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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롱 May 10. 2021

진짜 구리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잘 들어둬, 나이 든다는 건 정말 구린거야! 완전 별로라고!”


고관절 수술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가 갓 대학에 입학한 손주에게 외치는 영화 (쥬만지) 속의 대사. 다소 거친 말을 듣고 놀란 아이들이 묻는다.
 
“엄마, 진짜 나이가 드느건 나쁜거야?”
“글쎄…엄만 아직 잘 모르겠네…”
 
청춘이라고 하기에는 몸과 마음이 제법 푸석푸석하고, 황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팔팔한 참으로 어중간한 나이, 40대 초반.  늦은 밤까지 핸드폰으로 영화 한 편이라도 보고 나면, 다음날 아침 두 눈은 모래알이 낀 듯 뻑뻑하고, 거울 앞에 서서 머리 좀 묶어 보려치면 새치가 어느새 정수리까지 침범해 보기싫게 삐죽 튀어나와 있다. 새치를 숨기려고 몇번이나 머리를 묶었다 풀렀다 했더니 이번엔 전기침을 맞은듯 찌릿찌릿 저려오는 어깨. 긴 한숨 끝에 나즈막히 내뱉는다. ”하…늙었네 늙었어. 짜증나게 늙었어”.
 
신호등 없는 교차로에서 내 바로 앞에 선 초보 운전자가 번번이 진입 기회를 놓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가 거의 끝나갈 지경이 될 때까지 앞 차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떼었다 밟았다 또 떼었다... 젊은 나 였다면 왜 저것도 못하냐며 분통텨져 했을 상황을 ‘뭐 초보니까…그럴수도 있지’ 라며 여유있게 기다려주는 멋진 내 모습에 자아도취한다. ‘키야. 그렇지! 이게 바로 성숙한 어른의 모습이지.’ 잔 바람에도 파르르 떨던 삐죽한 나뭇가지가 연륜이라는 나이테를 쌓으며 크고 둥글어지니, 이럴 땐 나이가 드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싶었는데……
 
"저기,,, 나 암 이래"
 
오랜만에 듣는 친구의 인사 첫머리 말이 벼락같이 온 몸을 때리고 지나간다. 나뭇잎 매단 가지 하나 하나, 나이테 한 켜 한 켜 모두 다 뒤흔들어 놓고. 부푼 마음은 온 데 간데없고 슬픔과 함께 눈물이 차올랐다. 리처드가 암이라니. 말도 안 돼…
 
2009년 스위스, 큰 아이 출산 교실에서 처음 만난 리처드와 레나타. 호주와 슬로베니아에서 온 부부는 스위스에서 일가친척 없이 홀홀 단신이었던 우리와 똑닮은 신세였다. 2주 터울을 두고 첫 아이를 낳은 우리는 타국에서 출산과 육아라는 거대한 파도를 함께 헤쳐나간 말 그대로 한 배를 탄 동지. 한 아이를 키우는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낯선 타국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온 마을이나 다름 없었다. 낮에는 각자 아이를 끼고 엄마들이 붙어 있었고, 저녁이 되면 아빠들까지 합세하여 그날의 노고를 와인 한 잔에 씻어 내렸다. 크리스마스 때는 같이 별장을 빌려 외톨이 가족들끼리 명절 분위기도 내고, 우리가 휴가를 가느라 집을 비웠을 땐 스위스로 놀러 오신 리처드의 부모님께 우리 집을 통째로 내어줄 정도로 돈독했던 젊은 날의 친구 가족.
 
비슷한 시기에 둘째를 낳은 후, 우리 가족은 남편 공부를 위해 스위스를 떠나 미국으로 갔고, 리처드와 레나타는 아이들을 위해 리처드의 고향인 호주로 돌아갔다.  각자 새로운 삶에 적응하며 바삐 지내느라 아쉽게도 서서히 멀어져간 우리. 간간이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고, 일 년에 한두 번 생일과 크리스마스 즈음에 축하한다는 평범한 인사를 주고받는 정도의 가냘픈 인연의 끈을 겨우 잡고 있었다. '우리가 호주에 놀러 가면 만나자, 우리가 유럽에 가면 그때 살던 스위스 동네에서 한 번 뭉쳐야지' 라며 다시 볼 그 언젠가의 날을 막연히 기약했는데... 암. 암 이라니…그 언젠가의 날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간 소홀했다는 죄책감에 눈물이 차올랐다. 알 수 없는 미래의 어느 날에 묶어둔 그 가냘픈 인연의 끈마저도 끊어져 버리는 건 아닌지 마음이 아리다 못해 쓰디쓰다.  인생의 크고 작은 기쁜 순간들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 오랜만에 전해오는 소식에 이토록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깔려있다니...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오랜만에 나에게 닿는 인사가 어두워지기 시작한 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나이 마흔이 되면서부터다.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까마득한 20대와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친구들은 종종 들뜬 목소리로 소식을 전해왔다. 사실 그 시절엔 시도 때도 없이 붙어 다니고, 그도 모자라 틈만 나면 전화를 붙들고 모든 일상을 시시콜콜 다 나눴으니 새로울 소식이랄 것도 없었다.
 
"나 대학원에 합격했어, 취업했어, 고시에 붙었어! 내가 쏠게, 우리 모이자!"
"나 결혼해, 와서 축하해줘. 우리 신혼집에서 집들이 하자!"
"나 아기 낳았어. 우리 아기 돌잔치에 와줘. 우리 드디어 집 샀다, 한 번 날 잡자!"
 
말 그대로 '기쁜 우리 젊은 날'. 고소한 깨가 쏟아지고, 행복이 차고 넘치며,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는 낭보로 우리의 축배는 마를 날 없이 넘실댔다. 지금에 와서야 고백하건대, 가끔은 그 소식들이 부러워 배가 아픈 적도 있었다. 아주 조금, 아주 살살...
 
40대가 되니 그간 생사만 간간히 확인해 오던 친구들에게서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된다.
 
"나 이혼했어"
"나 암이라는데 기도 부탁해"
"우리 부모님 돌아가셨어......"
"우리 친구 ㅇㅇ이 기억나지? 그 친구 하늘나라 갔어......"
 
처음에는 '어머, 이게 무슨 일이니... 어떡해...'라며 이 당황스러운 소식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왜 이런 불행이 갑자기 들이닥친건지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조용히 시작한 기도는 왜? 왜? 왜? 를 반복하며 신께 불공평함을 호소하는 외침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한 번, 두 번,,,세번. 아주 가끔 날아오던 비보는 때때로 오더니 이젠 자주 들려온다. 마음이 아린 소식을 듣고 또 듣다 보니 깨달음이란 것을 얻은 것일까? 어쩌면 이건 불행이나 불공평함 때문이 아니라 인생의 자연스러운 궤도를 돌고 있기 때문에 마주하게 되는 모습이 아닐지. 봄에는 봄 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가을이 되면 가을 하늘의 별자리를 보게 되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가을과 겨울의 별자리가 보이기 시작한 나는 중년이구나. 이제 겨우 마흔, 벌써 중년의 문턱을 넘어 노년을 향해 저버저벅 걸어가고 있다 생각하니 서글프다.
 
불혹. 공자는 마흔이면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여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자신이 없다. 그럴 자신이…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소식들이 마음을 흔들어대고 가슴을 후벼팔지 무섭기까지 하다. 오늘만큼은 영화 (쥬만지) 할아버지 말씀이 맞다. 진짜 구리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미지 출처)

Illustration by Laura Evans, Nifty Fox Creative

https://www.evidentlycochrane.net/picturing-mental-hea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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