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퇴근길에 97.3을 자주 듣는다. 원래는 메이져 3사의 89.1, 91.9 107.7을 자주 들었다. 음악과 웃음속에서 잠시나마 직장일에 찌들어 있던 내 뇌를 씻어 내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목적을 위한 대화, 지식을 위한 대화, 사업달성을 위한 설명,설득,논의,합의, 대책강구, 계획, 기안....여기서 벗어나는 느낌이 바로 자가용에서 라디오를 트는 순간이다. 다른 세계로의 진입을 나타내는 이정표같았기에. 91.9의 이지혜의 상큼한 목소리 오후의 발견 DJ의 하이톤의 웃음소리가 내 귀를 즐겁게 만든다. 내 직장에 상큼하게 이지혜 처럼 에너지를 주며 말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지혜의 "씨릿~"하는 말이 내 귀를 refresh한다. refresh란 지금 현재 내 상황이 fresh 하지 않으니 다시 fresh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다. 라디오는 돈을 벌기위해 나의 몸과 정신을 푹 담궈두었던 내 자신을 그곳으로 부터 탈출시키고 퇴근이라는 제2의 세계로 진입시키는 회전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음악보다는 97.3 교통방송을 더 많이 듣는다. 내가 퇴근할 때 즈음 되면 최경영의 경제쇼가 나온다. 각 경제의 전문가들이 나와서 현 경제상황,증시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내놓고 mc와 페널이 열심히 이야기를 나눈다. 옛날엔 듣지 않았다. 따분하고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요즘엔 여기에 자꾸 빠져든다. 왜 그럴까 생각보니 이유가 있다. 바로 누군가의 대화에 끼고 싶기 때문이다. 최경영과 페널이 이야기하는 곳에 "으음 그렇군"하면서 앉아있는 듯한 느낌이 좋기 때문이리라. 아무래도 난 진솔한 대화를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든다. 요즘 코로나19로 직장에서 차마시는 것도 왠만하면 하지 말라는 상부의 지시가 떨어졌으니, 왠만한건 메신져로 응답한다. 메신져 너머의 그 응답자의 숨소리와 표정, 관심사등은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사람을 사람으로 만나는 횟수보다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내가 '일하는 사람'을 만난다. 따로 지인이랑 저녁식사는 언감생심인데다가 카톡도 별 재미가 없다. 요즘 내가 사람과 진솔한 대화를 그리워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최경영의 경제쇼가 끝나면 강원국의 말같은 말이라는 코너가 나온다. 김대중, 노무현대통령의 연설문을 썼던 사람인데 올바른 글쓰기가 이런것이라며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을 냈었다. 그런데 이제는 말하는 방법까지 자신의 영업 경계를 넓혔다. 약 2~3분 동안 말을 잘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그가 코너에서 이런말을 했다. '말을 잘 하려면 평소에 준비를 해야 한다. 안그러면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좋은 말인데 꼭 맞는 건 아닌듯 하다. 여기서 이상한건 평소 좋은 말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라는 거다. 우리가 평소에 하는 상당수의 말은 마음의 표출이다. 내 마음을 상대방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과정이다. 강원국이 한 말은 말의 다채로운 기능을 제한한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말하기도,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어 마음의 분수를 쏟아내기도 한다. 어린 아이들이 일기를 쓰기 싫어하는 이유는 글쓰기 자체를 싫어하는 이유도 있지만, 내 말을 선생님, 또는 엄마가 수정하고 바로잡기 때문이기도 하다. 근데 그 말을 미리미리 준비해나가라는 건 마치 스트레스 풀러 노래방에 갔는데 노래방에 가기전에 집에서 노래 연습을 하고 가라는 말과 비슷하다. 어차피 연설을 하거나 공적인 자리에서 말하기, 상대방에게 고백하기 등 중요한 시점이 되면 사람들은 시키지 않아도 어떤 말을 할지 곱씹는다. 굳이 평소에 할말을 미리 연습할 필요가 있겠는가 싶다.
평소에 연습하지 않고 즐겁게 편안하게 대화를 원하는 나의 생각이 강원국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내 앞에서 강원국이 "아니 내 말은 그런게 아니라......."하면서 나를 훈계한다고 상상을 해본다. 그걸 또 내가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