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까지 할머니의 주식은 해산물이었다. 인천 서쪽 해상에 있는 섬, 용유도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각종 생선, 쭈꾸미(할머니는 ‘주꾸미’라고 발음한다), 각종 갑각류 등을 손질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명절날이면 양념게장-간장게장이 나란히 상에 오르고, 이름도 생소한 각종 생선 여러 종류가 곳곳에 놓이는 이유다. 도라지를 새콤한 양념에 무칠 땐 꼭 오징어도 함께 곁들이고, 김치에는 꼭 각종 젓갈을 넣는다. 해산물을 다룰 때 할머니는 숙련된 기술공처럼 여유롭고 듬직한 표정을 짓는다.
해산물은 할머니는 좋아하는 음식이면서, 또 좋아하는 재료가 될 수 있었다. 그의 남편이자 나의 할아버지 역시 해산물을 좋아하는 인천 총각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입맛이 식탁 위를 좌우하는 일이 우리 조부모 세대에는 흔하지 않았나.
결혼 후 한때 할머니의 손은 하루종일 돼지고기만 만졌다. 아들 셋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기 위해 돼지국밥집을 운영할 때 얘기다. 생선을 손질하는 것보다는 힘겨웠지만 할머니는 하루 시작을 돼지를 삶아 육수를 우리는 걸로 시작했다. 내 아버지이자 할머니의 첫째 아들이 아직도 ‘돼지고기 냄새’라면 질색팔색하는 이유다.
어느새 아들들이 다들 집을 떠났다. 취업과 결혼을 하면서다. 집안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둘만 남으면서 식탁은 간소해졌다. 아들 셋의 입맛을 고려한 각종 반찬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할아버지의 입맛만 남으면서다. 할머니와 달리 할아버지는 닭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다. 할머니는 잘 드시는 피자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렇게 할머니‘만’ 좋아하는 음식은 잊혀져갔다.
한 번은 초등학생인 내가 할머니네 맡겨졌을 때 그는 이렇게 물었다. “너 치킨 먹고 싶지 않으냐.” 놀랍게도 나는 그때 치킨이 먹고 싶지 않았다. “아뇨, 괜찮아요.” 어린 마음에 할머니가 괜히 돈 쓸까봐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숙자 씨는 그 뒤로도 여러번 물었다. “치킨 안 먹을래? 치킨 먹고 싶지 않으니?” 집에 놀러온 어린 손녀를 핑계로, 치킨을 시키고 싶었던 것이리라.
사회인이 되고 첫 월급을 탔을 때 나는 할머니 집으로 치킨 한 마리를 배달 시켰다. 황금 올리브로 튀겨서 더 바삭하고 맛있다는 그 치킨이었다. 그리고 19번째 월급날인 오늘도 전화를 걸어 물었다. “할머니, 댁으로 치킨 시키려고 해요~” 할머니는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치킨을 사냐면서 됐다”면서도 ”오늘은 피자가 더 낫지 않겠니?“라고 물었다.
오늘의 정답은 피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