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내 글은 밀도가 높았다. 그래서 온도도 높았다. 내가 직접 경험한 일에서 파생된 감정을 주로 글의 소재로 삼아서다. 그만큼 핍진하고 섬세했다. 글과 ‘나’ 사이에 간격이 아주 좁았다. 그래서 글 자체가 감정적인 편이었고 또 뜨거웠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아주 뜨거운 감정의 파편들이 단단하고 빈틈없이 뭉쳐진 뭉텅이 같은 글이었다. 내가 누구고 어떤 상황에 놓인 사람인지 모르면 쉽게 만질 수도 들여다볼 수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나는 그 뭉텅이들을 아주 극소수의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공개했다.
‘나’에 집중한 글쓰기는 분명 필요한 과정이었다. 나는 나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하며 내 감정을 톺아보고 하루를 돌아봤다. 삶을 아카이빙하는 느낌으로 (나름) 성실하게 기록하는 습관도 조금은 생겼다.(매일 매일 일기 쓰는 분들 존경스러워요.) 자기치유에도 도움이 됐다. 글을 쓰고 나면 어딘가에 구정물을 잔뜩 덜어낸 기분이 드는 날도 있었다. 글이 지저분해질수록 글을 쓰고 난 이후의 나는 깨끗해졌다. 마음속에 담아만 두기엔 너무 억울한 슬픔, 외로움, 그리움, 분노 같은 것들을 쏟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깨끗해질수록 글은 온갖 감정이 우글댔다. 밀도와 온도가 모두 높은 그 글은 쉽게 자기연민으로 흘렀다. 글에 마음껏 자기연민을 쏟아내니 아이러니하게도 삶에선 자기치유가 가능했다. 하지만 내 글을 읽는 사람은 지나친 자기연민을 보고 조금은 힘들었을지 모른다.
글쓰기는 확장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나와 내 주변 사람 몇몇만 만족시키는 글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글을 쓰고 싶으니까. 내 욕망을 실현시키고 싶으니까. 출발은 ‘나’일 수 있어도 ‘남’과 ‘세상’으로 확장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정확히는 무엇이 될지 모르겠다. 논객이 되고 싶단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만은 확실하다. 나를 모르는 이들도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쓸 것이다. 나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아는 사람만 이해하는 글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찾아나가야 하겠지. 한 순간에 완성되기 힘들 것이다. 생각의 틀을 바꿔야 하는 작업이니까. 이제 무슨 일을 겪었을 때 나를 들여다본 것으로 만족하긴 힘들 것 같다. 경험에서 얻어낸 느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고, 나아가 그들과 일순간이라도 연결될 수 있는 글쓰기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장마가 끝난 뒤 더 뜨거워질 여름 안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서늘한 가을 하늘에 다짐을 되새기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