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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롬 Apr 09. 2020

쉽게만 살면 재미없어 빙고?

아닌데요

[카페에서 거북이의 ‘빙고’를 듣다가]


“누구를 인정하기 위해서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어.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각자 발을 굴러서 그냥 최대로 공중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내려오는 거야.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

- <경애의 마음> 중


쉽게만 살면 재미없어 빙고! 

이 가사를 미워한다. 박근혜가 불러서가 아니다. 물론, 어려운 삶을 나름대로 합리화하려는 시도는 좋다. 16비트로 쪼개지는 박자에 멜로디가 흥겨워서 그렇지 거기서 음표를 제하고 가사의 활자만 남겨놓으면 어떻게든 삶을 긍정하려는 처연함이나 처절함같은 게 느껴지기도 한다. 


근데 그래도 싫다. 왜냐면 나는 재미없더라도 쉽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삶이 어려우면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첫째로 어려워서 고통스럽다. 둘째로는 내 삶이 어려울 때 주변의 상대적으로 '쉬워' 보이는 상대방의 삶을 질투하면서 더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점이다. 나는 내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보면서도 여지없이 "부럽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삶을 질투한다는 게 얼마나 못난 일인지. 나는 불행한데, 못나기까지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면 견디기 힘들다. 


나는 쉽게 살고 싶다. 좀 재미없고 지루하더라도 쉬운 삶이 너무 갖고 싶다. 삶의 굴곡이나 파장을 경험하지 못해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폭이 좁더라도, 누군가의 고통에 쉽게 이입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그냥 쉽게 살고 싶다.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겠지만, 쉽게만 살아가면 적어도 남을 미워하진 않을 수 있으니까. 나는 조금은 순수하고 조금은 멍청하고 조금은 무딘 사람이고 싶다. 살면서 쉽게 미움을 받지 않은 사람은 누군가를 쉽게 미워하지도 않는다. 설사 미움을 받아도 눈치채지 못한다. 천진함이 그를 비호한다. 그런 사람을 미워하는 누군가는 나중엔 그 사람이 아닌 자기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천진함의 비호를 받는 삶을 살고 싶다. 머리만 대면 쉽게 잠들고 싶고, 누구에게나 이빨을 드러내고 웃으며, 카페에서 어쩌다 흘러나온 노래 가사에 딴지거는 일도 없는 사람이고 싶다. 그저 나는 그네를 타고 있을 뿐이라고.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보이는 마라톤이아니라, 상대방과 내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삶의 리듬을 반복하는 그네를 타고 있을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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