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se 혹은, Home~??
나의 친정아부지와 8남매는,서울 종로.연희동 토박이다. 지금도 내 본적은 연희동으로 되어있다...
나의 친정엄마는 고등학교까지 대전에살다가,
서울로 유학와서 대학을 다니고,졸업후 취업을 하던당시에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수도 있었다-- )한 기회로 아부지를 만나게 되셨다.
엄마는 1960년대 후반이었던 당시에,
TV연예인이 무색할만큼 서구적인 외모를 갖고계셨다고 한다.
당시 유행이던 짧은 미니스커트차림과 지금도 여자의 평균 키 치고는 꽤 큰 키인 168센티의 늘씬한 몸매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던 엄마는 서울시청 비서실에서 근무하던 엘리트 우먼이었다.
그런 엄마에게 - 그 때당시 엄마의 표현에 의하면, 피죽도 못얻어먹은 북한 인민군같았던-아부지가 눈에 찰리없었다.
그.러.나.
6.25사변을 겪는동안 신문팔이,껌팔이를 해가면서도 악착같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으시고,결국엔 당시로도 어렵게 어렵게 시험쳐서 들어갔던 경기고등학교를 졸업,
고려대법학과까지 마치고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아빠의 끈질기고 지고지순한 사랑(?아니면 집요함?아니면 끈기?그도 아니면 10번 이상 찍으려는 노력형 나뭇꾼~~??)에 엄마는 두손들고-정말 두손들고 빈손으로~^^-아빠에게 시집을 갔다고한다.
처음엔,
시청앞에서 퇴근할때를 기다리던 아빠가 너무 싫어서 뒷문으로 몰래 퇴근하고 하던 엄마를 안타까이 여기신 경비초소에서,
아예,아빠가 나타났다 하면 비서실로 전화를 해주었단다-미스황~그 사람 또 왔으니 뒷문으로 퇴근해요~라고.
하지만,
그토록 애절하게 구애를 하면서도
한번도 먼저 손을 잡는다든가, 강한어조로 얘기한적 없다던 아빠였단다.
항상 맘이 열릴때까지 젠틀한모습으로 늘 엄마를 기다려줬다던 아빠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었다던 엄마.
요즘언어로,
사랑꾼이었던 아빠는,
내가 기억하는 내 어린시절에도 늘 엄마가 먹고싶다고 얘기하는 모든걸 사오시던 아빠였다.
지금이야 우스운 얘기지만,
그때시절, 엄마가 먹고싶다고 하면 한겨울에도 참외를 구해오실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인민군같이 까맣고 삐~쩍 마른 아빠와,
아빠의 표현에 의하면 미스코리아가 울고갔다던 한 미모의 여인인 엄마가 결혼을 하고,
1남3녀의 열매를 따내신 우리 부모님은,
그때부터 쭈우우우욱~~~서울 강남에 둥지를 틀고 살았다.
자~
지금부터는,
서울..그것도 한강 이남쪽 토박이인 내 이야기다~~
내가 기억하던 유년시절부터 내 기억에 그 일대에는 `집`이라는건 곧 `아파트` 였을정도로 주변에 주택집(기와집이라든지, 이층 양옥집조차도...)이라곤 없었다.
대책없이(?)늘어나는 인구로 인해 그 때당시엔 불모지라고 할만한 한강 남쪽 지역에,
밭이었고 농지였던 지금의 잠실,송파등 지역에,
서민들이 (많은 자녀들과)살기좋은 주택--아파트를 마구 지어 공급하던 시기였다.
`열 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라든가, 그 후엔 조금 더 심해서,
`잘 키운 딸 하나-열 아들 안부럽다`
라는 공익광고가 티비에 노골적으로 방영되던 시대였다.
참.,오래 살고 볼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큰~~~~일 날 말들이었으니까.
옛날 어르신들 말씀이,결국 내입에서도 나오게 될줄은.
지금 나의 둘째보다도 울 엄마.아빠한테도 많이 늦둥이였던 나는,
큰언니, 작은언니, 그리고 오빠한명.,에 아들 하나를 더 원해서 늦은나이에 가진 막내였는데,
아들이 아니었다고 아빠가 산부인과에도 오질않았다는 엄마의 말이 믿겨지지않을만큼,
아빠는 만지면 닳을세라 아끼고 이뻐하시던 막내 늦둥이였다.
(당시 엄마는, 날 가졌던 10달내내..온갖 임신성 고혈압과 단백뇨에, 이까지 아프셔서 울면서 잠에 겨우겨우 들정도로 고생하셨다고 했다....위로 애를 셋이나 낳았지만, 모 이런 유별난 녀석이 있나...태어나기만 해봐라~하는 심정이셨다고 했다~^^;)
그렇게...오십을 바라보시는 아빠와 엄마사이에 반갑지않은 딸래미로 늦둥이 막내자리를 꿰차고 나온 나.
내 기억으로는, 날 보면서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어쩔줄 모르겠다는 표정의 엄마가, 내 볼을 항상 깨물던 기억이 너~~무 싫어서,엄마의 눈에 하트가 보일라치면 도망갈정도였고,
국민학교6학년까지 소풍에 엄마가 따라왔고,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때당시에 학교에서 무조건 의무사항으로 검사하던 `채변봉투`도 중학교때까지도 볼일보고 나오면 엄마가 들어가서 채취(?)해줄정도였다..
대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부모님이,
20년가까이 살던 잠실 아파트를 정리하고,
산좋고 물좋은 동네-분당으로 이사를 가실때까지.
강남에서 나고 자랐던 나는, 분당(그때만 해도 건축중에 있는 마을도 많았어서 내 눈엔 먼지 날리는 시골이었다~~)에 이사간게 너무 불만이었고,
교통도 불편해서 친구들이 놀자고 부르면,
나 오늘 힘들어서 `서울 못 올라가~`
라고 말 할정도로 시골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후, 대학졸업후 바로 자차를 가지고 다니면서부터 강남에서 분당이 지척인걸 알았고,
그 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분당은 거대신도시로 바뀌면서 천당 다음 좋은곳,분당~이라는 별칭까지 생길정도로 바뀌어갔다...
그런 분당에서,
대학2학년때부터 지금까지 ...
연애도하고 결혼도 하고 아들 둘까지 낳고...
아들 둘도 초.중.고.대학까지 분당에서 서울까지 멀다못느끼고 잘 다녔다.
그렇게....내가 태어나고 21살무렵까지 살았던 기간보다 훨씬 오랜기간인 33년가량을 분당에서 살았다.
불과 두달 전까지...그랬다...
남편이 장난삼아 넣어본 주택청약에 당첨된 우리부부~~~^^;;;
로또 5천원짜리도 한번 안되본, 우리는..정말 신기해하며 우연하게 당첨된 화성시 동탄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왔다..
분당에 살면서 조금씩 평수를 늘려가며 아파트를 매입할때마다, 무리한 대출을 받아 구입하던 집들이었는지라, 리모델링등을 하며, 돈이 부족한부분은 손수 페인트칠등을 하며 고칠부분 고쳐가며 이사하곤 했지만,
신축아파트로 입주.이사하게 된건 이번이 처음이고, 리모델링등 수리할 필요가 없다는것도 신기하고 좋기는 했다~
건물 부지부터 중간중간 건축 되어가는 과정등을 여유시간이 있을때 남편과 데이트즐기듯 와보곤 했을때까지도 남편이 운전을 했기때문에 그리 멀다는 생각을 못했다.
주변에 아파트들이 들어서고,짓고 있는등 분주한 모습이 그 옛날 분당으로 이사올때같았기때문에,
이곳도 곧 번화하겠지...
차가 있으니 크게 불편하진 않겠지...
큰 놈이 군복무중이므로,
대학생인 둘째만 좀 케어해주다보믄,곧 좋아지겠지...생각했다...
우리 아파트는...좋다.
새거니까~
브랜드 선호도도 높은 회사고,
여러가지 입주민들을 위한 기반시설이나 편의시설이 잘 되어있는편이라 크게 불편한건 없다.
그.러.나.
주변은...
산과, 호수와,
그리고....공터....공터....
말 그대로...허허벌판....이었다...
차를 가지고 움직여야 갈수 있는 가장 가까운곳에 아주 작은 편의점이 한개 달랑...
주말이나 평일저녁에 푸드트럭이 아파트 앞 공터에 들어온다.....헐....
그래....이제 막 입주했으니까...
마트에 장을 보러가려면 네비를 켜고 갔다.
그리고, 먹을게 떨어지면 배달을 시켜가며 버틸정도로 외출하기가 겁나고 번거로왔다...
당연히,
차는 주차장에 세워진채로 일주일이고,열흘이고 시동한번 안걸린채로 방치되어있을때가 많았는데,
그런데..
군대 가 있는 큰아들 놈이 휴가를 나와서 차를 운행시켜야 하는차에,
경유차량은, 차를 너무 오래 운행을 안하면 정작 운행하려고 할때 잦은 문제가 말썽이 될거라며,
큰 아들 경유차량(suv)을 센터에 맡기란다.
휴가나오기 전에..
네비를 켜고,
남편이 가라고 하는 센터에 아들차를 끌고 갔더니,
며칠 걸릴테니 놓고 가라고 한다...
이것도 헐....
난 지독한 길치에 방향치다...
버스노선을 알아보기위해 작정하고 검색과 조사(?)를 두시간넘게 인근 카페에 앉아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는,호기있게 우리집과 가장 가까이 갈것같은 노선버스에 올라탔다....
그러나,
나는...정말 가출해서 혼자 아무도모르는곳으로 도망가서 살고싶을정도로 수치심과 자괴감이 들었다...
화성 신도시에는,
같은 이름의 아파트가 1차,2차,3차....어마무시 많았고,
나는 아직 마을이름도 하나도 모르고있었.....으니까.....
게다가,
시어머니가 못찾아오도록 짓는다던 아파트 이름들은...정말...현실이었다...
도대체가, 한국말로 된 아파트이름이 없는거....
덕분에 A방향으로 가는줄 알고 탔던 버스가 한번 순회를 해서 다시 거꾸로 가는 방향으로 가는데도 모르고, 우리집 아파트를 호명하는 정류장 안내가 나올때까지 버스를 타고있었던것이다...
곧 도착하겠지,하면서....기사분께,
이거 어디어디 가요? 하고...할머니들이 하는것처럼 물어보긴 진짜 싫었으니까.
아마..누군가 나를 열심히 지켜보고있던 사람이라면, 치매초기에 있는 갱년기넘어선 아줌마로 보고,
거기에다 더 열심히 사는사람이었다면, 경찰도움을 받아주기위해 신고까지 했을지도 몰랐다....
날 못미더워해서 5분에 한번씩 전화를 걸던 남편과의 통화를 다 들었다면 말이다...
겁이 덜컥 났던 나는 일단 벌떡 일어나서 마치 그곳이 목적지였다는듯이 버튼을 누르고 날렵하게 내렸다.
당연히 처음보는 동네,아파트며 초등학교까지...
(우리아파트 근처엔 우리아파트 말곤 아~~~무것도 없으니,분명히 잘못 온....)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있었고, 기온이 떨어져서 추워지고 있었기때문에,
자존심을 꺾고 택시를 호출했다....
(왜냐면,나는 추우면 이상하리만치 화가난다..)
거짓말 안보태고 스물한번까지 응답하는 택시가 없었다...
(마침 시간은 퇴근시간이었고, 신도시인 화성시 동탄의 특징은, 거리와 거리사이,블록과 블록사이등이 너무 멀고 큼직큼직하다..)
또 아무버스나 올라탔다...너무 추웠으니까...
그리고...무서워서 또 내렸다...어느동네로 갈지 모르는 버스를 타고 계속 갈수없었다...
그곳에 작은 마트가있길래, 장을 보러 일부러 그곳에 내린것처럼 들어가 장을보고 다시 택시를 호출하기를 6번째....
드뎌 응답한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보니,우리집까지 거리가...
택시의 기본요금이란다...
한마디로, 나는 우리아파트가 있던 아무개마을 근처에서 돌며 방황하고 있었던것이다....
택시기사분 말에 의하면,
본인은 우리 아파트 옆 마을 사신단다...
얘길 듣고 알게된 사실은,
동탄 신도시는, 도시안에 골프장이 두세개를 끼고 설계를 했기때문에, 도시 내부의 거의 모든 도로가 순환도로형태라는것이다.
길을 잘못들어도 시내에서는 반대방향으로 갈 일은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버스마다 앞에 어디어디 순환버스.라고 써 있었구나...ㅜㅜ)
약 1년반전에 이사오셨단다....
난..
절망했다...
1년반이 지났는데도 이렇게 허허벌판에 상가도 입점안하고 아파트만 짓고있다는.....
(다음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