흡을 한다.
하나. 둘. 셋. 눈 앞에는 '불합격' 이라는 세 글자의 무표정함이 역력하다.
벌써 스물 아홉번째 낙방.
봉희가 살아온 인생만큼의 미운 저 세 글자가 마른침을 삼키게 만든다.
꿀꺽. 삼킨 침이 식도를 따라 위에서 그리고 배설하지 못한 그녀의 장속에 포함된다.
독이 오를때로 오른 소주 몇병에 절여진 음식 찌꺼기들 속에 또 하나의 독으로
그녀의 뱃속을 채웠다.
열 다섯번째 낙방 정도까진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아니, 정확히, 여섯번째부터 열 다섯번째까지.
처음 낙방때부터 다섯번째 쯤까진,
'니들이 나를 안뽑고 잘 굴러갈꺼 같아? 나 같은 인재를 놓치는 건 너네 회사의 엄청난 데미지라구! '
라고, 외쳤었다. 괜찮다고, 까짓것 무시해버리자, 중얼거리며 친구들과 함께
소주 한잔 하면 그만이었다.
여섯번째 부터는 불합격 사실을 알고, 스스로 상한 자존심 때문에, 집에서, 홀로 소주잔을 비워냈다.
뚜둑, 소주병을 돌려 따는 그 순간부터, 눈물이 비췄던 것 같다.
알콜내음이 머리를 확 감싸쥐며 첫 잔의 씁쓸함이 느껴졌다.
취기가 더해질수록, 달콤한 알콜이 그녀를 마셔댈때까지 봉희는 그렇게 자신을 비워갔다.
일류라고 생각진 않았지만 나름 쓸모있는 인재라고 생각했는데.
가진것 없는 농부의 딸이었지만 어린마음에 마냥 좋아서 철학과를 선택했을때에도 아버지 당신은 나를 사랑으로 믿어주었다.
힘들게 지은 일년 농사로, 서울까지 와서 유학까지했는데.
다 큰 딸년이 집에 손 벌리기가 미안해서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고자 3번이나 휴학하며 용돈을 벌고, 등록금에도 보탰는데.
악착같이 살았는데.
생각보다 세상의 벽은 높고 봉희 자신은 오래신은 힐의 뒷굽처럼 낮고 초라한 것 같아서,
코끝이 묵직해져 온다.
그렇게 소주병으로 울음의 독을 채우며
두해 반을 보냈다.
취업을 함께 준비하던 스터디 멤버들은 모두 '사회인' 이 되었고, 봉희는 여전히 '취업 준비생' 으로서, 아니, '백조' 라는 사회적 이름으로 명명되어 남겨졌다.
그리고 여자의 취업 연령기준에서 거의 퇴물급인 스물여덟이라는 나이와 같은 낙방횟수.
그녀가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 때가 아마 열아홉번째 였던 것 같다.
다행히 1, 2 차 서류전형을 통과하고 희망찬 마음으로, 면접까지 갔을 때 였다.
"나이가 좀 있으시네요."
예상했던 질문이었지만, 그때 처음으로 들은 말이라 약간 당황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면접관의 무표정한 말들이 이어졌다.
"사투리가 남아 있군요, 거름냄새가 나는데."
순간, 무표정하지만, 살짝 빈정대며 비웃던 그 면접관의 눈과 봉희의 눈이 마주쳤다.
봉희의 눈동자가 약하게 흔들리는 것을
그도 보았겠지.
그 뒤로 면접관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내 아버지가 농부이고 지방 출신이라 부끄럽다고 생각한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그 날 이후로 봉희는 울지 않았다.
띠리띠리띠리리리리.....
무거운 공기의 적막을 깨고 요란하게 울리는 벨소리에 봉희는 멍하게 지켜보던
모니터에서 눈을 돌렸다.
고향집 전화번호다.
10 여초간 망설이다 배터리를 뽑아버렸다.
분명 아버지일게다.
편치 않은 내 마음을 아시고,
연말인데,
춥지 않느냐,
해가기전에 집에 한 번 내려와라,
밥은 묵고 다니냐,
엄마 아부진 괜찮으니까,
따신 밥묵고 편히 쉬다 올라가라,
고,
하셨을 전화.
명치가 둔탁한 둔기에 눌린 듯 답답하다.
핸드폰을 구석에 던져 놓고 외투를 껴 입었다. 밖으로 나간 봉희는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납빛이 도는 얼굴에 변마저 제대로 못보고,
명치에 뜨거운 감자를 얹은채,
걷고 또 걸었다.
연말연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색색의 서울이지만,
봉희의 눈엔 온통 무채색인것만 같다.
두어시간쯤 시났을까.
정수리를 무언가가 차갑게 누른다.
후둑. 뚜둑뚜두둑. 비다.
하나씩 흩어져서 땅으로 내달리는 비.
12월에 비라니,
어이없군.
피식,
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든다.
반쯤 숙이고 걷던 고개를 들어보니,
한강의 허리에 서 있다.
여기가 무슨 다릴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빗방울이 그녀에게 파고든다.
봉희는 다리위에서
그렇게 내리는 겨울비를 맞으며, 저 멀리 보이는 검은 강물위의 다리에 시선을 빼았겼다.
색색의 불빛이 조화롭게 박혀있는
저 다리의 이름은 뭘까.
내가 서 있는 여기는 어디쯤일까.
10년이나 서울땅에서 숨을 쉬었는데
이렇게 다리의 가운데에
오롯이 혼자 서있기는 처음이다.
달리는 차들의 네온을 마시며 생각해본다.
내게도 앞만보고 달리는
저 차들의 플래쉬처럼 꿈이 있었나,
하고.
겨울 비 답지 않게 굵은 빗방울이 저 앞에 반짝이는 다리의 보석을 가린다.
불빛들에 반사된 서울의 밤 하늘은 청보라색이었다.
내리기 시작한 겨울 비는 정직하게 봉희의 머리로, 어깨로, 그리고 외투안까지 기어들어온다.
얼어붙은 세숫대야같은 차가운 고독도 그녀를 유혹한다.
순간 코끝이 시큰해진 봉희의 뺨위로 한줄기 골짜기가 샘을 텄다.
심장에서 역류한 뜨거운 덩어리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참, 나잇살이나 먹어서 억수로 우는구나 싶다. 봉희는 시린 겨울 비에 뜨거운 몸을 맡긴채,
그대로 녹아내린다.
written by chocolat bonbon
그 땐 내가 청년 일자리와 취업에 대한 고민을 하며 이 걸로 밥 벌이를 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내가 쓴 '꽁트' 속 주인공 봉희와 같은 학생들을 만나서 취업 지도를 하고,
꿈과 진로에 대해 논하는 강의를 하며,
유명한 월간지는 아니지만 '군청 소식지' 에 매월 글도 쓰며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낯선 거리를 걸으며 어디로 내몰릴지 모르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다만 10년전과 조금 달라진 것은,
앞이 보이지 않는 항해라 할지라도
그 항로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가끔 20대보다 더한 고독과 막막함,
그리고 책임감이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짓누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진할 수 있는 '용기'와 '결단',
그리고 직진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이 나를 끌고 가는 것.
이끌리지 않고 '스스로 끌어 나아가는 것'.
바로 모든 답은 바로 내게 있음을 아는,
바로 '그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