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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딱로드 Oct 04. 2020

추억? 정확하지 않아 좋아.

  TV방송 <슈퍼맨이 돌아왔다>을 가족과 함께 보고 있었다. 출연자 중 가수 개리가 자기 아들을 데리고 자기가 학생으로 있었던 잠실고등학교를 돌아보는 장면이 나왔다. 자기가 거닐었던 교정과 공부했던 교실, 춤췄던 체육관 무대를 자기 아들을 데리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렇게 춤을 췄었지. 저기 앉았었지 하면서 아들과 시청자들에게 회상을 늘어놓는 장면이다. 나는 

"나도 고등학교 교실에서 어디에 앉았었는지 기억난다." 라고 말했다. 

아내가 옆에서 

"그게 기억나? 자리가 계속 바뀌어서 기억이 잘 안날텐데?"

"응, 난 기억나. 앞자리 뒷자리. 당신은 기억안나?"

"난 기억 안나는데..."

"정말? 신기하네. 도대체 왜 당신은 추억이 없는거야?"

"내가 왜 추억이 없어? 나는 당신이랑 달리 그 때 있었던 이야기가 기억나. 넌 기억이 단편적이지만 난 일화중심으로 기억해. 감정적으로 강하게 남은거 위주로 ."

"말해봐. 어디"

"고등학교 때 000선생님에게 잘했다고 칭찬받고, 전교회장일때는 어쩌구저쩌구.."

"에이 자기가 유리한 것만 기억하네. 굴욕적이고, 힘든 기억 예기해봐."

"난 굴욕적인 적이 없었는데?"

"거짓말"

<중략>


 결국 나는 와이프에게 왜 말마다 비꼬고 비판적이냐고 따지고, 와이프는 먼저 추억이 없다고 나쁘게 예기한게 누구냐며 작은 말다툼이 벌어졌다. 작디 작은 추억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서로에게 강한 눈흘김과 감정싸움으로 바뀌어버렸다. 사실 와이프에겐 뭐든 편하게 말할 수 있다.  뭐든 다시 그게 무기가 되어서 나를 겨눌 수 있다는 걸 깨닫기 전까지. 말다툼 생긴 이후를 타임머신 처럼 미리 앞서 다녀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감정이 사그라들고 지나고 보면 내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후회하기도 한다. 가령 '도대체 왜 당신은 추억이 없는거야' 라든지......

   추억을 기억하는 방식도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무엇에 중심을 두는지도 사람마다 다름을 깨닫는다. 나는 그 추억의 장소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장소를 자꾸 가고 싶어한다. 일주일전에도 내가 태어나서 초4까지 살았던 하남시 신장동을 가정으로부터 특별 허가(?)를 받아서 바람을 쒤겸 다녀왔다. 내가 다니던 동부초등학교의 정문에 다다랐다. 차를 겨우 힘들게 주차하고 정문으로 들어섰다. 

   아름다운 손바닥 3,4개 넓이의 플라타너스 잎이 햇빛을 나에게 반사하며 '꼬맹이가 아저씨가 되어서 왔네.' 반가워하고 말한다. '안녕. 너는 정말 크고 멋졌는데 몰지각한 어떤 학교관계자가 너의 팔을 심하게 잘라내어서 이제 이파리도 몇개 없구나. 불쌍한 것'. 하고 나무와 맘속대화를 나누려는 순간, 

"어이. 아저씨! 무슨 일로 오셨어요?", 

"아...... 네...... 그냥 바람쐬러 왔는데요.", 

"여기 들어오시면 안됩니다." 

배움터 지킴이 아저씨가 애써 다른 곳을 보며 말한다. 코로나때문에 학교안에도 맘대로 못들어오게 되었다. 난 그냥 교문너머로 교문 창살을 부여잡고 감옥 수형자가 안에서 밖을 보듯, 밖에서 안을 들어다봤다. 내가 뛰던 추억, 부릉부릉 자동차 흉내를 내며 걷던 복도, 교장선생님이 훈시할때 서있던 운동장이 빠르게 내 머리속 필름으로 스쳐지나갔다. 난 이 장소 자체가 좋은 것이다. 나의 생각체계를 흔들어 옛날 맡았던 가상의 좋은 냄세를 떠올리게 만든다. 사실 나도 와이프처럼 나의 슬픈일들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추억을 하고 그 장소에 가는것이 점점 즐거워진다. 꼭 나이가 먹어서가 아니고 내가 그런 것 같다. 그곳에 다다르면 마음의 평화가 오고 나의 역사의 한 장면을 다시보기로 흐뭇하게 보게 된다. 나를 사랑하는 다른 방식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도 추억하는 각자의 방법이 있겠지. 내가 만졌던 물건으로, 거기에 같이 있었던 사람을 만나며 등등. 다른 사람도 다른 방식의 추억이 있음을 인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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