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 작은 심리학.
초록빛 위로와 달콤한 유혹 사이에서
싱그러운 햇살이 창가로 쏟아지던 점심, 이웃이 건네준 갓 수확한 상추 잎사귀들이 싱크대 위에 올려져 있었다. 흙에서 막 뽑아 올린 어린잎들은 연둣빛 생명력으로 빛나고 있었다. 흐르는 찬물에 상추를 담그자, 흙먼지와 작은 벌레들이 씻겨 내려갔다. 깨끗해지는 상추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돈되는 느낌이었다.
특별히 공수해둔 레드 루꼴라를 올리고, 몇 일전 샌드위치를 해먹고 남은 하바타 치즈와 홀머슬 햄을 올렸다. 올리브 오일을 살짝 뿌리고, 로즈마리와 민트향을 머금은 화이트 발사믹을 뿌렸다. 마지막으로 견과류를 얹어 샐러드를 완성했다. 한 입 맛보는 순간, 신선한 채소의 기운이 전해졌다. 가볍고 맑은 그 느낌은 몸이 전하는 고요한 만족감이었다.
건강한 샐러드와 갓구운 방목유정란 후라이, 그리고 명이나물과 밥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그러나 건강한 식탁으로 만족했던 것도 잠시, 노트북 앞에서 시작된 업무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어졌다. 글자를 쫓는 눈은 뻑뻑해지고,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들로 채워졌다. 몇 시간이 지나자 어깨는 뻐근해지고 허기인지 공허함인지 모를 감각이 일어났다.
냉장고 문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남긴 조각케이크. 꾸덕한 치즈케이크 위에 새빨간 라즈베리 시럽이 올려진 유혹적인 디저트가 보였다. 한 입만? 포크를 들자 달콤함에 빠져들었고, 어느새 접시는 순식간에 비워졌다. 입안의 달콤함이 사라지고 텁텁함이 찾아왔다. 점심을 먹었을 때의 가벼움은 온데간데없고, 대신 미묘한 불편함이 자리했다. 단순한 포만감과는 다른 종류의 무거움이 느껴졌다. 속이 더부룩했다.
'왜 그 유혹을 참지 못했을까?'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몸이 거부하는 음식을 알아차리는 것 아닐까?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몸이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의 '건강함'과는 거리가 있다. 때로는 작은 일탈이 주는 만족감이 정신 건강에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작은 일탈'이 습관이 되거나, 감정적 허기를 달래는 수단이 될 때 문제가 시작된다. 음식은 단순한 영양 공급원을 넘어선 의미를 지닌다. 그 안에는 우리의 추억과 감정, 무의식적 욕망이 담겨있다. 어쩌면 그날의 케이크는 단순한 허기가 아닌, 지친 마음의 위로를 찾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요즘 '건강한 식사'라는 단어 너머의 의미를 생각한다. 그것은 어떤 음식을 먹느냐가 아니라, '왜' 그 음식을 찾게 되는지에 관한 질문이다. 진짜 배고픔인지, 아니면 외로움, 불안, 또는 단순한 습관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음식과 마음의 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우리는 배고픔뿐 아니라 감정으로도 먹는다. 기쁨을 나눌 때, 슬픔을 달랠 때, 지루함을 견딜 때, 우리는 종종 음식에 손을 뻗는다. 그것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선택이 내면의 어떤 목소리에서 비롯되는지 알아차리는 것, 그리고 그 순간을 충분히 의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상추의 맑은 수분감과 케이크의 부드러운 달콤함 사이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각자의 방식으로 균형을 찾아간다. 때로는 상추가 필요하고, 때로는 케이크가 필요하다. 그 모든 선택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존중에서 비롯될 때, 진정한 의미의 '건강한 식사'가 가능해진다.
결국 음식은 우리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무엇을 먹는가 하는 선택 속에 우리의 가치관, 감정 상태, 그리고 자기 돌봄의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웃이 전해준 싱그러운 상추와 냉장고 속 달콤한 케이크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내 몸과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조금 더 나답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