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꼭 12시 전엔 자려했다. 오전에 처자식을 이끌고 벽초지 수목원에 갔다 왔다. 오후엔 아내를 졸라서 겨우 테니스 치는 걸 승낙받아 열나게 치고 왔다. 평소보다 힘든 스케줄이면 그냥 잤어야 했는데.....
난 유튜브를 켜고 말았다.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나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우연히 뉴스에서 본 한국관광공사 홍보 동영상을 클릭해서 봤더니 정말 힙한 음악이었다. 나도 모르게 이 곡의 가수인 '이날치'를 검색. 이날치가 나온 프로그램 유퀴즈와 온더 스테이지를 한참 봤다. 온더 스테이지 음악들이 음색이 좋아 온더스테이지를 검색했더니 음악들이 좌르르르. 사이드에 있던 연관검색어에 백예린이 나왔는데 이건 웬걸 백예린의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의 아름다운 옥구슬 목소리가 주르륵 내 귀를 홀린다. 순식간에 1시간은 지나갔다. 그 사이 내가 본 클립수만 30여 개가 넘는다. 나도 모르게 몸이 들썩들썩. 짧고 굵은 영상들에 잠시 헤드셋을 벗었다. 아~ 더욱 피곤하구나.
눈을 비비며 잠시 그런 생각을 한다.
링크를 클릭한 건 내 주도적 판단일까 아니면 유튜브에 놀아나는 걸까?
유튜브를 보는 동안, 링크를 타고 가는 동안 나는 도대체 생각을 했는가? 영상이 끝난 후 공허함이 싫어 또 영상을 틀었던 건 아닌지? 왜 유튜브를 보고 나면 큰 허무함이 밀려드는지?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맞춤형 동영상을 나는 배부른데 또 먹고 배부른데 또 먹는 건 아닌지? 유튜브 링크의 파도를 타면서 정작 난 내 생각의 방향타를 쥐고 있는지?
짧지만 이런 생각이 들며 난 유튜브에 놀아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건 내가 선호하는 걸 골라주는 척 하지만 알고 보면 기분 나쁜 중독의 과정이다. 남이 깔아주는 가짜 링크를 밟고 가봤자 그건 내 것이 아닌데. 이 링크를 밟고 가면 갈수록 나는 점점 사라지고 그들이 만들어놓은 영상의 도가니에 물들어 가는 느낌. 그 도가니에 빠져들어갈수록 진짜 내 목소리, 내 취향을 읽고, 결국 내 취향을 내가 고를 수 있는 권리마저도 녹아버리는 것. 과거의 바보상자 TV보다 수천만 배 무서운 친화성을 가진 이놈 유튜브. 그나마 옛날 TV는 더이상 나올게 없을 때 애국가라도 나와서 나의 행동을 멈추게라도 했지. 유튜브는 다음동영상 더 다음 동영상 더더 다음 동영상, 더더더더를 찾게 만들어 원조 바보상자보다 수천만 배 나를 바보로 만들 것 같은 이 두려움.
그래서 거기서 빠져나와서 잠시 멀리 내 주변의 현실과 마주한다. 내가 좋아해서 선택하는 것과 내가 좋아할 만한 것을 누군가 추측해서 제공하는 것은 다르다.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까지 알고리즘에 내주고 싶지 않은 마지막 자존심. 지키자.
유튜브는 적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