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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롬 Oct 02. 2020

"잘할 수 있어"란 말을 해주는 사람

(선)물주머니에 대한 답례글

"그럼. 잘할 수 있지."

연애를 한다는 건 이 말이 쿡 찌르면 뿅 나오는 상대가 옆에 있다는 뜻이다. 누구와 연애를 하든 나는 그 말을 쉽게 받아냈다. 내가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을 아무리 퍼부어도 상대는 대부분 내가 원하는 답을 해줬다.


대부분의 질문은 "나, 잘할 수 있을까?"가 조금씩 변주된 형태였다. 조별과제 발표를 앞두고 있을 때, 엄마 아빠 도움 없이 내 힘으로 집을 고르고 이사를 할 때, 초짜 학원 강사 시절 첫 수업을 앞뒀을 때, 인턴 첫 출근 하루 전날에, 자기소개서를 써야할 때, 한 번도 끓여본 적 없는 찌개에 도전할 때, 친구와 싸운 뒤 내가 먼저 말을 걸 때 등등 수많은 상황에 놓인 나에게 그들은 모두 성실히 대답했다.  


물론 방식과 느낌은 달랐다. 첫 애인은 섬세하고 정직했다. 연애경험도 별로 없었다. 그는 내가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구체적인 이유를 찾아서 덧붙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그럼, 잘할 수 있지"는 느리게 도착하는 만큼 길었다. 다만, 그 이유를 찾지 못할 때면 그의 문장은 여지없이 힘을 잃었다. 확신 없는 응원 만큼 알아채기 쉬운 것도 없었지만 노력이 가상해 모른 체하곤 했다. 두 번째 애인은 연애경험이 많았다. 그는 모든 관계에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미리 준비해 필요할 때 대령하는 습관이 있었다. 눈치도 빠르고 말도 빨랐던 그의 "그럼, 잘할 수 있지"는 기계적으로 튀어나왔다. 그의 반사적인 응원은 어딘가 못 미더웠지만 한결같았다. 첫 번째 애인의 '그럼'이 이제 막 요리 자격증을 딴 서투른 요리사가 정성 들여 내 놓는 맛이 들쑥날쑥한 코스요리 같았다면, 두 번째 애인의 '그럼'은 늘 중간은 하는 패스트 푸드 알바생의 햄버거 같았다. 그들이 있었기에 어쨌든 자신감으로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잘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근거가 있든 없든, 섬세하든 섬세하지 않든 언제든 그 말을 해주기 때문이다. 사실 "잘할 수 있어"의 뒷말엔 "설령 그렇지 못한다 해도 네 옆엔 내가 있어"란 말이 생략돼 있다. 정갈한 요리든 패스트 푸드든 상관 없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 잘할 수 있을까?"란 질문은 옆에 누군가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던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보다, 언제든 물을 상대가 있다는 게 중요했다. "응. 그럼. 잘 할 수 있지. 네가 누군데." 이 말을 듣고, 나는 충만하고 안전해진 마음으로 무언가에 뛰어들 준비를 마치곤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금은 애인이 없다. '잘할 수 있어'의 마법이 필요한 매 순간 순간 마다 쿡 찌를 인간이 없단 뜻이다. 다만, 그 말을 듣고 싶은 순간을 원기옥처럼 잘 모아서 한 번에 쏘는 친구는 있다. 어떻게 칭할지 고민하다가 방금 전에 글 속 호칭을 정한 영이다. 영은 부산에서 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대학 친구다. 나는 종종 주변인들에게 혹은 글 속에 영에 대해 너무 잘 설명하고 싶어서, 설명하길 포기한다. 그녀에 대한 문장은 적확하게 느껴지다가도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지곤 한다. 그 이유를 추측하자면 아마 그녀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만큼, 그것들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설명할 짧은 문장을 찾는 데 매번 실패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반해 영의 응원은 늘 적확하고 아름답다. 섬세할 뿐더러 지치지 않는다. 내가 그 일을 왜 잘 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는 성의도 있고, 나에 대한 거의 무한한 신뢰도 갖추고 있다. 합리적이면서도 따뜻한 '그럼. 잘할 수 있지.'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전 애인들의 '그럼'에서 단점을 빼고 장점만을 모은 '그럼'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영에게 빚지는 마음으로, 그녀를 통해 절망을 유예하곤 했다.


이틀 전, 남들과는 조금 다른 추석을 보내고 있을 나를 아는 영이 연락을 해 왔다. 아무렇지 않은 듯이 근황을 묻는 전화였지만 나는 영이 내 외로움의 깊이나 밀도를 알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녀에게 '그럼'을 요청했다. "언니, 나 자기소개서 써야 하는데 잘 할 수 있겠지? 두 개나 써야 해." 그러자 영이 대답했다. "물론이지. 지난 번에도 노력해서 잘 썼잖아."


이틀 후인 오늘 영에게서 메세지가 왔다. 물주머니 선물을 보냈으니 확인하라는 독촉이었다. 이틀 전 통화에서 생리통으로 밤새 고생했다는 내 말을 기억하고 물주머니를 보내온 것이다. 생리통 심한 애가 물주머니 없는 게 말이 되냐며 배에 올려놓고 인증샷을 찍어 보내란다. 합리적이고 따뜻한 (선)물 주머니였다.


영은 일생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시험을 50일 앞두고 있다. 내가 매일같이 응원이 필요해도 매일같이 그녀를 찾을 순 없다. 물론, 영에게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그 시험이 끝나도 상황은 비슷할 것이다. 홀로 걸어야지 누군가한테 기댈 수도, 누군가가 나한테 기댈 수도 있는 거니까. 다만 조금 뻔하고 어려운 기도를 할 뿐이다. 영과 내가 아주 오래도록 서로에게 '그럼'을 말해주는 관계이기를. 그런 생각을 하며 영의 50일과 50일 이후의 삶을 조용히 응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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