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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롬 Sep 29. 2020

나쁘지 않은 월요일

2020년 9월 29일 느슨한 일기


누구나 그렇겠지만 괜찮은 하루를 보내며 살고 싶다. 특히 월요일은 더 그렇다. 월요일을 설렁 설렁 보내고 화요일을 맞으면 1단원인 집합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다음 단원으로 넘어간 우등생처럼 괜히 불안하고 찝찝했다.


'괜찮은 하루'가 완성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꽤 까다롭다. 첫 번째론 온기를 나눴던 순간이 있어야 한다. 괜찮은 하루엔 사람들과 속마음을 터놓거나, 위로를 나누거나, 함께 무언가를 하면서 따뜻한 기분을 느끼는 순간이 필요하다. 두 번째론 나를 잘 돌보는 것이다. 생존이 아닌 맛을 위해 밥 먹기, 아무거나 주워 입는 게 아니라 그날의 기분이나 약속에 따라 옷을 고르기, 운동하기, 집 구석구석을 신경써서 청소하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는 투 두 리스트의 3분의 2이상 달성하는 것이다. 괜찮은 하루엔 성실으로 인한 뿌듯함에 꼭 들어가줘야 한다.


간만에 괜찮은 월요일을 보냈다. 점심 약속이 미뤄져서 조금 아쉬웠지만 그 대신 나에게 맛있는 밥상을 차려주기로 했다. 포실포실한 콩두부의 담백함과 김치의 새콤함이 잘 어우러진 비지찌개를 끓이고 오리고기를 구웠다. 아삭이 상추에 오리고기를 올리고, 엄마가 보내준 부추김치까지 겻들이니 임금님 수랏상이 부럽지 않았다. 설거지는 밥을 다 먹자마자 그때 그때 끝내버렸다. 빨래도 개고, 우체국에 가서 볼일도 봤다. 우체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20분 동안 느릿느릿하게 걸으며 산책도 했다. 나를 아주 잘 돌본 하루였다.


온기도 있었다. 소식이 궁금했던 친구이자 과선배 H에게서 급작스럽게 전화가 왔다. "나 요즘 부쩍 나약해진 것 같아." H는 우울한 얘기를 씩씩하게 했다. H다웠다. 작년인가 재작년까지만 해도 "왜 이렇게 나약해졌냐"고 우스갯소리 섞어 물으면 H의 얼굴엔 인정하기 싫은 마음에 얼굴에 반발감이 피어올랐다. 말투나 어휘는 조금 거칠지만 H는 종종 이렇게 갑작스럽게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대부분의 전화를 반갑게 받았다. H는 "X같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곧 무너질 것 같지만 무너지지 않을거야"란 다짐을, 사실 대부분 나 혼자서 삼키는 다짐을 서로 타령처럼 반복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옛 룸메이트이자 함께 팟캐스트를 준비하고 있는 솔과도 메신저로 오래 대화를 나눴다. 나는 요새 부쩍 솔에 대해 알아가고 있단 생각에 즐겁다. 갓 구운 빵처럼 한없이 부드럽게 생긴 솔은 알아갈수록 당차고 야무진 구석이 많다. 의사표현도 확실하고, 나만큼이나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이유도 확실하고, 또 고민에 대한 해답도 확실하다. 솔에게 고민거리를 좀 털어놓고 시원한 해답을 얻었다. 솔과의 대화 후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물론 직접 만날 순 없었지만 H와 솔 이외에도 많은 이들과 연락을 주고 받았다. "볼일 있어서 너네 동네 왔는데 같이 이나 먹을까 하고"란 말이 이렇게 반갑고 좋은 말인지 새삼 깨달았다. 고양이 집사이자 추석을 함께 보내기로 한 경이었다. 한창 온라인 스터디를 할 때라 만나진 못했지만 아주 잠깐 동안 경과의 저녁 식사를 상상했다. 원래도 한 주접 떠는 성격이지만 경과 함께 있을 땐 주접력이 더 올라가곤 한다. 이건 맛이 어떠네 저떠네 하면서 또 재밌게 수다를 떨었을 생각을 하니 스터디를 박차고 경과 점심이나 먹으러 가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데 또 안 중요하고 아니 그래도 중요하긴 한 성실함. 오늘 꽤나 성실하게 살았다. 신문도 열심히 읽었고, 신문 스터디를 열심히 준비했고, 한주간 읽은 신문의 주요 기사를 열심히 브리핑했다(중간에 목이 갈라질 정도였다). 자택 근무도 열심히 했다. 연락하거나 공지를 해야 하는 곳이 몇 개 있었는데 다 했다. 이제 남은 건 논술 퇴고인데 물론 이 글 다 쓰면 쓸거다! 운동만 했으면 완벽했을텐데. 내일하면 되지 뭐.


아무튼 괜찮은 월요일은 참 드문 것이어서 브런치에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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