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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롬 Aug 12. 2020

'그럴리 없는' 사람은 없다

시사인, <여성운동 동지가 박원순을 보내는 방법>


  최근 <김현정의 뉴스쇼>를 듣다가 재생을 멈춘 적이 있다. 박원순 전 시장이 죽은 뒤였다. 그 날 뉴스쇼에는 권인숙 의원이 출연했다. 권 의원은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다. 그때 당시 박원순 변호사의 도움을 받았다. 권 의원은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기 위해  민주당 내 여성의원의 성명을 모아 발표한 뒤였다.


"그런 사이이시기 때문에 이번 사건을 접하는 마음이, 심경이 더 복잡하고 더 충격적이고 그러실 것 같아요. 어떠십니까?"


  김 앵커의 질문에 권 의원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중간에 울음을 삼켰다. 아주 복잡한 감정이 몰려온 것 같았다. 그때 나에게도 여러 가지 생각이 찾아왔다. 나를 수렁에서 벗어나게 도와 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수렁으로 밀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 복잡한 심경을 뒤로 하고,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였다.


  권 의원과 비슷한 고민을 했을 법한 이가 있다. 시사인 천관율 기자가 인터뷰한 정춘숙 의원이다. 정 의원은 여성운동가 출신 정치인이자 박원순 전 시장의 오랜 동지다. 정 의원이 여성의전화에서 일할 당시 변호사였던 박원순 전 시장이 이사였다. 기사 속에서 인상깊었던 부분은 자신마저 ‘그럴 리 없는 사람은 없다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는 정의원의 고백이었다.



이즈음부터 정춘숙은 마음의 분열에서 조금씩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계기는 의외의 장면에서 왔다. 그는 외면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면서 첨예한 양쪽 의견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추모하는 글이 훨씬 잘 읽히고, 피해자와 연대하는 글이 눈에 잘 안 들어왔다. “그게 왜 신기한가요?” “반대여야 되거든요. 제가 평생 해온 일이 피해자 편에 서고 피해자 목소리를 듣고 피해자와 연대하는 건데, 그런 글이 훨씬 잘 읽혀야 정상인데, 박원순에 대한 글이 더 잘 읽히더라고요. 그걸 스스로 인식하는 순간 깨달았죠. 아, 나는 아직도 박원순이라는 사람을 눈에다 렌즈처럼 쓰고 보는구나.”


그는 자신이 ‘그럴 리 없는 사람은 없다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박원순이라는 사람을 빼고 읽으니 그때야 글이 제대로 읽혔다. 이 경험을 그는 “내가 주제파악을 했다”라고 표현한다. 평생 피해자 옆에 서는 훈련을 해온 자신도 이런 상황에서 흔들리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시사인, <여성운동 동지가 박원순을 보내는 방법>, 천관율 기자.


  인터뷰 기사 속에는 충격과 고뇌, 분열 그리고 인정에 이르기까지 정 의원의 이야기가 잘 담겨 있다. '그럴리 없는 사람은 없다'는 성범죄의 원칙이 친애했던 동지에게도 해당되는 것. 또, '그럴리 없는 사람은 없다'란 문장이 자신에게도 해당된다는 것. 어떤 명제는 누군가에겐 매우 복잡한 문제처럼 느껴질 것이다.


  민주당 내 여성운동가 출신 의원들의 조문을 두고 실망스러워한 사람들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꼭 갔어야 했냐"고 묻고 싶었다. 다만 이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왜 조문을 갔느냐"는 비판은 이제 멈추고, "왜 인권 운동가 박원순이 성범죄 가해자가 됐을까"에 대해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사 말미 정 의원의 말처럼.


박원순조차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박원순조차 그랬다면 어떻게 이걸 뛰어넘을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생각해야 합니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599&fbclid=IwAR3kvUC5xjWSQ1ra4Ad4q2ymmRkSXFtSa8W8aklhZ0s7akdn1KCwYF9RY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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