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1년. 리틀 포 레스트.
시골 살이 1년.
리틀 포 레스트. Little for rest.
벌써 1년이라니. 정말이지 엊그제 집을 둘러보고 계약 한거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나 빨리 1년이 지나가버렸는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다시 숨을 천천히 고르고 한해를 돌아보니 그래도 참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일을 해낸 듯 하다. 마음 속에서 품고만 있었던 일들을 실제로 해낸 기쁨 이랄까. 누구에게는 별일 아니지만 나에게는 하늘의 별을 보는 일 처럼 소중한 일들이였고 별일 없이 사는게 별일처럼 특별한 일상이기도 했다.
허름하고 낡아서 손 볼 곳이 많은 오래된 시골 집이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구에게도 눈치볼 필요가 없는 독립적인 공간이 생겨서 어찌나 기뻤는지 모른다. ‘ 굳이 왜 이러고 살아 ‘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나만의 놀이터에서 내 멋대로, 어떻게 즐겁게 잘 살까 하는 놀궁리를 하면서 버려진 것을 주어다가 다시 무언가를 만들고 집 안 곳곳에 벽화를 그리거나 마당을 가꾸며 내 삶에 집중하면서 보내느라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내 마음의 느낌만이 중요했고 그 느낌을 믿고 따르는 용기만이 필요했다. 결론적으로 시골 살이 1년은 싱그러운 생명의 에너지가 가득했고 그 에너지가 온 몸에 퍼지며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 때는 답답한 회색 도시를 떠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6월에 시골에 내려와서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낡은 시골집에 묵혀 있던 때를 벗겨내고 집안에 온기를 채워가며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손이 닿고 관심을 주는 곳마다 다시 살아나고 변화해 가는 모습들을 보는게 즐거웠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삶이 도시에서 머리만 쓰는 삶보다는 잘 사는것 같아서 좋았다. 여자 혼자 어떻게 시골에서 살아가냐며 걱정 하시는 분들도 많았지만 응원 해주시고 도움을 주시는 손길과 따뜻한 마음을 보태주시는 분들도 많아서 부족하고 어려운 부분 보다는 넉넉하고 풍족하게 지낼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풍요로웠고 나눌 수 있는 것도 많은 삶은 감사함도 더 커져갔다.
시골 살이가 궁금해서 놀러오시는 분들도 많았고 두팔 걷어 부치고 도와주겠다고 찾아오는 친구들 덕에 혼자 시골에 내려왔지만 집안에 항상 사람들로 북쩍 거려서 혼자 지낸 적이 별로 없었던 여름은 그렇게 정신 없이 지나가버렸다. 구슬 땀이 뚝뚝 떨어지고 하루에도 몇번이고 찬물 바가지를 뒤집어 쓰던 여름이 끝나갈 8월 말 무렵에는 어느새 아침 저녁으로는 서늘한 바람이 코 끝에 불기 시작 하면서 보일러를 틀 정도로 기온이 뚝 떨어져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 내가 사는 진안 고원은 일교차가 큰 곳이라 한 여름에도 밤에는 선풍기를 틀 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서늘 한 편이다. ) 여름은 어찌 저찌 잘 살았지만 단열이 허술한 오래된 시골집 추위를 겨울에도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은 점점 불어나고 사방 팔방 황소 바람이 들어오는 곳을 막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보일러 값이라도 벌기위해 바깥일도 부지런히 해야했다. 생계를 위한 일들을 하면서 겨울에 혹시 모를 비상 사태를 대비 하기 위해. 마을 벽화를 그리거나 그림을 그려서 팔기도 하고 시장에 나가서 물건도 팔고 학교에 나가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과외도 하고. 버튼 하나로 모든게 해결 되는 도시의 아파트에서만 살다가 난생 처음 월동 준비 라는 것을 하면서 겨울의 존재를 실감하며 숨가뿐 가을도 그렇게 지나갔다.
그리고 겨울이 찾아왔다. 추운것을 싫어해서 항상 따뜻한 나라로 피신을 가서 겨울을 보내다가 지대가 다른 곳보다 높아서 눈도 많이 오고 춥고도 추운 고원 지역에 와서 겨울을 맞이할 줄이야. 따뜻한 남쪽 나라나 바다가 있는 곳에 살고 싶었는데 산도 많고 추운 산골 마을에서 살게 될지 누가 알았을까.그것도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그러니 누구를 탓하랴. 오롯이 내가 내 삶을 책임지고 마주해야지. 명상을 하다가 우연히 ‘마이산 근처에 가서 살아라’ 라는 말 한마디가 환청처럼 들려서 이것저것 고민 없이 이 곳에 오게 된 것도 이유가 있겠지.그러니 내가 마주 하는 모든 일도 이유가 있고 내가 성장하는데 자양분이 될꺼라는 믿음이 있다. 하지만 난 참 쉽지 않은 길을 간다. 언제나.
보일러가 터지고 수도 배관도 터지고 전기도 나가서 깜깜하고 차가운 방안에 촛불 하나 켜놓고 이렇게 살아야 되나 싶어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도 했다. 잘 사는 것 같다가도 갑자기 내 삶이 구질 구질 하게 느껴질 때가 있을 때는 마음이 땅 끝으로 가라 앉는 것만 같았다.
따뜻한 나라로 피신을 갈까, 조금 더 편한 곳으로 이사를 갈까, 그냥 남들처럼 편하게 살까 이런 저런 고민을 겨울 동안 참 많이 했지만 어느것 하나 내 마음이 끌리는 것이 없었다. 피하기 보다는 오롯이 마주하고 싶었고 나와 약속한 이 실험을 잘 마치고 싶었고 몸이 편한 곳보다는 마음이 편한 곳에 있고 싶다는게 결론이었다. 그래서 스스로 다짐했다. 잘 버텨보자고, 잘 이겨내 보자고. 그리고 하루 하루 즐겁게 잘 지내 보자고. 오랫동안 배우고 싶었던 풍물을 배우기 시작했고 겨울은 북치고 장구치며 자주 풍악을 울렸다. 그것이 내 자신을 위한 응원가이기도 했고 살풀이기도 했다. 그 덕에 대보름날 신고식을 하고 마을 굿판을 벌이며 어느 때 보다 더 진실되고 간절하게 올 한해 잘 부탁 한다고 두손 모아 기도를 하며 애타게 봄을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던 봄인가. 살면서 이토록 봄을 기다렸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겨우내 움츠려 있던 모든 생명들이 다시 깨어나 살아있다는 손짓을 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봄을 만나자 내 몸도 서서히 깨어나 살아있는 존재로 살고 싶다는 욕망이 강렬해진다. 땅이 서서히 녹아서 폭신 폭신한 흙 사이로 새싹이 있는 힘껏 힘을 내서 올라오는 생명의 에너지가 나에게도 전해져 여기 저기에 씨앗을 퍼트리며 싹을 틔우기 위해 애를 쓰지만 주변의 잡초들에게 영양분을 더 많이 뺏겨가고 있는 느낌이다. 마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내가 지역 사회에 기여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진안에서 어떻게 하면 즐겁게 잘 지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일이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말을 한마디 보탤 때마다 나에게 주어진 일들도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반갑고 설레는 일이기도 하지만 점점 일이 많아 질 수록 집 안에서 할 일을 점점 내 팽겨 치는 상황이 벌어졌다.
지금 필요한 것은 리틀 포 레스트. ( a Iittle for rest ) 잠시 숨을 고르고 쉬어 가야 할 때이다. 도시에서 바쁘고 정신 없는 삶이 싫어서 시골에 내려왔는데 마음의 여유가 점점 사라지고 무언가에 쫒기듯 일을 하고 하고 잘 먹고 잘 살고 싶어서 이 곳에 왔는데 대충 끼니를 때울 때 마다 초심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마음 한 구석에서 ‘ 자꾸 이게 아닌데’ 하고 속삭인다. 무언가를 더 많이 해야 되는 덧셈의 삶보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뺄셈의 삶을 실천하고 싶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정말 소중하고 중요한 것을 지켜나가고 싶다. 이 곳에 오기를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며 내 영혼이 기쁜일을 더 많이 하며.
아침에 새소리로 일어나고 마당에 나가서 흙을 밟고 텃밭에 물을 주고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인사를 하고 손으로 빨래를 해서 툭툭 털어 빨래줄에 널고 햇살을 듬뿍 머금은 이불을 덮고 한가롭게 낮잠을 자고 있는 고양이를 바라보고 텃밭에서 건강하게 자란 채소들로 밥을 짓고 글과 그림으로 일상을 가꾸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마음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 별 다른 수입도 없지만 크게 소비하거나 지출 하지 않아도 되는 시골 살이 삶에서 꼭 돈을 벌기 위해 해야 될 필요가 없어지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가장 큰 힘이기도 했으니까. 몸도 마음도 정신도 건강하게. 불필요한 것은 더 많이 줄이고 자주 정리하고 심플해지는 것. 그것이 오늘 하루 눈이 부시게 빛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일테니. 그 하루가 모여 아름다운 삶이 만들거 지겠지. 그렇게 가꾸고 싶다. 내 마음 밭을. 그것이 내가 고작 얼마 안되는 텃밭을 가꾸고 얼마 안되는 돈을 벌기 위해 바빠지는 것보다 훨씬 가치있고 의미 있는 삶이기에. 그리고 함께 가꾸고 싶다. 우리의 마음 밭에 꽃을 심는 일을.
그렇게 4계절을 오롯이 만나며 자연의 흐름에 발 맞추어 가는 삶이 아직은 익숙하지는 않지만 익숙해져 가고 싶다.자연의 법칙을 따르며 자연 스럽게. 그렇게 살아갈 때 내 본성대로 잘 살아가는 것일테니. 본성을 거스를 때. 몸과 마음, 영혼은 아프다고 외칠 테니까. 어느 한 곳이라도 아프면 병이 난다. 마음이 고요할 때는 몸과 마음 영혼이 전하는 미세하고 작은 소리도 잘 들리지만 마음이 분주할 때는 아무리 크게 외쳐도 그 소리를 무시하고 달려간다. 그리고 잃어버린다. 가장 소중한 것을. 가장 바쁜 시기에 자주 자주 멈춰서 바라봐줘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그리고 물어봐주어야 한다. 마음의 안부를. 내 마음의 안부를 물어봐주는 여유가 생길 때 비소로 보인다. 내 주변이.
그리고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꽃들이 나 좀 봐달라고 지천에서 손짓하고 초록 잎사귀들이 무성하게 올라와서 바람에 춤을 추는 나무들도 미소짓는 5월이다. 느끼자. 더 많이. 그리고 가슴을 열고 다가가자. 나를 살리는 존재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