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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롬 Aug 12. 2020

영 못 잊을 영도의 기억

2020년 1월 부산 여행 



어떤 여행은 한 해를 버틸 힘을 준다. 2020년 초 운 좋게도 그런 여행을 다녀왔었다. 한해가 막 시작된 1월에 떠난 2박 3일 간의 부산 여행이었다. 3일 내내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순간은 여행 2일째에 찾은 영도에서 마을버스를 탔던 순간이다. 


마을버스를 타면 엿볼 수 있는 영도 풍경


그때 나는 부산에서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 영도를 함께 여행했다. 우리는 작은 마을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영도의 골목을 누볐다. 버스 안 공간은 매우 협소해서 앉을 좌석이 열다섯 자리도 채 안됐다. 영도를 관통하는 그 마을버스는 인기가 많았는지 우리가 탔을 때는 이미 사람이 가득했다. 그래서 서서 갔다. 버스 창가에 바짝 붙어서 난간을 붙잡았다. 버스가 출발하자 그게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가 가까이에서 영도의 풍경을 감상하기 좋은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그 버스는 거의 미니 관광버스였다. 버스는 작은 골목의 내리막길을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신나게 내달리기도 하고, 영도 골목의 풍경을 이루는 건물을 지나치며 그 건물들 사이로 넘실거리는 바다를 보여줬다. 버스 창가에 바짝 기대어서 바다 옆에 바로 자리 잡은 학교의 풍경을, 흰여울 문화마을의 파스텔 톤 집들을 눈에 담았다. 


버스는 영도에서 오래 산 수다쟁이 노인네 같았다. 우리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영도의 구석 구석으로 인도했다. 그 의도치 않은 작은 여행이 너무 즐거웠다. 내가 시종일관 “와~~~놀이기구 탄 거 같아~~~”하고 감탄을 하자, 유쾌한 버스 기사는 “아가씨 핸드폰으로 사진 찍다가 넘어져요”하고 주의를 주다가도, “이게 그렇게 재밌어요?”하고 웃었다.


햇살이 내려앉은 영도의  골목


영도분식은 맛은 평범했지만 아늑했다. 친구 다락방에서 떡볶이 먹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창 너머로 바다를 만끽하면서 부산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떡오뎅(물오뎅이 정확하답니다)과 어린시절이 생각나서 고른 피카추 튀김을 먹었다. 닭고기도 돼지고기도 아닌 이상한 고기의 맛을 느끼면서 피카추 꼬치가 200원이던 시절을 조용히 떠올렸다. 


친구는 흑석동 포장마차에서 부선 떡오뎅을 찾은 적이 있다고 했다. 알고 보니 부산에서만 파는 거라 아쉬웠다며 웃었다. 그 얘길 들으면서 오늘 처음 먹은 떡오뎅이 서울에 가면 조용히 그리워질 날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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