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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롱 Apr 07. 2021

핫도그를 먹다가...

'때문에'와 '덕분에'를 생각했다.

나는 마트에 가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코로나가 지속되면서 이젠 마트에도 웬만하면 가지 않는다.

코로나 자체도 무섭지만, 도와줄 가족 하나 없는 외국에서 자가격리는 어디에 가서 하며, 애들은 어쩔 것이며, 치료는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걱정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니 최대한 몸을 사리는 것이 나를 구하고, 가족을 살리는 길이겠거니 하며, 자발적 격리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일주일에 한 번, 장에 가는 대신 태블릿 앞에 앉아 온라인으로 먹을거리를 골라 집으로 배달을 시킨다. 영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마트에 뭘 파는지, 뭐가 맛있는지 파악도 못했는데 장을 보려니 여간 고생스러운 게 아니었다.  온라인 마트에서는 이것저것 만져보고 구경하는 재미도 없고, 다른 사람들 카트를 훔쳐보며 '여기선 다들 뭘 해 먹고 사나' 염탐하는 재미도 없다. 내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빼앗긴 것 같아 코로나도 온라인 쇼핑도 다 짜증 났다.


퉁명스럽게만 대하던 온라인 장보기와의 인연도 이젠 어언 9개월이 다 되어간다. 미운 정이 든 건지, 내 마음이 열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온라인 장보기도 많이 익숙해졌다. 그리고 온라인 장보기에서만 가능한 재미 하나를 발견했다. 고건 바로 가끔 만나게 되는 '대체 상품'! 내가 고른 상품이 없으면 대체 상품을 보내주는데 대개는 내가 원래 고른 것보다 비싼 고급 라인 상품을 보내준다. 게다가 추가 비용도 받지 않는다. 내가 직접 장을 봤더라면 몰라서, 비싸서, 원래 먹던 게 아니라서 등등의 수많은 이유로 그냥 지나쳤을 물건들을 종종 대체상품으로 만나게 되는데 그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천 원짜리 복권을 하나 샀는데 이천 원이 당첨되었을 때 정도의 재미랄까...

오늘은 매번 시키던 미국식 핫도그 롤이 없다고, 그것보다 좀 더 비싼 브리오쉬 핫도그 롤을 대체 상품으로 받았다.  배달 직원은 정말 미안하지만 네가 주문한 상품이 없었다며, 대체 상품을 확인해보고 원하지 않으면 환불할 수 있도록 자기가 도로 가져가겠다고 정중하게 사과했다. 겉으로는 쿨하게 ' 오 노 프라블럼, 돈 워리'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 오매. 더 비싸고 맛난 거 주는데 미안은 무슨 미안, 완전 땡큐지유' 하고 쾌재를 불렀다.  대체 상품으로 받은 핫도그 롤은 역시나 내가 그간 사 먹었던 것보다 고급 라인 제품이었다. 맛이 더 좋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롤도 윗부분이 미리 잘라져 있어서 소시지를 끼우기도 더 좋았다.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으로 장을 보기 때문에, 내가 주문한 상품이 없었기 때문에 짜증이 날 수도 있었지만, 코로나 덕분에, 온라인 장보기 덕분에, 내가 주문한 상품이 없었 덕분에, 먹기도 편하고, 모양도 더 이쁜 핫도그를 만들 수 있는 반가운 제품을 발견했다.

 

맛난 핫도그를 먹으면서 새삼 느꼈다. 인생사에 다 나쁘기만 한 것도, 다 좋기만 한 것도 없다는 것을. 모든 일, 모든 것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는 좋은 면도 있고, 안 좋은 면도 있다. 같은 물컵을 모고도 누구는 물이 반이나 있다고 하고, 누구는 반밖에 없다 한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 내 삶의 어떤 면을 어떻게 볼 것인지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렸다.


외국에 살기 때문에, 애들 때문에, 남편 때문에,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외국에 사는 덕분에, 애들 덕분에, 남편 덕분에, 이것 덕분에, 저것 덕분에...


안 좋은 것보다는 좋은 것을 더 많이 보도록 연습하자고 다짐했다.

'때문에' 보다는 '덕분에'를 사는 인생이고 싶기 때문에...


핫도그를 먹으면서 별 생각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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