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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롬 Sep 23. 2020

휴식은 그리움을 위한 이별

멀어져야 가까워지고 싶어지는 일상의 아이러니


  산책에 나설 때면 늘 다짐한다. "오늘은 집에서 더 멀리 가야지"

집에서 멀어지고 싶은 이유는 그래야 돌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코로나 19 이후 집이 지겨워지는 경험을 했다. 가뜩이나 좁은 집이 지겨워지기까지 하니 답답함이 솟구쳤다. 새로운 산책의 철학을 만들었다. 그리워질 때까지 멀어져보는 것이었다. 요즘 나는 일부러 어제는 보지 못한 낯선 풍경이 나올 때까지 걷는다. 그렇게 새로운 이름의 아파트와, 처음 보는 모자를 쓴 포장마차 주인과, 낯선 분수대 같은 것들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면 집에 대한 그리움이 슬그머니 피어오른다. 집이 그리워지면 돌아가는 발걸음이 외롭지 않았다. 일단 떠나야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도감도 느끼는 것처럼, 익숙한 공간에 밴 냄새를 맡기 위해선 바깥에 나갔다 돌아와야 하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집에 돌아가기 위해서, 집과 조금씩 멀어지는 연습을 했다.  


  생각해보면 인생의 모든 일이 내 산책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마치고 헤어질 때 '안녕'이란 인사가 달콤한 이유는 집에 돌아간 후에 저 사람이 그리워질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소문난 떡볶이 덕후인 친구는 떡볶이를 맛있게 먹기 위해서 2~3일에 한 번만 먹는댔다. 다른 음식을 먹어야 떡볶이의 매콤달콤함이 배가 되기 때문이었다.


  글도 마찬가지다. 가끔 너무 쓰고 싶은데 안 써질 때가 있다. 써야할 게 너무 많아서 인써질 때도 있다. 마음에 글에 대한 욕망이 가득차서 힘이 잔뜩 들어갔을 때다. 이럴 때 나는 애니메이션 <마녀 배달부 키키> 속 대사를 떠올리기로 했다. '빗자루 타기'가 특기였던 마녀 키키가 갑자기 빗자루를 타지 못하게 됐을 때 옆집 친구이자 화가인 우르슬라가 해준 말이다.


“마법과 그림은 비슷한 데가 있어. 나도 안 그려질 때가 있어. 그럴 때는 미친 듯이 그릴 수밖에 없어. 계속 그리고 또 그려야지. (하지만 그래도 안 되면) 산책이나 경치 구경을 하고, 낮잠 자거나 아무것도 안 해. 그러다가 갑자기 그림이 그리고 싶어.”


  하기 위해서, 아무것도 안 해야할 때가 있다. 두 글자로 압축하면 '휴식'이다. 집을 그리워하기 위해 집에서 멀어지는 것처럼, 떡볶이를 더 맛있게 먹기 위해서 잠시 샐러드를 우걱우걱 먹는 것처럼. 우리는 가끔 '안 한다'가 꼭 '한다'의 반댓말이 아니란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안함'은 '함'의 전 단계일 때도 많으니까.






(이 글을 배짱이의 '합리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무한 경쟁 시스템을 심각하게 내재화했다고밖에..볼 수가..없네요..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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