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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롬 Aug 01. 2020

7년 전 김희애(불륜녀)와 오늘의 김희애(아내)

<부부의 세계>와 <내 남자의 여자> 속 여성 캐릭터 비교해보기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부부의 세계> 속 태오의 대사는 불륜관계의 핵심을 짚고, 시청자의 분노의 핵을 건드렸다. 불륜을 저지르는 이들에게 불륜은 뒤늦게 찾아온 진정한 로맨스다. 사실 이런 대사는 <부부의 세계>가 처음이 아니다. <부부의 세계> 속에선 아내 역할인 김희애 씨가 불륜녀로 등장했던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에서도 이 대사는 등장한다. 물론 불륜남의 입에서다. 2007년 김수현 작가의 <내 남자의 여자>와 2020년 <부부의 세계>는 불륜이라는 소재를 통해 여성을 조명한다. 13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둔 두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를까.

<내 남자의 여자> 속 아내 역할인 ‘지수’는 전통적인 여성관에 부합한다. 지고지순하며 요리를 잘하는 전업주부다. <부부의 세계> 속 ‘선우’는 다르다. 그녀는 주변인으로부터 ‘완벽하다’는 평을 듣는 의사다.

두 여성은 모두 이혼 후 경제적 지위를 유지한다. 지수는 경제적 지위의 유지 수단조차 가부장제에서 기인한다. 시댁에 10년 간 헌신을 다한 결과 시아버지로부터 ‘참된 며느리’임을 인정받아 그의 유산을 상속받는다. 사실 지수의 사례는 흔하지 않다. 지수처럼 며느리를 제 자식보다 아끼는 부자 시아버지가 없는 대다수 여성은 이혼 후 일거리를 찾아 나서야 했다. 지수의 유산 상속은 드라마 후반부에서 망가져야 하는 대상은 지수가 아니라 불륜녀 화영(김희애 역)이였기에 부여된 설정으로 보인다. 현실의 수많은 ‘지수’들은 해왔던 것들(가사와 육아)를 하면서 안 해왔던 것(생계유지)을 해야 했을 것이다.

선우는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날,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넋 나간 얼굴로 식탁을 치운다. 그녀가 경제력이 없는 영화감독인 남편 태오를 대신해 가장의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가사 노동 또한 맡아온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혼 후에도 선우의 삶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실질적 가장 역할과 주부 역할까지 선우는 그저 해왔던 것들을 할 뿐이다.

<내 남자의 여자> 속에서 ‘밥’은 중요한 장치다. 밥은 지수의 능력이자 바람난 남편이 지수를 그리워하게 되는 매개다. 불륜 대상인 화영은 요리를 못했기에 남편은 아들의 생일을 핑계 삼아 지수에게 밥을 얻어먹으러 온다. 그리고 밥을 통해 자신에게 헌신적이었던 지수를 떠올린다. 지수는 바람난 남편이 허겁지겁 밥을 먹는 것을 보며 생각한다. “저 인간, 밥은 먹고 다니는 건지.” 2020년의 시청자들은 유튜브로 그 장면을 보며 지수의 남편을 ‘밥줘충’이라 칭한다. ‘밥’은 가부장제란 식탁에 종속된 여성의 지위를 상징한다.

물론 <부부의 세계> 속 태오는 선우에게 밥 달라고 찾아오진 않는다. 대신 복수를 위해 찾아온다. 그의 복수는 선우를 향한 열등감에서 기인한다. 무능력한 자신에 비해 유능한 선우, 허술한 자신에 비해 치밀한 선우, 자신의 지인조차 “제수씨가 너랑 왜 사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할 정도로 매력적인 선우. 태오는 물리적 폭력까지 동원해 선우에게 복수한다. 선우는 무능력한 남편의 모자람을 메우고 숨겨주는 ‘호의’를 베풀었지만 호의가 계속되니 태오에겐 당연한 권리가 됐다. 권리를 빼앗긴 그는 선우의 삶을 파괴한다. 불륜이 뻔뻔한 건 여전한데 불륜남들은 더 독해졌다.

여전한 것도 있다. 지수는 동네 마트에서 자신의 남편과 화영에게 독설을 퍼붓는 언니에게 소리친다. “남편 뺏긴 등신 머저리 천치라고 왜 광고를 해!” 선우는 동네 사람들에게 남편 내치고 당당하게 삶을 살아간다는 이유로 독하단 손가락질을 받는다. 지수와 선우가 증오하는 불륜 대상인 불륜녀들이 받는 손가락질은 남편들이 받는 것보다 늘 혹독하다. 


불륜을 했든 당했든 손가락질의 끝엔 늘 여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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