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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롬 Aug 26. 2020

코로나 시대의 외로움

도심 속 사람들이 외로움을 흘려 보내는 방법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시작하면 은근한 기대를 품고 창문을 조금 열어둔다. 그때쯤이면 어딘가에서 구슬픈 색소폰 연주 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대부분 색소폰 소리는 노을이 질 때쯤 찾아온다. 곡명을 알 수 없지만 익숙한 선율의 노래가 들리기도 하고, 'You raise me up'처럼 유명한 곡이 들리기도 한다. 연주자는 성실한 편인 것 같다. 거의 매일 비슷한 시간에 색소폰을 연주하니 말이다. 이 연주가 정확히 코로나 19가 유행하고 난 뒤에 시작된 건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연주를 '의식'하게 된 건 코로나 19 이후가 분명하다. 색소폰 연주가 소음이 아니라 이웃 중 누군가도 나처럼 외로워한다는 일종의 신호로 읽혔다. 6평이 안 되는 직사각형의 원룸 안에서 하루 온종일을 혼자 보내다 보니 매일 비슷한 시각에 찾아오는 누군가의 성실한 연주에 위안을 느꼈다.  


며칠 전엔 집을 나서다가 본 노인을 집에 돌아오면서도 마주쳤다. 내가 사는 원룸 건물 바로 앞에서 보행기에 의지한 채 자활 운동을 하는 노인이었다.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설 때 눈이 마주쳤던 그 노인을 저녁에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 같은 자리에서 마주쳤다. 나설 땐 인사를 나누지 않았지만 돌아올 땐 노인에게 고개를 숙여 몸짓으로 인사했다. 인상을 구긴 채 땀을 뻘뻘 흘리며 힘겹게 걷기 운동을 하던 노인의 눈이 웃느라 잠시 휘어졌다. "운힘내세요"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집으로 들어갔다.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온 뒤 집주인이나 편의점 직원을 제외하고 이웃과 인사를 나눈 적이 없었다. 오랜만에 나눈 눈인사에 어색한 온기를 느꼈다.


그저께는 집 앞 도림천을 자전거로 달리다가 홀로 바이올린을 켜는 노인을 보았다. 중절모를 쓴 그 노인은 눈을 지긋이 감고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노인의 발 바로 앞엔 도심 한가운데를 질주하는 하천이 있었다. 자전거를 잠시 멈추고 멀찍이서 바이올린 소리를 들었다. 베토벤인지 모짜르트인지 알 길은 없었으나(클래식 입문한 지 얼마 안됐습니다,,) 곡명이나 연주의 퀄리티는 사실 상관 없었다. 흐르는 물소리와 사람들의 대화 소리, 발걸음 소리, 그리고 바이올린의 선율이 한데 합쳐지니 괜히 이 순간이 평온한 일상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외롭지 않은.


하천 주변에 놓인 벤치에는 뜨문뜨문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무심히 각자 휴대폰 게임을 하는 커플도 있었고, 홀로 노트북을 켠 채 작업을 하는 듯 보이는 청년도 있었다. 하천 한 가운데 놓인 널찍한 바위 위에 앉은 중년 부부도 보였다. 아내는 런닝 차림에 남편의 등을 긁어주고, 남편은 부채를 부치고 있었다. 한 두달 전에는 서류 가방을 벤치 한구석에 던져 놓고 저녁식인지 햄버거를 먹는 직장인 차림의 남자도 보았다. 그들 대부분이 마스크를 쓰고 있거나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기분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 이제야 좀 사람 사는 것 같네."


'함께'가 쉽지 않은 시기를 산다. 그래서인지 도심 속에서 종종 누리는 낯선 이웃들과의 함께가 잠시동안이지만 따수웠다. 그렇게 하천 주변을 걷거나 자전거로 달리고 나면 조금 덜 외로워지곤 했다. 물론, 지금은 그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말이다. 외로움이 당연한 시기라고 해서 덜 외로운 건 아니다. 공개적인 곳에 자주 글을 쓰는 이유도 덜 외롭고 싶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코로나 19 전에도 외로웠던 사람들은 어떨까. 익숙했기 때문에 좀 나을까. 아니면 두 배로 커진 외로움이 버거울까.


접촉 없이도 맞닿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다. 노을이 질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면 누군가의 연주처럼. 나는 무엇을 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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