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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롬 Apr 10. 2020

삶의 면역

엄마와 성경

엄마는 고집스러웠다. 육의 양식을 먹기 전엔 영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나 뭐라나. 성경책을 안 읽으면 아침밥을 안준다는 식이었다. 결국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일어나자마자 성경을 한 절씩 읽어야 했다. 여기서 끝나면 솔직히 귀찮은 일이 아니다. 성경을 다 읽고 나면 어떤 구절이 인상 깊었는지도 말해야 했다. 그 뒤엔 엄마가 성경 속 인물에 대한 썰을 풀었다. 자신을 죽이려던 사울 왕을 차마 죽이지 못했던 다윗,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지만 용서받은 베드로, 모세와 아합, 예례미아와 여호수아…. 엄마는 생색도 빼먹지 않았다. “니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그리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밤이면 엄마가 성경 읽어줬어”


결말은 다르지만 과보호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다. 공주의 부모는 공주를 성 안에 가두면 마녀의 저주로부터 안전할 줄 알았다. 그러나 공주는 성 안이 아니라 성 밖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배운다. 잠자는 숲속의 부모와 비슷한 실수를 범하는 이가 테티스다. 테티스는 스틱스 강의 물로 아킬레우스를 지키려 한다. 그녀는 아들을 거꾸로 잡아 생명의 수(水)에 넣는다. 하지만 그녀가 아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는 사실은 망각한다. 아킬레우스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는 다른 결말을 맞는다. 그는 발목에 화살을 맞아 죽음을 맞는다.


결말은 다르지만 두 이야기는 모성애로부터 비롯된 과보호를 지적한다. 어떤 어머니들은 자식이 안전하길 바라서 자식이 자신이 노력하면 세상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아예 세상으로 진입하는 시기를 늦추거나 막고(잠자는 숲속의 공주), 자신이 터득한 삶의 방법을 아직 자아가 형성되기 전인 어린 자식에게 주입시킨다(아킬레우스). 그러나 공주는 부모의 세계인 성에서 탈출해 행복을 찾고, 아킬레우스는 스틱스 강물의 효력을 믿다가 방심한 순간 파리스의 화살을 맞는다. 둘이 보여주듯 ‘부여된 면역’은 좋지 않다. 삶에 대한 저항력은 삶에서 키워야 한다.


삶이란 불확실의 세계에서 헤매는 나날이 반복되고 있다. 방황은 거짓말처럼 독립을 하자마자  시작됐다. 자주 불안했고 자주 자신이 싫어졌다. 나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 자주 되물었고 존재 의미는 날이 갈수록 행방이 묘연했다. 그럴 때면 나는 성경 구절을 읽어야만 허락됐던 작고 단란한 식탁을 그리워했다. 부모가 주는 안정의 세계, 확실한 사랑의 세계, 매일 존재 의미를 확인받고, 매일 자신감이 채워지던 시절. 나는 부모가 차려 주는 작고 단란한 사랑을 와구와구 먹고 무럭무럭 자라났었다.


몇 년 전이었던가. 페이스북이 막 유행했을 때였다. 살면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을 열 권 고르고 다른 친구를 태그하는 릴레이 챌린지가 있었다. 나는 1번 책으로 성경을 꼽았다. 성경이라는 두 글자를 적고 나는 조그맣게 웃었다. 성경이라니. 심지어 다 읽지도 않은 책이고, 억지로 꾸역꾸역 읽던 책인데. 하지만 사실이었다. 삶이 나를 거의 다 집어 삼켰을 때 간신히 손만 뻗어서 집어 들었던 책. 성경이었다. 누군가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울 때는 다윗의 이야기를 읽었다. ‘나’가 소중한만큼 ‘남’도 소중하다는 신의 공평한 섭리를 이해하려 애썼다. 나 자신의 위선적인 면이 죽도록 싫을 땐 베드로를 떠올렸다.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한 것처럼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셨다. “너는 나를 사랑하니?” 베드로는 뻔뻔하게도 “그렇다”고 세 번 답했다. 신(예수)은 알고 있었다. 인간은 그렇게 뻔뻔하다는 걸. 그리고 그 뻔뻔한 인간을 너무 사랑했다. 그럼으로 나의 위선도, 신은, 나름, 사랑스러워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밖에도 내가 종종 떠올리는 성경 속 구절은 많다. 다 쓰려면 밤을 새야 할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성경은 엄마가 나에게 길러주고 싶은 삶의 면역이 아니었나 싶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 부모들처럼 내가 다 자라서 죽을 때까지 품고 살 수는 없어도, 테티스처럼 어떤 삶의 위기일지라도 모조리 예방해주는 방법을 전해주진 못 할지라도. 내가 삶을 살다가 너무 힘들 때 조용히 떠올릴 수 있는 구절을 새겨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막 태어난 나에게 시편을 속삭이고,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나에게 모세의 기적을 읊어주고, 잠에서 깨면 티비부터 보고 싶어하는 유년의 나에게 예수의 삶부터 읽으라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든든하다. 현자가 준 비밀 주머니를 간직하고 악마와 싸우러 가는 판타지 세계 속 주인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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