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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쉘위 Aug 01. 2021

너에게 주고 싶은 엄마의 선물

엄마는 매일 지구별 여행을 떠날거야.

별이와 함께 게릴라 여행


아침 일찍 옥수수를 찌고 간식을 챙겨 배낭을 메고 별이 손을 잡고 목적지 없는 여행길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놀기 좋은 냇가가 있으면 내려서 놀다가 둥구 나무 아래에서 간식을 먹고 책도 읽고 동네 할머니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또 천원 택시를 타고 다른 마을에 가서 또 물놀이를 하고 놀다가 또 다른 마을에 가서 도서관에 들어가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더위를 잠시 식히기도 하고 이 마을 저마을 구경하다가 진안 끝 주천면 까지 오게 되었다. 다행이도 주천에 살고 있는 아는 언니 덕에 목적지가 정해져 게릴라 여행은 종료 되었고 별이는 냉면집에서 돈방석을 이불 삼아 한참동안 잠을 잤고 나는 여유있게 시원한 맥주 한잔과 냉면을 먹었다.


느슨하고 자연스럽게, 계획보다는 흐름에 몸과 마음을 맡기기 시작하면서 다시 감각이 살아나고 경직되었던  몸은 이완되고 불안과 걱정 보다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오는 기쁨과 즐거움, 사람들의 친절과 도움 속에서 감사함은 더 커진다. 예전에 혼자 떠날 때 보다 챙겨야 될 것도 많고 몸은  조금 더 고되지만 집 안에서 육아할 때의 답답함과 우울했던 마음들이 뜨거운 여름 햇살 속에서 흘리는 땀과 함께 서서히 녹고 있는 듯 하다.


돌이켜 보니 나에게 여행은 순례길 같았다. 모든 길 위에서 기도했고 사랑을 느꼈다. 주머니는 넉넉하지 않았고 내 몸짓만한 배낭에는 내가 필요한 것들을 다 짊어지고 다니면서 짧게는 한달, 길게는 일년 우리 나라를, 전 세계의 많은 도시와 마을을 걸어다녔다. 그러다 만난 사람들과 인연이 닿아 집에 초대 받기고 하고 한동안 그 마을에서 일을 하면서 숙박을 제공받기도 했다. 나에게 친절과 환대를 베푸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나쁜 마음을 갖고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여유 속에서 느슨하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리며 직관을 믿고 따르기 위해 나의 더듬이는 항상 예민하고 기민하게 작동했다. 나에게 그  더듬이는 신과 연결되어 있는 안테나와 같았다. 그리고 결국 나는 그 연결이 잘 되었을 때 내 자신과도 연결되어 있고 온 우주의 존재와 생명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자신과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을 때 모든 존재와도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그 온전함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걱정도 사라진다.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이였다. 오랜만에 무뎌졌던 이 감각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파도에 나를 내 맡길 때 내가 더 자유롭고 나 다워질 수 있다는 것도.


한별이랑 둘이 배낭메고 떠나는 여행이 생각보다 이렇게 빨리 오게 될 줄 이야. 갑자기 문득 너무 빨리 크는 것 같아 이 시간이 너무 귀하게 느껴졌다. 아직은 내 손을 꼭 잡아야 걸을 수 있는 별이가 내 손을 잡지 않고 나 보다 더 씩씩하게 잘 걷고 자기 몸 만한 배낭을 메고 걷는 날에는 어떤 기분이 들까. 그 모습을 상상하니 옅은 미소가 번지며 가슴이 시큰거린다.


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 가지.

 

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무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을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둘째는 '안 되는 건 안 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

살생을 해서는 안 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되고

물자를 낭비해서는 안 되고

거짓에 침묵 동조해서는 안 된다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것을

뼛속 깊이 새겨주는 일이다

 

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자기 앞가림은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습관과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걷는 몸생활과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

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는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그러나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은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었다

유일한 자신의 삶조차 자기답게 살아가지 못한 자가

미래에서 온 아이의 삶을 함부로 손대려 하는 건

결코 해서는 안 될 월권행위이기에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고

행여 내가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저 내 아이를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면서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것이었다.


가슴에 이 말을 새기며.

나는 너와 함께 이 지구별을

신나게 여행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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