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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쎄하 Jan 03. 2022

빛과 수렁 사이

5.   대치

결국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 취직을 했고 돈을 벌어 대학을 다녔다. 나는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당당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이루었다. 반면 하영이는 그 좋은 학교를 다녔음에도 모든 지원을 받았음에도 나와 같은 그저 그런 대학교에 다니면서 부모님의 한숨을 잔뜩 늘게 만들었다.


부모님의 모든 것을 걸었던 하영이의 도시 유학은 하영이가 다른 것에 빠지는 기회를 주었다. 또 무언가에 빠진 하영이는 자신에게 걸었던 부모님의 기대도 나의 희생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렸다. 고등 생활에서 하영이가 자신을 걸었던 것은 만화에서 나와 한층 품격 있어졌다. 로맨스 소설 보기. 그곳에 나온 주인공들을 상상하면 무슨 일을 할지, 무엇이 필요한지, 그 무엇도 생각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고 했다.


하영이는 부모님의 기대도, 나의 희생 아닌 희생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이 그 아이를 짓눌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하영이의 그런 태도는 나에게는 더 큰 기회를 포기한 것에 대한 속상함을, 부모님에게는 많아진 빚으로 더욱 가난한 삶을 안겨줄 뿐이었다.


하영이가 무언가에 빠진다는 것은 하영이에게는 도피처가 되고 즐거움이 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항상 어려움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하영이는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어내기보단 그냥 재능으로 또는 그 아이의 고집을 이기지 못하는 모두의 애정으로 점철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몸도 약했고 심성도 약하고 조심스러웠고 올망졸망한 이쁜 얼굴을 가진 이 아이에게 누가 강하게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었을까? 그저 우린 이런 식으로 이뻐할 뿐이었다.


그런 하영이를 내가 거둔 것이 어쩜 문제의 발단이 되지 않았을까? 이 숨바꼭질에서 나는 하영이를 지켜낼 수 있을까? 얼마나 더 하영이의 존재를 그들로부터 숨길 수 있을까? 이 지옥 같은 감시를 당당히 받아내고 이겨낼 힘이 나에게 있을까? 하영이가 영영 나를 보지 않겠다고 짐을 싸고 나가던 그때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우리 가족과의 인연이 완전히 끓어지지 않으려면 내 마음을 추슬러야 한다.


하영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잃어버린 하영이를 찾는 것처럼 나서야 할 때이다. 오늘도 집 밖에는 연두색 모닝이 서있다. 은정이의 썩은 미소가 나에게 보인다. 그냥 있으면 안 된다. 더 세게 나가야 한다. 무섭지 않고 떨리지 않는다. 그들의 거대한 누름에 나는 넘어지지 않는다. 맞서야 한다. 하영이를 지키기 위해선 더 단단하게 마음먹고 나가야 한다.


연두색 모닝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차창을 두드렸다.

"은정아, 문 좀 열어봐. 우리 하영이 어디에 감췄니? 하영이 어디 있어? 넌 알고 있지? 혹시 너네 오빠가 숨긴 거니? 우리 하영이 찾아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야? "


"세영언니, 언니야 말로 하영이 어디 숨겼어요? 하영이가 왜 갑자기 사라져요? 분명 어머니 생신, 그날 나한테 데리러 와달라고 했는데 말이에요"


"뭐라고? 왜 네가 우리 시골집에 하영이를 데리러 와?"


너무 무서웠다. 최대한 어이없는 것처럼 나는 모르는 것처럼 내 모든 생각과 마음을 들키지 않도록 노력했다. 잘못해서 한 마디라도 하면 들킨다. 더욱 조심하자. 정신 차리자.


"은정아, 부탁이야. 우리 하영이 어디 있는지 가르쳐주라. 너무 무섭다. 우리 하영이 어디 납치라도 당한 거니? 넌 뭔가 알고 있으니까. 거기까지 따라와야겠다고 생각한 거 아냐? 난 제정신을 유지하기가 너무 힘들다. 제발 은정아~~. 가르쳐줘. 내가 너한테 뭐 잘못했니? 네가 우리 하영이만 뺏어가기 전엔 나랑 친했잖아. 은정아~~ 제발."


긴 생머리에 서글서글하고 이쁜 눈매를 가진 은정이. 키는 작았지만 옷을 꼭 답답한 직장인 같이 입고 다녀 인상적이었다. 스커트에 블라우스류를 많이 입었었다. 그래서 항상 나는 보험회사 직원이냐고 묻곤 했는데 은정인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라고 했다. 새로운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는 하영이었기에 은정이는 나에게도 너무나 이쁘고 사랑스러운 동생이었다. 하영이가 세상으로 나가는 문 같은 존재로 여겨졌으니 말이다.


그때 은정이에게 그렇게 잘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하영이를 두고 대치하게 된 그 원흉을 나는 왜 이리 이뻐했을까? 은정이를 만났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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