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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롬 Jan 11. 2019

2018년에 가장 많이 들었던 세 곡

다시 만난 나의 EVERYTHING

                                                                                                                                                                            


#2018년에_가장_많이_들었던_세_곡


멜론은 ‘나만의 차트’ 서비스를 제공한다. 나만의 차트에선 월별로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곡을 1위부터 100까지 볼 수 있다. 하지만 월별로 정리된 차트에는 낯선 곡들이 가득했다. 동생과 함께 멜론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생은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음악을 듣는 헤비 리스너였다.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곡들이 전부 동생의 곡들에 밀려 5위권 밖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월이 있었다. 1월이었다.


1. 나무 – 문문


1월에 무지 힘든 일이 있었다. 그땐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싶었다. 하지만 시야를 차단한 채 사는 건 어려운 일이고 밀려들어오는 생각을 차단하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차단하기 가장 쉬운 건 소리였다. 그래서 귓구멍에 이어폰을 꼽고 살았다. 음악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 어딘가로 도피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수단이었다. 대부분의 하루는 이어폰을 꽂고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때 이 곡을 많이 들었다.


숲에 있는 흔한 거 말고 네 방에 한 그루가 될게 

오붓하게 우리가 만든 흙으로 나를 덮어줘


이 곡을 너무 사랑했다. 거의 모든 가사가 좋았지만 마음에 콕 박혔던 건 후렴의 한 줄이었다. 그때 나는 내 방의 나무가 필요했다. 뿌리를 한 번 내리면 평생 자리를 옮기지 않는 나무처럼 이 영원 같은 하루하루들 단 1초도 떨어지지 않고 나와 함께 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나  조차도 지겨운 이 슬픔을 지겨워하지 않을 사람, 내가 스스로 떠나기 전까지는 계속 그대로 있어줄 누군가. 


하지만 내게 뿌리를 내린 사람은 결국 나였다. 나는 온 힘을 다 해서 내가 이미 자리 잡은 삶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버텼다. 나는 1월 이전의 ‘나’를 긁어모아 미친 듯이 부여잡기 시작했다. 트라우마처럼 남을 그 사건으로 인해 내 삶이 요동하지 않기를 원했다. 일단 내 꿈과, 그 꿈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어떠한 변화도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세상을 그래도 나름대로 아름다운 곳이라고 여기던 생각, 철없고 허영 가득한 내가 평소에 싫어하던 내 모습까지도 그대로이길 바랐다. 누구에게도 동정받지 않을 만한 스펙과 누구도 우울증이라고는 의심하지 않을 정신 상태까지도 제발 남아있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그대로이길 미친 듯이 바란다는 것 자체가 이미 모든 것이 흔들린다는 증거였다. 나는 나무가 되고 싶었지만 한낱 줄기에 불과했다. 나는 모든 것을 붙잡아놓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모든 것은 흩어지는 것만 같았다.


이 계절을 정신없이 보내고 나면 

12월에 내 잎들은 남아있을까


내가 붙잡는다고 과거의 ‘나’는 붙잡힐까. 이 모든 것들이 지나고 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과거의 나는 온전히 미래에 남아있을까. 내 작고 소중하지만 푸르던 날들. 외부의 충격으로 나와 나를 둘러싼 것들이 변하는 게 너무 무서웠다. 나는 평소에는 작고 볼품없어서 싫었던 잎들까지도 ‘12월(과거)’의 것이라면 남아 있길 바랐다. 하지만 잔인한 1월의 바람은 많은 잎들을 가져갔다. 하지만 지금 와서 느끼는 것은 1월을 견딘 지금의 나도 그저 ‘나’ 일뿐이라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물을 머금고, 햇살을 느끼고, 그러다가도 흙을 끌어 모으고, 바람이 불면 흔들린다. 그러는 새에 또 잎들은 생겨나고 나는 어느샌가 한 뼘 자라 있다. 


그렇게 줄기는 나무가 될 것이다. 떠나보낸 잎들은 내 발 밑에 언제든 고개를 숙이면 보일 수 있는 자리에 쌓일 것이고,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나면 그것들은 다시 흙으로 돌아와 나를 이룰 것이라 믿는다.


+) 불행히도, 이제 이 노래는 더 이상 듣지 않는다. 가수가 알고 보니 몰래카메라를 찍다가 형까지 받았던 사람이었다. 이 곡에 대한 추억만큼은 좋게 기억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다시는 문문을 듣지 않을 것이다. 



2. 소녀시대 – 다시 만난 세계


7월에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다. 아이돌이 부른, 그것도 무려 데뷔곡인 노래지만 이 노래에 담긴 감성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노래는 여성 아이돌 그룹의 전형적인 화법 세 가지가 없다. 1. 흑흑 헤어졌어.. 제발 돌아와 줘!!!!!!!! 왜 날 두고 가시나.. 한.. 이런 이별 정서가 없음. 2. 화자는 약하지 않고 강함. 비장하기까지 함. 3. 내가 제일 잘 나가! 아름다움이나 섹시함을 뽐내지 않음. 


 <다시 만난 세계> 속 화자는 삶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을 인정한다. “눈앞에 다가온 거친 벽”을 바라보면서 그는 “특별한 기적”을 바라지는 않는다. 오히려 “눈앞에 거친 길”을 계속해서 걷기를 원한다. 누군가와 함께. 그 누군가는 그려왔던 헤맴의 끝에서야 만난 소중한 사람이다. 


화자는 삶의 고통이 한 번에 전복되고 사라질 것이라는 특별한 기적은 믿지 않지만 변치 않을 사랑을 원한다. 사실 영원한 사랑만큼 클리셰적인 기적이 어딨어.. 그런 거 없는데..ㅇㅅㅇ 하면서도 이 노래 속 화자에 공감하는 이유는 사실 나도 그렇기 때문이다. 변치 않는 사랑을 믿지는 않는데 나한테는 그런 거 있었으면 좋겠으니까. 아마 모든 사람들은 변치 않는 사랑에 대해 나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거 없어’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나에게..?’ 하면서. 


소녀시대는 90년 대생들에겐 특별한 그룹이다. 소녀시대가 전성기였기에 나의 소녀였던 시기도 절정이었으니까. 소녀시대는 우리 모두의 소녀시대인 셈이다. 그들의 공식적인 해체는 내 청춘의 공식 해체 선언으로 들릴 것 같다. 40살 돼서도 다시 만난 세계를 들으면서 영원한 사랑을 믿고 싶다. 아니 50살까지도.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2007.



3. 검정치마 – EVERYTHING


 11월의 1위 곡이지만 내 인생의 1위 곡. 어느 날 악마가 와서 평생 노래 하나만 듣고 살아야 된다고 하면 주저 없이 이 노래를 뽑을 것이다. 사실 지금도 듣고 있는데 들을 때마다 좋다. 조휴일에게 노래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절이라도 하고 싶다.  


넌 내 모든 거야 

내 여름이고 

내 꿈이야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계절은 여름이고 사람이 가장 뜨거울 때는 꿈을 좇을 때다. 그리고 노래 속 ‘나’는 너를 그만큼 뜨겁게 사랑한다. 


분명 가장 뜨거운 언어로 뜨겁게 사랑을 말하는데 조휴일의 목소리는 놀랄 만치 차갑다. 차분하다. 꿈꾸는 것 같기도 하고 술에 취한 것 같기도 하다. 그 차가운 목소리 때문에 화자는 이미 사랑의 뜨거움과 이별의 차가움까지 처연하게 내다보는 것 같다. 멜로디가 너무 슬퍼서 더 그렇게 느껴질지도. 


이 노래가 왜 달콤하게만 느껴지지 않는지, 왜 슬프게 느껴지는지 더 설명하려다가 그만둔다. 그냥 알 수 없는 채로 남겨두고 싶다. 어떤 것은 이유를 모를 때 더 오래 사랑하게 된다. 앞으로 최소 30년은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이 달콤한 노래를 슬퍼하고 싶다.



검정치마, <EVERYTHING>,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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